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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소설 ‘벗’ 영어 번역 출간…“북한에도 보통사람 살고 있어”


북한 소설 '벗'을 쓴 백남룡 작가(왼쪽)와 영어 번역본을 출간한 미국 조지워싱턴대 이마뉴엘 김 교수.
북한 소설 '벗'을 쓴 백남룡 작가(왼쪽)와 영어 번역본을 출간한 미국 조지워싱턴대 이마뉴엘 김 교수.

북한 소설 ‘벗’이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 출간됐습니다. 책을 번역을 한 이마뉴엘 김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북한에 언론에 비춰지는 것과 다른 모습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교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의 백남룡 작가가 1988년에 쓴 ‘벗’이라는 소설이 영어로 번역돼 지난 17일 미국에서 출간됐습니다.

젊은 여성이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본인과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소송을 맡은 판사가 자신의 결혼도 되돌아보는 모습이 병행되는 것이 주요 내용인 이 소설은 이미 2011년 프랑스에서도 번역 출간된 바 있습니다.

이 책을 번역한 미국 조지워싱턴대의 이마뉴엘 김 교수는 20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모든 문학이 정권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며, 북한 사람들도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비슷한 일상 생활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마뉴엘 김 교수] “북한 문학을 연구하면서, 1960년도부터 90년도까지 나온 단편, 중편, 장편을 많이 읽었습니다. 많이 읽다보니까 약간 희망이 없어보이더라고요. ‘내가 왜 이 연구를 시작했을까. 전에 읽은 스토리가 지금 읽은 스토리랑 줄거리도 내용도 비슷하고. 뭐라할까 많이 힘들었어요. 그 와중에 백남룡 선생의 벗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다르더라고요. 바로 이혼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고 주인공들이 어떻게 처음에 만났고, 결혼했고 다투기 시작했는지, 그 과정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북한 소설 '벗'을 영어로 번역한 'Friend' 표지.
북한 소설 '벗'을 영어로 번역한 'Friend' 표지.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힘든 일들은 세상 여느 사람들도 경험하는 일이고,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의 사람들도 공감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이마뉴엘 김 교수는 이 소설의 번역으로 북한을 완전히 이해하도록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북한이라는 나라도 보통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라는 걸 보여주는 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소설 ‘벗’이 가정 문제를 다루면서 여성 문제를 다뤘다는데 주목했다고 이마뉴엘 김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녹취: 이마뉴엘 김 교수] “식민지 시대 때 작가들이 평양에 와서 활동을 하던 그 시기, 30년대와 40년대에는 활발하게 감정적으로 써 나갔습니다. 여성들이 남성과 차별이 없다는 주제로 밀고 나갔는데 한50년대, 60년대가 다가와서 그 스토리들이 없어졌습니다.”

김일성 북한 주석의 생모 강반석이나 김일성 주석의 정실부인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머니인 김정숙을 우상화하면서 여성들은 무조건적으로 남성들에게 충성하고 남성들을 따라야 한다는 이미지가 문학에서도 그려졌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와서 백남룡 작가의 책 등에서 남편에게 반항하고 이혼까지 하며 개성 있는 여성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마뉴엘 김 교수는 백남룡 작가가 북한 노동당 내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던 작가였기 때문에 북한 문학의 선전적인 성격을 넘어서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소설 ‘벗’의 주요 인물인 판사가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북한 노동당의 지침대로 생활하도록 설교하고 가르치려는 모습에서 여전히 선전적인 모습이 남아있는 것은 북한 문학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설 ‘벗’이 다른 북한 소설과는 다른 점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사건의 전개, 작가의 아름다운 산문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마뉴엘 김 교수] “백남룡 선생은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부인이 돌아가셔서 거기에 대한 아픔을 책에다 쏟았습니다. ‘벗’이 너무 좋았던게 이혼 얘기도 충격적이고 다른 북한 소설보다 거기 나오는 여성들이 강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정진우 판사의 부인이에요. 그 분은 연구자이고. 집을 떠나 농촌에 가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집에 안오잖아요. 소설 끝 부분에 가서 나타나는데 잠시 나타나고 또 사라져요. 연구하러. 집안 일을 안하고 남편이 뭘 먹고 사는지 관심도 없고 자신의 리서치에 충실한 그런 여성은 북한 문학에 많지 않아요.”

이마뉴엘 김 교수는 1990년대 와서 북한 문학에서 이런 여성상이 다시 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1994년도 가뭄을 시작으로 1990년 중후반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되면서 북한 정권이 여성들에게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참다운 어머니 상’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마뉴엘 김 교수는 소설 ‘벗’을 통해 북한에도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마뉴엘 김 교수] “우리가 북한에 대한 지식을 얻는건 미국 미디어(언론)이죠. 그런데서 북한을 알게 되지만, 그것만이 북한이 아니다…”

이마뉴엘 김 교수는 다음달 북한의 영화를 다루는 책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녹취: 이마뉴엘 김 교수] “북한 영화에 대해서는 그동안 미국이나 한국도 많이 나왔지만, 북한 영화를 다룬다고 하면 드라마틱하고 감성적이고 사상적이고 그런 영화들만 다루더라고요. 제가 북한 문학을 연구하면서 쉬는 시간에 봤던게 코미디 영화인데, 코미디 영화가 꽤 있는거에요.”

새로 나올 책은 북한의 인기 영화 시리즈인 ‘우리집 문제’ 를 중심으로 북한의 코미디 영화에 대한 내용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이마뉴엘 김 교수는 말했습니다.

VOA뉴스 김영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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