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서울통신입니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150만 명을 처음으로 돌파했습니다.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서울시청에서 열렸습니다. VOA 서울지국을 연결해서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한국 사회도 이제 사실상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접어들었군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이주노동자, 결혼 이민자, 귀화자 등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15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국민 100명 가운데 3명 꼴로 외국인인 셈입니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외국인이 한국 내 총인구의 3%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급증해 한국 사회는 이제 외국인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진행자)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언제 이렇게 늘었죠?

기자) 법무부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어제 현재로 한국 체류 외국인은 150만 천761명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2003년 체류 외국인이 67만8천 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2배 넘게 급증한 걸 알 수 있습니다.

국제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외국인들의 한국내 체류가 꾸준히 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재외동포를 위한 방문취업제가 도입된 지난 2007년 체류 외국인 수가 100만 명을 기록하며 외국인 100만 명 시대를 열었습니다.

진행자) 국적별이라든지, 연령별로 외국인 현황을 한 번 살펴볼까요?

기자) 국적별로는 한국계를 포함한 중국이 절반 가량을 차지해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서 미국 9%, 베트남 8%, 일본과 필리핀, 타이 등의 순이었습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28%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30대와 40대의 순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불법체류자는 17만 9천여 명 정도입니다. 한 때 20만 명을 웃돌기도 했으나, 지난 2009년 이후 17만 명 안팎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진행자) 다문화 가족도 당연히 많아졌겠군요?

기자) 네, 결혼이민자, 혼인 귀화자, 기타 사유 국적 취득자 등 다문화 가족은 지난해 말 현재 26만 7천7백여 명에 이릅니다.

진행자) 이제 단일민족을 전통으로 삼아 온 한국 사회가 새로운 환경을 맞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외국인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다문화 환경으로 진입했습니다.

이에 따라 다문화에 따른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주동포정책연구소 곽재석 소장의 제언입니다.

[녹취; 이주동포정책연구소 곽재석 소장] “지금 우리나라가 다문화 외국인의 유입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너무 급속하게 진행하다 보니 다양한 계층의 많은 외국인들이 동포를 포함해서 다문화 정책 안에서 효율적으로 대응이 안되고 방치돼 있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효율적으로 종합적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다문화 가정 뿐 아니라 외국인 혐오증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다문화를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에 녹아들게 할 통합적이고 균형 잡힌 외국인 정책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진행자) 한국이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진입했다는 소식, 알아봤습니다.

오늘은 제26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일이군요?

기자) 네,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오늘 서울시청에서 열렸습니다.

기념식에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 그리고 여야 대표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번 기념식은 지난 2007년 6.10 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뒤 일곱 번째로 열렸습니다.

진행자) 박근혜 대통령의 기념사 내용, 정리해 주시죠?

기자) 네, 박근혜 대통령은 유정복 장관이 대신 읽은 기념사에서 1987년 6월은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분수령이었다고 평가하고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뜨거운 열망은 위대한 역사의 전진을 이뤄냈다고 말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어 북녘의 동포들도 자유와 번영을 함께 누려야 한다며 평화 통일의 기반을 구축해 한반도 행복시대를 열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6.10 민주항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볼까요?

기자) 네, 6.10 민주항쟁은 지난 1987년 1월 당시 대학생이던 박종철 군이 고문으로 숨지는 사건에 뒤이어 5공화국 정부가 대통령 선출방식을 간선제로 유지하겠다는 이른바 4.13 호헌조치 발표가 도화선이 됐습니다.

이에 맞서 이 해 6월 대학생과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 주요도시로 번져나갔습니다.

이 6.10 민주항쟁은 정부가 직선제 개헌을 약속한 이른바 6.29 선언을 발표하고서야 소요사태가 진정됐습니다.

진행자)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63년 만에 훈장을 찾아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요?

기자) 네, 오늘 훈장 전수식이 열렸는데, 육군 제31 보병사단은 전라남도 곡성군에 사는 90살 김재권 옹과 가족 등 40여 명을 초청해 사단사령부에서 무성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김 옹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0년 12월 훈장증을 받았지만 전쟁 속에 잃어버리고 63년이 지나서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훈장을 받았습니다.

당시 훈장증은 작은 명함 정도의 가수여증이라서 쉽게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김 옹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생계를 잇느라 반세기가 넘도록 훈장에 관해 잊고 지냈다고 합니다.

진행자) 김재권 옹과 같은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던데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김 옹처럼 무공을 세우고도 훈장을 받지 못한 무공자는 16만 2천 9백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공을 세우고도 훈장증을 분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고령의 무공자들은 자신이 무공훈장을 받은 사실조차 잊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육군본부는 지난 1965년부터 ‘훈장 찾아주기 운동’을 벌여 해마다 5천여 명을 찾아 훈장을 정식으로 수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