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기자들이 북한을 방문한 지난 4월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북한 태권도 선수들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북한 선수들이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에 돌입하면서 미국 내에서는 한동안 중단됐던 양국 간 민간 교류의 시동을 걸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치적 긴장의 완화와 맞물려 스포츠 교류, 이산가족 상봉, 의료 지원 등을 통해 미-북 관계 해빙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미-북 관계 해빙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대표적인 민간 부문은 북한과의 스포츠 교류를 꾸준히 시도해온 미국 태권도계입니다. 

2007년과 2011년엔 북한의 ‘조선 태권도시범단’을 미국에 초청해 주요 도시를 돌며 공연을 펼치기도 했지만 이후 잇단 핵·미사일 실험과 미국인 억류 문제 등으로 두 나라 관계가 장기간 냉각되면서 추가 시범 계획이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입니다. 

두 차례에 걸친 북한 태권도시범단의 미국 공연을 주선한 정우진 ‘태권도타임스’ 잡지 대표는 6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7년 동안 살얼음을 걷듯 조심스럽게 3차 시범을 준비했지만 미-북 관계 경색에 거듭 발목을 잡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우진 태권도타임스 대표] “순수한 문화, 체육 교류도 어쩔 수 없이 그때 그때 정치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어떨 때는 미국 정부의 암묵적인, 혹은 공개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북한 선수들 초청에 탄력을 받기도 하다가도 금새 문이 닫혀버려서 수 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011년 6월 북한 태권도시범단이 보스턴을 방문했을 때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당시 매사추세츠 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으로서 직접 축하 서한까지 보냈습니다. 북한 시범단과의 문화교류가 미국인들에게 태권도를 알리고, 더 나아가 미-북 양국간 화합과 우애, 평화를 촉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많은 박수를 받고 미국을 떠나던 북한 시범단은 당시 VOA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무대에 곧 다시 설 날을 기약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북한 태권도시범단 김순희 선수] “다시 한번 (기회가) 있다면 우리 전통무술인 태권도의 기상과 넋을 다시 한번 힘있게 과시하고 싶습니다.”

북한 태권도 시범단 원용남 감독(좌)과 김순희 선수(우)
2011년 미국을 방문한 북한 태권도 시범단 원용남 감독(좌)과 김순희 선수(우)

​​하지만 그 해 공연의 성공을 바탕으로 2012년과 2013년 여름 에 각각 추진됐던 추가 시범 계획은 미-북 관계 악화로 모두 불발로 끝난 뒤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거의 꺼져버린 재공연 가능성의 불씨를 살린 건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었습니다. 

정우진 대표의 설명입니다. 

[녹취: 정우진 태권도타임스 대표] “생각지도 못했던 미국과 북한 지도자의 만남이 현실화됐습니다, 자연스럽게 정치적 긴장이나 군사 위협도 줄어들기 시작했고요. 이런 분위기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고 더 나아가 정치적 갈등도 줄일 수 있는 게 문화, 스포츠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아, 북한 태권도시범단의 3차 방북을 다시 시도해볼 수 있겠구나, 그런 기대가 생겼습니다. 

정 대표는 지난 수 년간 북한 태권도 당국과 북한 시범단 초청 문제를 상당히 구체적인 부분까지 논의해왔습니다. 특히 2015년에는 평양에서 북한의 장웅 당시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와 만나 미국 공연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습니다.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겸 ITF 명예 총재는 당시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태권도시범단의 3차 미국 공연에 대해 긍정적 기대를 나타낸 바 있습니다. 

[녹취: 장웅 북한 IOC 위원] “지금 또 추진을 하는 것 같은데, 정우진 사장 선생이 추진을 하고, 태권도 시범단, 조선태권도시범단의 미국 방문은 지금 추진 중에 있는 거 같습니다. 거기 힘든 게 뭐 없죠. 사증 신청하고, 사증 주고 가고, 그 다음에 또 미국 태권도인들 평양 오고 답례하고 하면 되는 겁니다.”

지난 6월 평양 옥류관 식당에서 정우진 대표(오른쪽)가 장웅 북한 IOC 위원과 태권도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 태권도타임스. (자료사진)
정우진 대표(오른쪽)가 2015년 6월 22일 평양 옥류관 식당에서 장웅 북한 IOC 위원과 태권도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우진 '태권도타임스' 대표)

​​​​​​정우진 대표는 북한 시범단의 3차 미국 방문이 성사된다면 공연 도시를 늘리고 일반 공연장 외에 양로원과 장애인 시설 등 사회복지 시설에서의 위문 공연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태권도인들 뿐 아니라 전통악기 연주자들도 포함시켜 북한의 예술 기량을 소개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후로 방향을 튼 미-북 관계에 더욱 기대를 거는 이들은 북한에 친지를 둔 미국 내 이산가족들입니다. 

남북한 이산가족 간에는 20번의 대면상봉과 7번의 화상상봉이 성사됐지만 미-북 간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인들과 관련 단체의 수십 년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 이산가족들은 그 동안 VOA와의 인터뷰에서, 만날 수 없는 고향의 친지를 향한 그리움을 전해왔습니다. 

[녹취: 이원희 씨, 이산가족] “이제는 눈물도 말랐고, 다 말랐습니다. 나도 이제 몸도 늙었고.”

