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청국 장군- 화 난 어조로) 뭣이라! 당신네는 푸에블로호 승무원 문제 해결에 관한 원칙에 합의했었소! 우리 측이 요구한 사과와 보증이 담긴 서류에 서명한다고 해놓고선, 그런데 뭐라고요? 지금 와선 단지 승무원들을 돌려받았다는 영수증을 줄뿐이라고? 당신들 지금 누굴 놀리는거요!

(해설) 안녕하십니까,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의 김정우입니다. 협상타결이 예상됐던 23차 회의에서 승무원 인도 영수증 문제로 푸에블로호 송환 협상이 협상이 결렬되자, 미국의 존슨 행정부는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백악관은 혹시 막바지를 향해가던 존슨 대통령의 임기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백악관의 이런 분위기는 카첸바흐 국무부 차관의 다음과 같은 한탄을 들으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낭독 1 – 카첸바흐 국무부 차관) 북한 측은 그들이 이익을 얻거나 그럴 준비가 되었을 때 승무원들을 돌려줄 것이요. 이는 존슨 행정부의 임기 내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해설) 푸에블로호가 나포된지 300일이 지나자 미 전국에서 문제를 조속하게 해결하라는 압력이 백악관으로 몰려들었고, 그중에는 북한에 군사적 대응을 하라는 주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존슨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이 같은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여론의 군사대응 요구에 대해 카첸바흐 국무부 차관은 존슨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합니다.

(낭독 2 – 카첸바흐 국무부 차관) 대통령께서 북한의 도시 하나를 폭격하거나 아니면 비슷한 군사조치를 취한다면…승무원들의 무사귀환이 어렵게 되고, 자칫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북한과 협상하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해설) 협상의 교착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정작 다른 곳에서 나옵니다. 1968년 11월말 경. 국무부에 근무하던 제임스 레오나드는 부인 엘라노어와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엘라노어) 여보..요즘 무슨 고민있어요?
(제임스) 음…당신도 알다시피..푸에블로호 송환협상 때문에, 아주 죽을 지경이요. 우리 승무원은 꼭 살려야 하는데, 북한은 송무원들을 송환받으려면 꼭 사과를 해야한다고 하는데… 우리 미국의 위신을 생각해서는 그렇다고 덜컥 북한의 요구를 수락할 수도 없는 형편이야.
(엘라노어) 그렇다면…..이런 방법은 어때요? 음…일단 북한이 요구하는 사과문에 서명을 하고요….대신….서명하기 전에 구두로 미국이 서명하는 문서에 담긴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표를 하는 거에요.
(제임스)  하지만 서명하는 면전에서 서명내용을 부정하는 것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겠소?
(엘라노어) 어짜피, 북한은 미국이 사과한다는 내용을 문서로 남기고 싶을 거에요. 그렇다면 만일 우리가 구두로 부정을 해도, 문서가 남기 때문에 북한 측으로서도 손해볼 것이 없는 제안이 아니겠어요?
(제임스) 음….일리가 있는 말이로군. 내일 당장 이런 방법을 상부에 보고해야겠어!

(해설) 북한이 요구한 사과문에 서명하지만, 서명하는 면전에서 이를 부인한다! 절묘하기 이를 데 없는 이 같은 타협안을 통해 미국은 불법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승무원들을 송환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북한이 제시한 문서에 서명할 수 밖에 없었음을 외부에 항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합니다. 존슨 행정부는 국무부 직원, 제임스 레오나드가 고안한 이 같은 타협책을 곧 승인했고, 드디어 1968년 12월 17일 마지막 26차 협상이 판문점에서 열립니다.

(우드워드 장군) 26차 협상을 시작하겠소. 박청국 장군, 우리 미국은 귀국이 제시한 문서에 서명할 참이요. 단 조건이 있소.
(박청국 장군) 무슨 조건입니까?
(우드워드 장군) 서명 전에 구두로 미국은, 지금 서명하는 사과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하고 싶소!
(박청국 장군) 사과문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드워드 장군) 그렇소. 앞으로 8일 앞으로 다가온 성탄절이 우리가 제시하는 승무원 석방 협상의 시한이요. 귀국이 지금 우리가 제시하는 안에 대한 수락 여부를 12월 23일까지 통보해주길 바라오.
(박청국 장군) 그래요? 좋소이다. 우리도 얘기할 시간이 필요하니, 50분간 휴정하고 다시 만납시다.

(해설) 50분 후 판문점, 중립국 위원회 회의실로 돌아온 북한 측 대표단들은 원칙적인 문제가 합의가 되었다며 드디어 미국의 제안을 수락하게 됩니다. 26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양국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의 석방조건에 극적으로 합의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미국의 제안에 어떤 반대도 제기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 안도했고, 드디어 성탄절인 12월 25일 이전에 승무원들이 송환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됐습니다. 신라대학교 사학과 김정배 교수는 최종 합의문에 담긴 내용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 Act 1 신라대학교 사학과 김정배 교수 /// “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한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이 북한 영해를 침범했으니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재발을 방지해 달라, 이것이었다. 사과를 하고, 침범을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보장해 달라.”

(해설) 1968년 12월 23일. 푸에블로호 석방 협상의 미국 측 대표인 우드워드 장군은 북한이 제시한 ‘사과’문건에 서명하기 전, 다음과 같은 성명을 낭독합니다.

(낭독 2 – 우드워드 장군) 이 문건에 서명하는 유일한 이유는 인도적 견지에서 승무원들을 돌려받기 위해서이지 사과문의 내용에 동의해 서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정부는 이에 다음과 같은 세가지 사항을 밝히고자 합니다. 첫째, 미국 정부는 미해군 함정 푸에블로호가 불법적인 활동에 연루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미국 정부는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는 북한 정부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셋째, 미국 정부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사과할 수 없다. 

(해설) 1968년 12월 23일 정오 무렵, 부처 함장을 선두로 나머지 승무원81명이 시신 한 구와 함께 판문점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귀환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시사주간지인 뉴스위크지의 표현대로 승무원들은 지옥에서 천당으로 넘어오게 된 것입니다. 부처 함장을 포함한 승무원들은 귀환 즉시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나눠 타고 근처 미군 부대인 암스컴으로 이동합니다.

(해설) 11개월에 걸친 억류 생활 끝에 마침내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은 송환되지만, 이들의 송환 이후에도 많은 뒷얘기들이 남게 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