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안녕하십니까,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의 김정우입니다.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남한에 귀환한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은 근처 미군 기지로 이동해, 윌리엄 포터 주한 미국 대사와 한국 측 고위 관료들의 영접을 받은 후, 짧은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이 기자회견에서 부처 함장은 11개월간의 북한생활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기자 1) 부처 함장님! 북한에서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한 말씀 해주시죠!
(부처 함장 – 풀이 죽은 어조로) 푸에블로호는 결코 북한 영해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들은 갇혀 있는 동안 온갖 모욕과 구타를 당했어요. 북한은… 완전히 인간성이 말살되고, 인간의 정신을 노예화시키는 곳입니다.

(해설) 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 소식을 타전한 전 세계 언론들은 공산권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개 승무원 석방을 환영하고 외교를 중심으로 펼친 미국의 노력과 인내심을 칭송하는 보도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작 당사자인 미국에서는 이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는 당시 미국 측 반응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 Act 1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 /// “승무원들의 석방 소식을 접한 미국의 언론기관들과 국민들의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해설) 푸에블로호 석방에 대해서 엇갈린 반응이 나오던 미국. 먼저 미국의 유력 일간신문 중에 하나인 ‘뉴욕 타임즈지’는 푸에블로호 송환 소식을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논평을 냅니다.

(낭독 1 – 뉴욕타임즈지 논평 / 건조한 어조로) 존슨 행정부가 무력을 사용한 해결 노력보다 미국의 자존심에 조그만 희생을 감수한 것은 아주 현명한 결정이었다. 존슨 행정부의 끈질긴 평화적 수단에 의한 해결모색에 찬사를 보낸다.

(해설) 하지만 존슨 행정부에 칭찬하는 소리만 쏟아진 것은 아닙니다. 당시 콜로라도주 출신 연방상원 의원이었던 고든 알롯은 존슨 행정부에 다음과 같은 쓴 소리를 합니다.

(낭독 2 – 고든 알롯 의원/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승무원들을 석방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우리 잘못을 인정하고, 또 이를 바로 부인하기 위해서 무려 11개월을 허비했다는 것이 너무 우습지 않습니까?

(해설) 미국 내 여론은 푸에블로호 송환에 대해서 엇갈린 반응을 보였지만, 북한은 예상대로 이에 대해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정성윤 교수의 말입니다.

/// Act 2 정성윤 교수 /// “ 송환 뒤의 북한의 반응은 대충 짐작이 가듯이 북한은 자국의 통제된 언론을 통해서 나름대로 승리의 찬가를 연일 부른다. 북한이 초강대국인 소위 미제국주의자들을 불굴의 용기로 굴복시킨 것은 오로지 주체사상 덕분이다라고 선전을 한다. 예를 들면 평양 라디오는 미제국주의자들이 엄숙하게 사죄했고, 이는 조선 인민들의 영원한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방송을 했다.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의 보도태도를 보면 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었고, 사과문서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이런 문서에 서명을 한 것은 미제국주의자들의 참패를 의미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푸에블로호는 평양으로 옮겨져서, 지금까지 북한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해설)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억류돼 있는 기간 중 가장 고생을 한 사람은 역시 이 배의 승무원들이었겠지만, 이에 못지 않게 마음 고생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1968년에 임기의 마지막 해를 맞았던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입니다. 존슨 대통령은 푸에블로호 문제가 해결된 직후 가진 조찬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낭독 3 – 존슨 미국 대통령 / 음울한 어조로) 1968년 1년 동안 내가 경험한 가장 심각한 혼란의 날은 바로 푸에블로호가 나포됐던 1월 23일 아침이었습니다. 만일 1968년 올해를 미국 국민들이 돌이켜 본다면, 신의 은총에 감사한다는 말을 하기 보다는 신께서 우리에게 자비와 지도를 더 많이 베풀어 달라는 기도를 간절하게 할 것 같습니다.

(해설) 존슨 대통령이 1968년을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는 그가 대통령 퇴임 후 발간한 회고록에 담겨있는 다음 구절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낭독 4 – 존슨 대통령 / 우울한 어조로) 1968년도의 나의 수첩에 적혀 있는 그 수많은 전화번호들과 메모들을 돌이켜 볼 때, 또 당시 아주 서서히 그리고 불길하게 진행되고 있던 골칫거리들을 담은 메모들을 다시 읽을 때마다, 나는 나의 마지막 임기 1년 동안에 경험했던 좌절과 분노를 떠올리게 된다.

(해설)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는 존슨 대통령에게 푸에블로호 사건은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 Act 3 정성윤 교수 /// “ 존슨 대통령에게 푸에블로호 사건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존슨 대통령은 푸에블로호 사건을 당시의 어떠한 정치적 상황, 심지어 월맹군의 구정 대공세보다도 더 심각하게 받아 들였다.”

(해설) 존슨 대통령과 아주 친하게 지냈던 한 상원의원은 푸에블로호 사건이 일어나고 채 2주가 못 된 시점에 대통령을 만나고 온 후, 존슨 대통령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낭독 5 – 상원의원) 그때처럼 존슨 대통령이 우울하고 심각하며, 이상하리만큼 불친절했던 때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존슨 대통령은 완전하게 자신감을 상실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해설) 민권법을 통과시켜 미국의 고질병이었던 인종차별정책을 공식적으로 없앴고,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정비해, 큰 업적을 쌓은 것으로 평가되던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는 하지만 1968년의 상황은 존슨 대통령의 정치 이력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고 평가합니다.

/// Act 4 정성윤 교수 /// “ 존슨 대통령에게 1968년 겨울은 중요한 시점이었다. 존슨 대통령 결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포기하는데요, 역사에서 가정을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긴 하지만, 만일 당시 존슨 대통령에게 푸에블로호 사건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베트남 전쟁이 좀더 수월하게 진행이 되었다면 아마 존슨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유래가 없는 10년을 대통령에 재직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해설) 11개월간에 걸친 지루한 협상 끝에 평화적으로 해결된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요,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