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서울통신’, VOA 도성민 기자 연결돼 있습니다.

진행자) 인천아시안게임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군요? 10월4일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지요?

기자) 10월 4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아시아드성화가 불타고 있는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의 폐막식을 끝으로 45억 아시아의 스포츠 축제,   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진행자) 먼저 오늘까지의 국가별 종합순위부터 알아볼까요?

기자) 오후 6시를 기준으로 한 집계 상황입니다. 중국이 1위입니다. 금 129개, 은 84, 동 68개로 모두 281개의 메달을 가졌습니다. 한국이 2위입니다. 금 54개, 은 58개, 동 64개로 176개의 메달을, 3위 일본은 한국과 금 16개 차이가 납니다. 금 38개, 은 56, 동 56개, 카자흐스탄이 4위입니다. 금 16개, 이란이 금 14개로 5위 북한이 금9개로 6위 이구요. 태국은 은메달 3개 차이로 7위, 대만과 카타르가 금8개로 8위와 9위, 인도가 금 7개로 10위, 다음이 홍콩, 우즈베키스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몽골의 순입니다.

진행자) 오늘 한국 선수들은 어떤 활약을 했을까요?

기자) 정구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챙겼습니다. 여자복징 라라이트급에서 은메달을 땄구요. 여자 다이빙 개인전에서는 44년만에 첫 메달, 동메달을, 요트 매치레이스에서도 은메달을 거머쥐었습니다. 이어서 남녀 농구 대표팀은 저녁시간에 모두 일본을 상대로 준결승을 치르고 있습니다. 여자 하키(19:00)와 핸드볼 결승전(18:00)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구요. 오후 6시부터는 며칠 전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 4위에 이어 아시안게임에 오르는 체조요정 손연재가 출전하는 리듬체조경기가 오늘부터 시작돼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남녀 태권도 경기가 진행되고 있어서 한국에 추가 메달 소식을 전해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진행자)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선수들의 신기록 행진도 이어지고 있군요?

기자) 어제 30일까지의 집계로는 31개의 아시아 신기록이 쏟아졌습니다. 17개의 세계 신기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록 경쟁이 붙으면 경기를 보는 더해지는데요.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나왔던 세계신기록 3개, 아시아신기록 15개를 이미 넘어서 있습니다.

진행자) 어떤 종목의 어떤 선수들이 세계의 벽을 또 넘었을까 궁금해지는 군요?

기자) 역도에서 무려 12개의 세계신기록이 나왔습니다. 양국에서 1개, 사격에서 4개 이구요. 아시아신기록도 대부분 양궁(2개) 사격(9개) 역도(16개)에서 나왔군요. 세계의 벽을 넘고 깨는 선수들은 주로 한국을 포함해, 중국, 대만, 카자흐스탄 그리고 북한 선수들입니다. 한국은 양궁에서 중국은 사격에서 뛰어난 기력을 보였구요. 역도는 북한이 초강세였습니다. 역도에서는 112개의 세계신기록이 나왔는데. 이 중 5개가 북한선수의 기록이었습니다.

진행자) 다음소식 알아보겠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꽁꽁 묶여 있던 법안들이 어제 밤 한꺼번에 국회를 통과했군요?

기자) 어제 오후 7시가 넘어 그 동안 잠을 자고 있었던 한국 국회가 일을 시작했습니다.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던 90개 법안과 일발 안전 중에 국민들의 생활에 직결돼 있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사안에 대한 대책들이 해결된 것인데요. 자녀를 학대한 부모의 친권을 최대 4년간 정지하도록 하는 민법 개정안과 관련 절차를 정비한 가족관계등록법, 가사소송법 개정안이 포함되어 있구요. 자기 회사를 상대로 사기 횡령 배임 등 범죄를 저지를 기업인의 회생을 10년간 허가하지 않도록 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다 ‘유병언법’이라고 부르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과 관련된 법안도 어제 밤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진행자) 한국 국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던 것이 다섯 달 정도 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묵혀두었던 법안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인가요?
 
기자) 여야 타협을 이루고도 파행을 겪어왔던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곧바로 국회 본회의가 열렸고, 계류 중이었던 90개 법안들이 일괄적으로 통과된 것입니다.  어제가 9월 국회의 마지막 날이었고, 지난 5월 2일 본회의 이후로 151일만의 입법활동이었는데요. 90개 법안에 대해 여야 국회의원들은 별다른 이견 없이 신속하게 처리를 했고, 다음달 7일부터 27일까지 국정감사도 실시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진행자) 한국 청와대에서는 즉각 환영의 뜻을 보였군요?

기자) 뒤늦었지만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민생법안이 잘 처리됐으면 한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논평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67일 만에 세월호법 협상이 타결되고, 늦었지만 국정 정상화의 계기를 마련하게 돼 다행이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의 국회 본청 앞 농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야가 극적으로 타결했다는 ‘세월호 특별법 협상’은 유가족들의 의사결정을 배제한 채 이뤄진 것이라 수용할 뜻이 없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오늘 여야 원내대표들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 대책위와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진행자) 다음 소식 알아보지요. 오늘 10월 1일 한국에서는 ‘국군의 날’로 기념하고 있군요?

