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북한 평양에서 '80일 전투' 궐기대회가 열렸다.
지난달 12일 북한 평양에서 '80일 전투' 궐기대회가 열렸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자연재해 등 삼중고로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는 북한이 북-중 국경 봉쇄 조치를 조금씩 완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가 경제는 물론 피폐해진 장마당 민생경제를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데 따른 움직임이라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2017년 이후 국제사회 제재 강화로 중국과의 무역량이 크게 줄어든 북한은 올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겹치면서 그 규모가 더 쪼그라들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방역을 위한 중국과의 국경 봉쇄로 북-중 무역 총액은 지난 3월 1천864만 달러, 4월엔 2천400만 달러에 그쳤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북-중 관계 전문가인 이상숙 교수는 신종 코로나 사태로 북한의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규모가 급감했다며, 올해 7월까지 수입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나 줄었다고 밝혔습니다.

북-중 교역량은 비록 예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5월 이후엔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5월 6천331만 달러, 6월 9천680만 달러, 그리고 7월엔 7천384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 교수는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북한 당국이 국경 통제를 일부 완화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상숙 교수] “이번에 당 창건 기념식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아주 코로나가 심각한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중국도 많이 호전됐기 때문에 북한이 (국경 봉쇄를) 조금씩은 푸는 거죠, 경제를 위해서. 그런데 그게 아주 대규모로 보기는 어렵고요.”

이 교수는 북-중 교역 종사자들의 말을 빌어 북한이 당 창건 75주년 기념식 준비 등을 위해 지난 8월과 9월에도 국경 봉쇄 조치를 유연하게 운영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도 북한이 중국과의 국경을 일부 열기 위한 준비에 착수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이 신종 코로나 방역을 이동 통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장마당 경제가 얼어붙고 밀가루, 식용유, 설탕, 조미료 등 중국에 의존하는 생필품 부족 현상 때문에 통제를 일부 풀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고 그러니까 북한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경을 개방하려는 준비하는 정황은 포착이 되고 있습니다. 뭐냐 하면 개방을 했을 때, 물품이 들어올 때 소독, 방역 그리고 인적 물적 유입에 대해서 방역을 하는 절차를 만들고 있다는 첩보가 있거든요.”

탈북민 출신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북한 내부 소식통의 말을 빌어 북한 당국이 신종 코로나 방역 차원에서 인적 교류는 지속적으로 차단하면서도 물자 이동은 어느 정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쌀 같은 경우는 사람이 직접 만나지 않고도 무역 통로를 통해서 계속 지금 들어오고 있어요. 쌀이. 중국 쌀이 계속 들어오고 있고 항구를 통해서도 조금씩 들어오고 있고, 코로나 봉쇄로 인해서 사람과 사람 간 만남은 완전히 차단했지만 일부 물자 유통은 완전하진 않지만 진행되고 있는 상황으로 봐야 돼죠.”

조 소장은 그러나 세관을 통과하는 공식 무역이 줄어들긴 했지만 사람간 접촉이 불가피한 밀무역의 경우 국경 통제 강화로 타격이 더 심각하다며, 이 때문에 장마당에 공급되던 생필품들이 귀해지고 민생고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물품 공급은 줄어드는데 주민들의 구매력 저하로 가격이 오르지 않는 북한식 디플레이션 현상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일부 국경통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경제난을 수습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조 박사는 지난 2017년부터 북한은 매년 20억 달러 규모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는 북한의 추정 외환보유액이 50억~70억 달러임을 감안할 때 무역적자의 누적으로 모두 고갈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감소가 단지 신종 코로나로 인한 국경 봉쇄 탓만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조충희 소장은 북한 당국이 주민 노력동원 운동으로 시작한 ‘80일 전투’의 목표를 보면 북한 경제의 심각함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방역을 제대로 하면서 기존 4분기 계획을 수행하라는 80일 전투의 목표는 현상유지만 해도 성공이라고 할 만큼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게 조 소장의 설명입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실질적으로 지난 기간에 70일 전투, 200일 전투 이런 전투들에서 증산 목표를 세우고 전투를 한 게 상례였는데 그게 아니고 이미 만들어진 목표를 수행하는 것만 해도 80일 전투의 승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 할 수가 있죠.”

이 때문에 북한으로선 외부 지원에 대한 필요성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사회주의 혈맹을 앞세우며 중국과의 밀착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북한의 어려운 경제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입니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아 중공군 열사능을 참배했다고 22일 보도했습니다.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김 위원장이 이 와중에 이례적으로 마오쩌둥 아들 묘까지 특별히 간 장면까지 노동신문에 나왔거든요. 그렇게 보면 모종의 일종의 시그널이라고 볼 수 있죠. 매우 각별하게 애정 표현을 한 거거든요.”

이상숙 교수는 시진핑 주석이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에 즈음해 김 위원장에게 보낸 축전에서 단순한 우호관계 강조를 넘어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동질성을 부각시킨 대목이 눈에 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는 중국으로서도 우방 관리 차원에서 북한에 보다 우호적인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