중국 저장성의 원유 저장 탱크. (자료사진)
중국 저장성의 원유 저장 탱크. (자료사진)

대북제재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정제유보단 중국이 북한에 지난 수십 년간 무상으로 제공해 온 원유를 끊어야 한다고 윌리엄 브라운 워싱턴 조지타운대 교수가 밝혔습니다. 미 국가정보국(DNI)에서 동아시아 선임 고문을 역임하고 미 국무부 대북지원 감시단 등으로 활동했던 브라운 교수는 중국이 2013년을 끝으로 더 이상 대북 원유공급양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문제점으로 지적했습니다. 북한이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했던 한국 경제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조언도 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브라운 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10월 한 달간 중국의 대북 정제유 수출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브라운 교수) 중국이 북한 문제를 훨씬 더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몇 년간 중국은 제재가 북한의 경제에 영향을 끼쳐선 안 된다고 여겨 왔습니다. 단순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만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고 했던 겁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플로리다 마라라고에서 만나 매우 건설적인 대화를 했고요. 또 북한은 9월 또 한 번 큰 핵실험을 했죠.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은 김정은 정권이 중국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하지 않고 있다고 인식한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뿐만이 아닌 그들의 경제에도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느낀 겁니다.

기자) 다른 이유는 없을까요?

브라운 교수) 말씀하신 것처럼 10월 아주 적은 양의 디젤이 수출됐고, 가솔린은 하나도 없다고 중국 세관자료에 나왔습니다. 물론 제재 때문이긴 한데요. 또 한편으론 (정제유를 수입하는) 북한 회사들이 유류를 구매할 때 필요한 자금을 구하는 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재와 자금조달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기자) 일부 언론이 보도했던 내용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브라운 교수) 그렇습니다. 대형 중국 정유회사와 북한 사이에서 거래를 하던 중간업자가 북한 측으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면서 정제유 제공을 어느 시점 멈췄다는 내용입니다. 그 시점이 7~8월입니다. 더 구체적인 정보는 없지만 실제로 이 시기에 중국의 대북 정제유 수출액이 크게 줄었던 것으로 나타났었습니다.

기자) 그래도 당시엔 ‘0’까지는 아니지 않았습니까?

브라운 교수) 맞습니다. 당시엔 일부 유류 운송이 멈췄을 뿐이었습니다. 돈을 못 받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큰 폭으로 줄었던 겁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10월 중국 세관 자료는 그 때와 달리 ‘0’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기자) 이유야 어찌됐건 중국 정부가 정제유 수출을 금지한 건 사실로 봐야겠죠?

브라운 교수) 중국 정부에 의해 금지된 건 맞을 겁니다. 그렇지만 유류가 아예 북한으로 유입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진 않습니다. 많은 밀수 업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유류를 공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의 휘발유 값은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중국에서 구매해서 북한에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이득을 많이 볼 것입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금지하려 할 것이고요.

기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으로 들어가는 유류 문제를 말할 땐 ‘원유’라는 말로 통용됐었는데요. 이제는 정제유와 원유를 구분하는 분위기가 뚜렷합니다. 대북제재 측면에서 정제유와 원유, 어떤 게 더 중요할까요?

브라운 교수) 저는 원유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지난 9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는 대북 원유 수출을 당시 수준에서 동결했었습니다. 다시 말해 변화를 주지 않았죠. 반면 정제유는 10%를 감축하도록 했습니다. 이 역시도 많은 수준은 아닙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우리는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2014년 1월부터 중국은 대북 원유 공급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 공급을 하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물론 원유 문제가 압박을 받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현 시점에선 어느 때라도 시진핑 주석이나 중국 정부 당국이 원유를 끊음으로써 최후의 압력을 가하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기자) 그런 조짐이 있나요?

브라운 교수) 올해 8월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 등 중국 언론들은 왜 중국이 북한에 원유를 공급하는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저는 중국이 북한에 원유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마오쩌둥과 김일성은 30여년 전에 원유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에 합의했는데요. 이에 따라 파이프를 연결하고 봉화화학공장으로 알려진 백마 정제소도 중국이 건설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중국 입장에선 일종의 대북 원조였습니다. 그렇게 30년이 흐르다 보니 현 시점에 원유 무상공급을 왜 지속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봉착한 겁니다.

기자) 만나보신 중국 측 학자나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해 어떤 분위기인가요?

브라운 교수)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원유를 절대로 끊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마오쩌둥의 합의 사안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번 여름에 나온 언론보도들을 보면 학자들이 돌려서 말을 하긴 했지만 중국인들이 원유 무상 공급 문제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는 식의 언급을 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발전입니다. 중국 관영 언론이 원유와 관련해 이런 내용을 보도한 건 과거에 보지 못했습니다.

