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안녕하십니까,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의 김정우입니다. 북한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해군 함정, 푸에블로호를 나포하자, 당시 공산주의 종주국으로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자처하던 소련은 당황하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지 8일 뒤인 1968년 1월 31일, 알렉세이 코시긴 소련 소상에게 비밀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친서를 전달합니다.

(낭독 1 – 김일성 주석: 호전적인 어조로)
미국의 린든 존슨 도당은 한반도에서 호시탐탐 군사적 모험을 강행하려고 합니다. 만일 미국과 남한이 우리 공화국을 공격해 온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난 1961년에 체결된 조소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에 의거해 소련의 지원을 기대할 것입니다.

(해설) 푸에블로호는 미국 해군의 체사피크호가 영국 해군에 의해 나포된 뒤 160년 만에 벌어진 나포 사건으로 이 사건은 미국에 치욕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은 엄청난 군사력을 한반도에 집결시켰고, 북한은 혹시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을 가졌습니다. 북한은 이런 걱정 때문에 소련에 미리 도움을 요청했게 되는데요, 이런 북한의 요청에 소련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의 말을 들어봅니다.

/// Act1 일민국제관계연구소 정성윤 교수 /// “ 당시 소련의 반응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없다.  단지 소련은 지속적으로 북한에게 푸에블로호를 빨리 송환하는 것이 이 위기국면을 타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해설) 지난 시간에 살펴봤듯이 소련은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에 당황했지만, 푸에블로호를 풀어 주도록 북한에 압력을 가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도 완곡하게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소련은 한반도 유사시 군사적 도움을 구하는 북한의 요청에 도리어 푸에블로호를 석방하라는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소련은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을 둘러싸고 때로는 북한과 협력 관계를 때로는 긴장 상태에 있었습니다. 일민국제관계연구소는 정성윤 교수는 일정 기간 동안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을 두고 북한과 소련이 긴장상태에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 Act 2 정성윤 교수 /// “ 소련은 1968년 2월, 북한 측에 미국의 사과를 기다리지 말고 즉시 푸에블로호와 승무원을 돌려주라는 의사를 전하는데, 북한은 이를 무시한다. 훗날 소련 수상 코시긴도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 조두환에게 상당한 불만을 나타낸다. 1968년 4월에 열린 소련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은 당시 진행 중이던 북-미 대화에 대해서 북한이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북한을 비난하고,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는 국제 기준으로 볼 때도 보기 드물게 가혹한 처사다라고 하면서 북한의 행동을 비난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북한과 소련과의 관계를 볼 때, 당시 소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일정 정도 기간 동안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을 두고 북한과 소련 간에는 긴장관계가 있었다라고 추론이 가능하다.”

(해설) 푸에블로호 나포를 둘러싸고 북한과 소련이 벌였던 신경전 중에서 널리 알려진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인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자신의 회고록 ‘대화’에서 밝힌 사건인데요, 리영희 교수는 회고록에서 소련의 압력을 거부하는 북한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외무차관 – 화가 난 어조로) 이것 봐 비서!
(비서) 네, 차관님
(외무차관) 전번에 호출한 북한 대사는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가!
(비서- 주저하는 듯한 어조) 저… 그것이, 소련 외무부 차관이 뵙기를 원한다고 분명히 연락을 했습니다만,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효과) 책상 내려치는 소리
(외무차관) 아니, 이 자들이 대소련의 외무차관을 대체 뭘로 보는거야! 몇번을 불러도 호출에 응하질 않으니, 이 자들이 도대체 제 정신인가? 이것 봐 비서!
(비서) 네 차관님.
(외무차관) 차 대기시키시오. 내가 직접 북한 대사관으로 가겠어.
(효과) 차 문 닫는 소리 + 차 시동 걸고 차 움직이는 소리
(외무차관- 화가 나 씩씩거리며) 이 사람들, 가만히 두질 않겠어.
(효과) 차 소리 + 차 정지하는 소리
(기사) 차관님, 북한 대사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저기 문 앞에 누가 서있는 모습이 보이는군요.  차관님이 오신다는 소리를 듣고 북한 대사가 나와 있는 모양입니다.
(외무차관) 물론 그렇겠지.
(효과) 차 문 열고 닫는 소리 + 구두 발자국
(북한 서기관) 어서 오십시요, 차관님.
(외무차관) 누구시더라? 처음보는 분인데? 그런데 대사는 어디에 계시오?
(북한 서기관) 저는 이곳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삼등 서기관입니다.
(외무차관) 뭐…뭐라구?
(북한 서기관) 다른 분들이 모두 바쁘셔서 제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외무차관) 뭐라구? 이거 보시오. 내가 소련의 외무차괸이야. 주재국 차관이 방문을 하면 당연히 대사가 나와서 영접을 해야지, 일등 서기관, 이등 서기관도 아닌 삼등 서기관을 내보내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해설)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는 북한에 압력을 넣는 소련과 이에 대항하는 북한의 모습을 이같이 묘사하고 있지만, 소련이 북한에 압력을 넣었다는 부분에 대해선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신라대학교 사학과 김정배 교수의 말입니다.

/// Act 3 신라대학교 사학과 김정배 교수 /// “ 사실 북한 지도부는 이전 한국전쟁기에도 압력이 오면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도 압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소련은 압력을 넣지도 않았고 북한은 압력이 들어 오면 강력하게 반발한다. 소련이 북한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라고, 즉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는 조언 정도, 권고 정도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압력을 넣었다는 것은 당시 상황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해설) 김정배 교수는 특히 당시 갈등 관계에 있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보더라도 소련이 북한에 압력을 행사할 여지는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소련이 북한에 압력을 넣지는 않았더라도 상황 해결을 위해서 동분서주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련의 노력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 Act 4 정성윤 교수 /// “ 북한과의 오랜 기간에 걸친 유대관계,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적 유대관계나 당시 많은 분들이 아시는 중-소간의 갈등 상황에서 중-소 갈등에서 북한을 최소한 중립화시켜야 하는 전략적 판단 때문에 소련의 대북 압박은 일정 정도 한계가 있었다.”

(해설) 푸에블로호 송환을 둘러싼 미소 양국과 북한의 움직임이 분주해지는 가운데, 드디어 북한과 미국 정부는 푸에블로호와 승무원 송환을 위한 회담을 열게 됩니다. 이 양자 회담도 정말 흥미진진한 얘기거리가 많은데요,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 사건 다시 보기’, 다음 주 시간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