[녹취: 왕규현 씨, 이산가족] “난 지금도 생각나요. 어머니가…(흐느낌)… 없는 돈에 어디서 인절미를 조금 사오셨더라고. 그걸 주면서 점심으로 먹으라고 그러면서 통곡을 하면서 우는 게 내가 지금도 생각나죠…(한숨)”

60년 넘게 상봉은 물론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 화상 접촉도 할 수 없었던 미국 내 이산가족들은 최근 논의가 활발해진 미-북 간 상호 조치에 가족 상봉 또한 포함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북한이 최근 미국의 한인 실향민 단체가 추진하는 이산가족 상봉 사업에 최초로 협조를 약속한 건 그래서 크게 주목 받았습니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가 지난 5월24일 서한을 통해, 지난 2월12일 가족 확인 요청 서류를 접수한 북가주 이북5도연합회 소속 재미 이산가족 4명 가운데 2명의 가족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려온 겁니다.

이 단체의 백행기 회장은 6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북한 당국의 태도가 훨씬 유연해진 것을 느낀다며, 미-북 협상이 이런 움직임을 가속시키는 방향으로 풀리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백행기 회장]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 그 동안 약 7~8년 동안 우리가 접촉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북미 정상회담 이후로 북한 쪽에서 굉장히 협조적이고, 또한 앞으로 이런 문제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지속되고 만남이 이룩될 수 있기 바랍니다.”

미국 ‘북가주 이북5도민 연합회'의 백행기 사무총장(왼쪽부터)과 최근 북한에서 가족을 만나고 돌아온 이건용 씨, 방흥규 씨.
미국 ‘북가주 이북5도연합회'의 백행기 회장(왼쪽부터)과 지난 2014년 북한에서 가족을 만나고 돌아온 이건용 씨, 방흥규 씨.

​​특히 북한은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의 친지 상봉을 개별적으로 허가하는 대가로 ‘비료와 옥수수 값’을 받아왔으나 최근 이런 관행에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백 회장은 이 같은 분위기에 고무돼 최근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해 이산가족 2명의 가족 확인 신청서를 추가로 접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인들의 북한 여행이 미국 정부에 의해 금지돼 있는 만큼 일단은 서신 교환을 추진한 뒤 가족 방문이라는 인도적 목적을 증명해 국무부에서 방북 예외 승인을 받을 계획입니다. 

[녹취: 백행기 회장] “북미 정상회담은 핵이나 전쟁에 관한 여러 가지 중요점을 이슈로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산가족들은 전쟁으로 인해서 가족들과 이별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연세가 여든 살, 아흔 살이 됐고 하루속히 가족을 만나고 상봉하는 것이 꿈입니다.”

미-북 간 체육 교류와 이산가족 상봉 문제만큼 눈에 띄진 않았지만 20년 넘게 조용히 명맥을 이어온 또 하나의 민간 교류는 한국계 미국인 의사들의 대북 의료 지원 활동입니다.

미국의 한인단체인 재미동포연합 산하 ‘조미의학과학교류촉진회’ 박문재 회장은 심장내과 전문의로서 지난 1998년부터 매년 4월 말~5월 초 미국 의료 대표단을 이끌고 방북해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학술대회를 열어왔습니다. 

또 평양 제3인민병원, 김만유 병원, 평양의과대학 등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내시경과 수술 기구 등 각종 의료기기와 결핵약, 항생제, 마취제와 같은 의약품도 북한에 전달했었습니다.

박문재 씨가 여동생 박정재 씨와 함께 지난달 31일 일리노이 주 다리엔 시의 ‘클라렌돈 힐스 묘지’에서 열린 유해 안장식에서 누나 박경재 씨의 사진을 들고 있다.
박문재 박사와 여동생 박정재 씨가 2015년 10월 31일 일리노이 주 다리엔 시의 ‘클라렌돈 힐스 묘지’에 북한에서 가져온 누나 박경재 씨의 유해 일부를 안장하고 있다.

​​박 회장은 3년 전 신경외과, 정형외과, 안과, 심장외과 의사 등으로 구성된 젊은 한인 2세 의료인들에게 방북 의료지원 활동을 넘겼고, 이들은 북한에서 복잡한 수술 집도는 물론 현지 의사들에게 최신 의술을 전수하는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등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특히 미 국무부가 지난해 9월 북한을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하면서 이들의 방북 또한 인도주의 예외 조건을 증명해야 하는 등 까다로워졌습니다. 

박 회장은 6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미-북 관계 해빙 움직임이 장기적으로 양국간 의료 협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했습니다. 

[녹취: 박문재 회장] “의사 아닌 사람들도 그렇고, 의사들도 그렇고, (북한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의학 교류에 지장이 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료 약품이라든가 의료 기술, 의료 기구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싱가포르 서밋을 통해서 이런 교류가 크게 열리리라고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 회장은 특히 미-북 관계 악화로 15년 넘게 중단됐던 북한 의사 미국 초청 프로그램을 재개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 역시 미-북 협상이 진전되는 가운데 복구되기를 희망했습니다. 북한 의료인들이 미국에 수 개월씩 머물며 의과대학에서 심장 수술 등 선진 의료 기법을 전수받던 과거 교류 프로그램을 재개하고 싶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박문재 회장] “(북한의) 심장외과 의사들을 서너 명을 데려다가 미국에서 3개월 동안 훈련을 받고 돌아가서, 지금 북한에서 예를 들면 심장 바이패스 수술은 아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정상회담이라는 높은 단계에서부터 대화의 물꼬를 튼 두 나라가 다양한 민간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수준까지 정치적 해빙을 이어갈 지, 관련 분야 종사자들은 기대반 우려반 속에 활동 재개에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