기자) 원유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최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이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정유공장을 한 개만을 보유하고 있고, 처리할 수 있는 양도 작다고 평가했습니다.

브라운 교수) 아마 틸러슨 장관이 (미국의 정유회사인) 엑손 모빌에 근무한 이력이 있어서 그럴 겁니다. 대형 정유회사에 근무했던 사람의 입장에선 봉화화학공장이 작을 수밖에 없겠죠. 서양의 시각에선 분명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난해를 기준으로 중국은 440만 베럴의 원유를 북한에 공급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정제유는 이것의 절반 정도인 220만 베럴이 수출됐고요. 원유가 정제품으로 나올 땐 원유와 비슷한 양으로 나옵니다. 다만 다양한 종류의 정제품으로 나올 뿐이죠. 북한은 매년 600~700만 베럴의 정제유가 필요한데 3분의 2를 중국의 원유에서 얻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수입된) 정제품이고요. 그래서 북한이 정제유를 전혀 사지 못한다고 해도 전체 유류 필요량의 3분의 1만을 줄일 뿐입니다. 물론 이는 원유 공급이 그대로 이뤄진다는 가정이 전제가 됩니다. 그만큼 원유가 그들의 존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입니다.

기자) 현재 유엔 안보리가 각 회원국들에게 북한에 공급한 정제유의 양과 금액은 보고하도록 했지만 원유는 그런 의무를 두지 않았습니다. 이런 규정이 생겨야 할까요?

브라운 교수) 좋은 지적입니다. 그러나 안보리는 중국이 원치 않는 걸 강요할 순 없을 겁니다. 중국은 자신들이 원할 때만 움직입니다. 저는 왜 중국이 대북 원유 공급량에 대한 보고를 중단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중국의 모든 무역자료가 이 때문에 흐트러지는데도 말이죠. 예를 들어 중국이 전 세계에 수출하는 원유 자료에서 북한 부분만 빠지게 되면서 자체 자료를 망치는 거죠. 또 다른 우려는 중국이 자국민들도 속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 정부가 북한에 원유를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걸 광고하고 싶지 않아서겠죠. 요즘처럼 북한이 핵 문제를 안고 있을 때 다른 나라에 인색한 중국 정부가 왜 북한에 원유를 주느냐는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 만약 그런 의무가 생긴다고 해도 중국이 제대로 보고할지에 의문이 남는데요.

브라운 교수) 중국은 원유를 (정제유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전략적인 물품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듯 하고요. 이 때문에 유엔 안보리에 원유 내역을 보고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유엔이 중국에 뭐라고 할 순 없습니다. 유엔 차원에서 이를 조사할 만한 인력도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 중국이 이를 보고하면 좋겠지만, 최소한 사람들이 중국에 ‘왜 보고하지 않는지’를 질문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닙니다.

기자) 교수님은 과거에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와 민생경제에 대한 제재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북한 문제에 있어 각 나라가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건 분명 다릅니다. 중국과 러시아 쪽, 그리고 미국 쪽이 생각하는 방향 심지어 제 생각도 다 같지 않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 프로그램만을 옥죄자는 것입니다. 경제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말이죠. 미국은 지난 수 년간 정권을 압박하려면 북한 경제를 옥죄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군대만을 겨냥하기엔 너무 힘들다는 겁니다. 제 생각은 이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정권, 즉 지휘부의 경제를 옥죄고, 대신 한참 자라나고 있는 민간 경제는 다치게 하지 말자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이는 물론 쉽지 않습니다. 북한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책적으로 너무 많은 것이 요구될 수도 있습니다.

기자) 아무래도 현 시점에서 민생과 정권을 구분한 제재는 더욱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브라운 교수)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미국의 의도는 핵과 관련한 김정은 정권의 행동을 바꾸겠다는 겁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진 않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대북원조가 지원됐었고요. 문제는 정권과 주민을 어떻게 분리하느냐는 것입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미국은 북한과의 교역량이 원래부터 없었기 때문에 별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주요 대북제재는 사실상 다른 나라가 실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북한산 물품의 수입을 중단한 중국이 그렇죠. 북한이 미국을 바라볼 때 생각해야 할 건 ‘기회비용’입니다. 북한은 지금 허용하고 있는 시장경제를 키울 수 있습니다. 특히 개인 재산을 사고 팔 수 있게 한다면 엄청난 일이 되겠죠. 이런 긍정적인 움직임과 함께 핵 프로그램까지 멈춘다면 미국과 북한 사이에도 무역이 이뤄지고 이후 한국은 물론 중국 동북지역 경제를 어느 정도 따라가는 등의 큰 발전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스스로가 핵을 추구하면서 이런 기회비용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기자) 중국도 계속해서 걸림돌이 될 텐데요?

