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6월 북한 평양의 한 식료품 공장 노동자들이 세계식량기구(WFP)가 지원한 식량을 옮기고 있다.
지난 2003년 6월 북한 평양의 한 식료품 공장 노동자들이 세계식량기구(WFP)가 지원한 식량을 옮기고 있다. (자료사진)

한국 통일부가 세계식량계획, WFP를 통한 대북 쌀 지원이 북한의 거부로 무산되면서 관련 사업비를 환수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은 ‘선미후남’, 즉 미국 차기 행정부와의 관계설정을 우선시하면서 한국정부의 남북협력 제안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선 냉담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기자가 보도합니다.

여상기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30일 정부서울청사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해 세계식량계획, WFP을 통해 추진하다가 북한의 거부로

보류된 쌀 5만t 대북지원사업 비용 138억원, 미화로 1천177만달러를 다음 달 중 환수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여상기 대변인] “그동안 WFP를 통해서 쌀 5만t을 대북 지원하기로 추진해 왔는데 현재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동 국제기구와 사업관리비 1천177만달러를 환수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통일부는 앞서 지난해 6월 제306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쌀 5만t 구입비 273억원과 한국에서 북한항으로의 수송비와 북한 내 분배와 모니터링에 필요한 사업관리비 138억원 등을 의결하고 이 가운데 사업관리비는 WFP에 미리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작년 7월 미-한 연합훈련 등을 문제 삼으며 쌀 수령을 거부해 해당 사업은 현재까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체 비용 중 작년에 집행되지 않아 올해로 이월 처리된 쌀 구입비 예산은 올해에도 북한의 무응답으로 집행 가능성이 희박해졌습니다.

쌀 구입 예산을 또 다시 내년으로 이월하는 조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사업을 연내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미리 지급된 사업관리비를 다음달 중으로 WFP로부터 돌려받는 절차를 밟게 됐다는 게 통일부의 설명입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국제기구가 연내 사업진행 불가 판단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최종 판단이 나오면 구체적인 환수날짜도 결정될 것”이라며 다만 북한의 태도 변화 여부가 남은 변수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올해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국경봉쇄를 강화하고 있는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지난 27일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국가정보원 보고를 받은 직후 브리핑에서 북한이 신종 코로나 때문에 외부 물자를 받지 않는 등 편집증이 심하다며 중국이 제공하기로 한 쌀 11만t도 다롄 항에서 반입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국정원 정보위 보고에 따르면 중국에서 지원한 식량도 방치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 오는 식량을 받을 리 없고요. 또 하나는 최근 노동신문 등 매체 보도에 따르면 봉쇄 장벽을 구축하라, 해안가와 분계연선 이는 남쪽 국경을 말하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방역조치를 취하고 부유물을 소각하라는 얘기를 했거든요.”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 과거와 달리 WFP를 통한 한국 정부의 지원을 거부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론 신종 코로나 방역차원이지만 남북관계 보다는 미국 차기 행정부와의 관계 설정을 우선시하는 이른바 ‘선미후남’ 전략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남북관계로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한국과 협력을 한다고 해도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대미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게 김 전 차관의 분석입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그러니까 국정원 보고도 보면 미국에 대해 절대로 이상한 소리하지 말라 그거 아니에요. 철저하게 미국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미국쪽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지 남북쪽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잖아요. 북한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해 봐야 소위 말해서 언 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해서 별로 도움이 안된다. 괜히 거기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미국에 집중하자 그런 상황인 거죠.”

한국 국가정보원은 2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북한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해외 공관에 미국을 자극하는 대응을 하지 말라는 방침을 내려보냈다고 보고했습니다.

통일부는 그러나 대북 지원 의지는 여전하다는 입장입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최근 한국의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내년 식량 사정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면서 “식량과 비료를 적지 않은 규모로 적정한 때 협력할 용의가 분명히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 전 차관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선미후남’ 전략을 모르는 게 아니라면서 미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유동적인 상황에서 미-북 협상 재개의 중재자로서의 한국의 역할을 부각시킴으로써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부터 풀어야 한다는 설득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