기자)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1일, 육군 제 3사단의 한 대대가 강원도 양양지역에서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진한 날입니다. 당시 한국정부는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한 것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의미가 있다며 국군의 날로 지정한 것인데요. 이루 미 군정 아래 창설된 국방경비대가 육군, 해군으로 분리되고, 공군의 창설로 3군 체제를 갖추게 되었고, 각기 따로 창군행사를 실시해 오다가 1956년 10월 1일을 한국군 창설기념일로 통합했었습니다.

진행자)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거행됐지요?

기자) 건군 66주년 국군의 날 행사입니다. 육. 해. 공군본부가 충청남도 계룡대에 있는데요. 해마다 계룡대 연병장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는데요. 올해 ‘국군의 날’ 기념행사의 올해의 주제는 ‘기본이 튼튼한 군국! 미래를 준비하는 국군!’으로 정해졌는데요. 특히 올해 행사는 군 병영문화 변화와 혁신을 위한 실천의지를 다지고, 적에게는 도발시 강력하고 단호하게 응징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 국제 사회에는 자유와 평화수호를 위한 지원과 기여’이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박근혜 한국대통령입니다.  

1001 Seoul report ACTS 3 (President Park) [녹취: 박근혜,한국대통령]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없는 열악한 여건 속에 창군했지만 6•25 전쟁을 비롯한 숱한 위기와 역경을 극복하며 불굴의 정신으로 이겨내며 조국을 지켰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황폐화된 국토를 개발하고 우리 산업을 일으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며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쌓았고 이제는 세계 15개국에서 1,400여명의 우리 장병들이 평화유지와 재건 활동을 펼치면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높이고 국제사회 평화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오늘 기념식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한민구 국방부장관, 황진하 국회 국방위원장 등 국가 주요인사들이 참석했고, 천안함 46용사 가족과 순직 조종사 유가족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한 장병과 가족들이 초청됐고, 육해공군 의장대와 기수단, 각군 사관학교 생도들의 열병과 훈장 표창 수여에 이어의 기념행사의 순으로 이어졌는데요. 박대통령이 연병장으로 입장을 할 때 한국군의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하는 건군용사와 장병대표, 사관생도 대표와 함께 장병 부모가 함께 입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진행자) 서울통신, 오늘의 마지막 소식 알아볼까요? 남대문 시장에 개장 600년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군요?

기자) 서울의 살아있는 역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남대문 시장이 개장 600년을 맞아 큰 잔치를 열고 있습니다.  시장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고, 엄청난 인파의 손님들이 몰려오고 있고, 다양한 행사와 축하공연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진행자) 남대문 시장하면 아주 걸쭉한 목소리로 물건을 파는 시장상인들의 빠른 목소리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군요?

기자) 없는 물건 없이 무엇이든 다 있는, 없는 물건 찾는 것이 더 쉽다는 남대문시장의 상징적인 존재들인데요. 오늘부터 3일까지 열리는 600돌 생일 잔치가 상인들의 목소리에 더욱 활기를 넣어줄 것 같습니다.

진행자) 그나저나 남대문 시장의 역사가 정말 대단하군요. 600년이나 된 전통 깊은 시장이지 않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1414년 조선태종때 나라가 주도해서 문을연 시전행랑(市廛行廊)이 뿌리입니다. 1608년 대동미 출납을 관장하던 선혜청이 지금의 남대문시장 인근의 남창동에 설치가 됐었구요. 1897년에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인 선혜청 창내장이 조성됐고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는 조선농업주식회사가 설립됐고, 1963년에는 그냥 시장이 아니라 주식회사 형태의 남대문시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진행자) 지난 600년 세월동안 남대문시장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지요?

기자) 1897년 선혜청 창내장이라는 이름을 달았을 당시에는 과일가게 3곳, 쌀가게 14곳, 어물전 36곳, 행상 10곳, 담배가게 22곳 등 85개 점포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해방과 한국전쟁 동안에는 사치품과 밀수품,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군수품이 활발하게 거래되면서 ‘앙키시장’ ‘도깨비시장’으로 불렸었는데요. 1954년 남대문 시장에 큰 불이 났었습니다. 점포 100여곳이 불타 없어지면서 동대문시장에 명성이 밀리게 됐지만, 1968년 주식회사 남대문으로 다시 정비를 하면서 다시 활기를 띄게 되고, 지난해 6월을 기준으로 점포가 1만1886개, 1700여종의 물건이 거래되는 ‘시장백화점’으로의 면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상인들이 보유한 차량만해도 8500대, 하루 출입하는 차량은 1700여대, 하루 3500톤의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는 남대문시장 개장 600주년 잔치 소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