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프와코비체 국립중앙제2학원에서 발견된 북한 고아들의 사진.
1950년대 체코 '김일성학원'에서 찍은 기념 사진.

한국전쟁 당시 북한 고아들의 동유럽 이주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이 오는 5월 열리는 프랑스 니스 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합니다. 1950년대 북한 김일성 주석이 권력을 다지는 과정에서 전쟁고아들이 어떻게 희생양이 됐는지 조명한 영화입니다. 김영교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1950년대 북한 전쟁고아들의 동유럽 이주에 대해 15년째 조사해 온 한국의 김덕영 영화감독이 올해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김일성의 아이들'이란 제목의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지난 2004년 북한인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한 루마니아 여성을 만나게 된 때문이었습니다.

1953년부터 북한 전쟁고아들의 위탁교육을 맡은 루마니아 학교 교사였던 이 여성은, 당시 아이들을 인솔해 온 북한 교사와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 북한으로 돌아간 남편은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둘 사이에 태어난 딸은 수 십 년 간 아버지를 보지 못한 채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돼 있습니다.

김덕영 감독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추적하면서, 이후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폴란드,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등 다른 동유럽 나라에도 북한 전쟁고아들이 이주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녹취: 영화 중 김덕영 감독 목소리] “냉전이 강화되던 시기, 사회주의 종주국 소비에트연방은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대외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유럽 각국에 전쟁고아들을 위한 학교와 기숙사의 설치를 명령했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전쟁의 뒤처리까지도 앞서야 했던 것이다.”

폴란드 프와코비체 국립중앙제2학원에서 발견된 북한 전쟁고아 유학생들의 기념 현판.

한국전쟁 직후 한반도에는 10만 명의 전쟁고아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적게는 5천명, 많게는 1만 명에 달하는 북한 고아들이 동유럽 국가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남한의 전쟁고아들이 해외입양이라는 방식을 통해 미국과 유럽으로 이주했다면, 북한의 전쟁고아들은 동유럽 여러 나라에 ‘현지 위탁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분산 수용되는 방식이었던 겁니다.

김덕영 감독은 취재 과정에서 동유럽에 생존해 있는 북한 전쟁고아들의 친구와 교사 등 11명의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또 각국의 기록보관소와 국립도서관 등을 통해 100여 장의 사진과 북한 전쟁고아들이 북으로 돌아간 뒤 유럽으로 보낸 80여 통의 편지, 그리고 북한 전쟁고아들의 일상에 대한 기록필름 등을 발굴했습니다.

다섯 개 유럽 나라를 취재하면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북한의 전쟁고아들에 대해 김일성 유일사상과 주체사상 교육이 치밀하게 이뤄졌다는 점이었다고 김덕영 감독은 말했습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의 시작이 통상 알려져 있는1960년대가 아니라 이미 1950년대 초부터 준비되고 있던 것으로 보여진다는 겁니다.

김덕영 감독은 26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전쟁고아들이 생활했던 동유럽의 기숙사와 학교가 주체사상과 김일성 주석의 권력 강화를 위한 실험장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덕영 감독] “북한의 전쟁 고아들은 외국에 나가서 도움을 받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치밀하게 진행이 됐어요. 북한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북한의 교사들이 파견됐고, 교사들이 또 아이들의 교육을 맡았는데, 상당 부분은 아이들의 사상을 치밀하게 교육시켰던 부분이 여러 가지 객관적인 자료로 나오고 있죠.”

동유럽 교사와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동유럽 내 북한 전쟁고아들은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어려워했지만 차츰 안정을 찾게 됐다고, 김덕영 감독은 말했습니다. 현지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현지 생활에 대한 적응도 빨라졌다는 겁니다.

그러던 중 1956년 북한의 ‘전쟁고아 송환작전’이 시작됩니다. 김덕영 감독은 북한 전쟁고아들의 갑작스런 송환이 김일성 주석이 국내에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과 연관이 있던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1956년 8월 김일성 주석의 부재를 틈타 북한 내부에서 반김일성주의 종파투쟁이 일어나면서, 유럽의 선진 문화와 교육을 받은 아이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같은해 10월 헝가리에서 일어난 자유화 혁명에 가담한 북한 고아들이 있다는 것도 김일성 주석의 권력 강화에 위협으로 작용했습니다. 서구 문명을 몸으로 체득한 북한 전쟁고아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 중 일부는 다시 동유럽으로 돌아가겠다며 탈북을 시도했지만 도중에 사망했다는 기록도, 당시 전쟁고아들이 동유럽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 북한 정권은 송환된 전쟁고아들을 대부분 탄광이나 공장에 배치하고 모두 개별적으로 분산시켜 정치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은 올해 5월 9일 열릴 프랑스 니스 국제영화제의 본선 진출 작품으로 선정됐습니다.

[녹취: 김덕영 감독] “북한의 폐쇄성, 북한의 비정상성을 국제사회가 계속 주목했던 부분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부분을 역사적으로 접근한 부분이 어필하지 않았나,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동안 산발적으로 사건들에 대한 접근과 분석은 많았지만, 이것을 입체적으로 역사적으로 접근한 부분은 사실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들이거든요. 그동안 북한에 대한 이해나 해석을 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내용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에 니스 영화제에서도 주목하지 않았나.” 김덕영 감독은 그러면서 이 영화가 폐쇄적인 북한사회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접근과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은 오는 6월 25일 한국전쟁 70주년에 맞춰 한국 극장가에서 개봉될 예정입니다.

VOA뉴스 김영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