브라운 교수) 중국은 최근 몇 개월간 혹은 몇 년간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북한이 훨씬 문제라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중국은 항상 한반도의 안정을 원해왔습니다. 무역을 끊지 못한 것도 북한의 불안정성을 높일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금은 김정은 정권 자체가 중국의 관점으로도 불안정하다는 점을 깨닫고 있습니다. 어쩌면 김정은 개인이 불안정한 인물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그의 이복형을 살해했지 않습니까?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이복형 김정남이 김일성의 혈통이라는 사실입니다. 중국이 보호를 했던 인물이기도 하고요. 처형당한 고모부(장성택)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김정남이 살해된 건 중국을 충격에 빠뜨렸을 겁니다. 북한이 불안정하다는 걸 중국이 깨닫기에 충분했을 거고요.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이 훨씬 더 센 강도로 단순히 군 혹은 핵만이 아닌 경제 분야에도 강경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북한산 석탄 등 각종 광물과 해산물을 중국이 하나도 들여오지 않고 있고, 조만간 섬유도 그렇게 될 겁니다.

기자) 북한의 시장경제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보시는 거죠?

브라운 교수) 경제가 성장하고, 번영하는 건 사회주의 경제가 아닌 시장 경제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했던 나라들이 휘청거렸던 건 명백하죠. 사람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면서 생산과 분배, 구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겁니다. 흥미로운 건 북한이 시장 활동을 많은 부분 허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 개혁을 할 의향이 있다고도 보여집니다. 중국은 그래서 더 번영했고, 미국과의 무역 관계에도 문을 열었고요. 그러나 핵 프로그램이 계속 되고 국영기업들이 계속 지배하는 한 이런 무역이 현실화되긴 어려울 겁니다.

기자) 교수님은 한국과의 인연도 남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브라운 교수)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과 긴 인연이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제가 두 살 때이던) 1954년 저와 형제들을 데리고 광주로 갔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한국과 중국에서 활동하던 미국 선교사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현재 95세인 제 어머니는 군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중국에서 태어났고요. 일제시대였던 1930년대 어머니는 평양에 있던 외국인 학교를 다녔었는데요. 1937년 일본이 중국 상하이를 공격했고, 당시 아버지가 다니던 학교가 문을 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평양에 있던 미국인 고등학교를 함께 다니게 됐던 겁니다. 그렇게 두 분이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대 미국으로 돌아온 부모님이 다시 한국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고, 실제로 다시 가게 됐습니다. 저를 포함한 가족들이 모두 한국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형제들 모두에겐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진학을 위해 미국으로 다시 왔습니다. 이후 미국 정부기관에서 일하면서 한국 근무를 했던 것까지 합치면 약 20년을 한국에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은 저와 가족들에겐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중국에서 선교했던 친할아버지도 1910년도에 최초 한국에 정착했었습니다. 외가 쪽은 1920년부터 수십 년 간 한국에만 살았고요.

기자)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겠죠?

브라운 교수) 그렇습니다. 저는 경제학을 공부했는데요. 제가 자란 광주는 매우 가난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다고 하는 북한보다도 못했었죠.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한국의 경제가 빠르게 발전했고, 이는 제가 경제학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습니다. 결국 대학원에서는 동아시아 지역, 특별히 한국과 중국의 경제를 연구했습니다. 정책을 바꾸면서 국가 경제가 빠르게 또 완벽하게 성장하는 걸 보는 게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북한은 제가 1970년대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그 때만 해도 남북의 경제는 비슷한 수준이었죠. 그러나 지금 북한은 기근은 물론 재난에 재난을 겪으면서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가난을 안고 있습니다. (잘못된) 정책 때문입니다. 북한인들을 만나면 저는 늘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모델을 추구할 것을 권장합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론 박 전 대통령이 잘못했을 순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구걸하던 한국경제를 올림픽을 개최할 정도로 최고점에 올려 둔 인물입니다. 물론 박정희라는 인물 하나만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한국인들이 함께 도왔습니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민생에 돈과 은행 시스템을 투입했고요. 이를 통해 국민들은 저축을 하고, 그 돈으로 부동산을 사고 투자를 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작은 자본가가 돼,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됐습니다. 북한 역시 일부 정책을 바꾼다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브라운 교수로부터 대북 원유 공급 제한 문제와 북한 경제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함지하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