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고층 건물들이 세워지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해 6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고층 건물들이 세워지고 있다. (자료사진)

2차 미-북 정상회담 장소가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로 결정되면서 북한의 베트남식 경제개혁 모델 채택 가능성이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베트남이나 중국을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북한은 베트남식 경제발전 방식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추구할 수도 없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12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 기조강연에서 북한의 경제발전 방식이 베트남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종석 전 장관] “성장 잠재력에서 북한은 수십만 명의 첨단 IT 기술 인력을 갖고 출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베트남과 다른 조건을 갖고 있고 중국이나 한국이라는 막대한 지하자원을 수출할 수 있는 수요처도 갖고 있습니다.”

북한은 “베트남 초기 개혁·개방 때와 달리 투자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문만 열리면 북한에 들어가 사업을 하려는 중국과 한국의 수많은 기업을 주위에 두고 있다”는 겁니다. 

이 전 장관은 또 북-일 관계가 정상화 되면 북한은 과거 200억 달러로 추산됐던 대일청구권 자금을 받을 수 있고, 중국이 독자적으로 북한에 대한 사회기반시설 지원에 관심이 크기 때문에 변화 조건이 베트남과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베트남이 개혁개방 노선을 밟은 지 30년이 됐지만, 2017년 1인당 GDP가 2천 300여 달러로 북한의 2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는 북한이 원하는 빠른 성장모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종석 전 장관]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에 가서 여기저기 개혁개방 지역들을 보고 지나갈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베트남 모델을 따라간다고 표현하기에는 북한과 베트남 사이에는 이런 근본적인 발전에 필요한 요소나 역사, 경험이 다르지 않은가?”

김정은 정권은 ‘단번도약’을 열망하고 있어 베트남식 완만한 성장과는 거리가 있으며, 오히려 고도로 성장한 중국식 발전모델을 선호해 지금도 많은 인력을 북한에 파견하고 있다는 겁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김병로 교수는 베트남이 북한체제보다 너무 많이 개방돼 있기 때문에 북한은 정치체제가 자신들과 좀 더 비슷한 중국식 개혁이 더 안전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개혁은 점진적으로 하면서 고도의 성장을 보이는 중국 모델을 김정은 위원장이 더 선호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국 언론들은 미-북 정상회담 장소로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가 결정되자 ‘북, 베트남 모델로 경제로켓 점화할까?’, ‘김정은, 베트남식 개혁·개방 현장학습 준비하나’, ‘김정은, 베트남 벤치마킹 할까?’란 제목 등을 달며 여러 전망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교수는 이날 토론회 뒤 ‘VOA’에, 미국-베트남 관계 개선이 베트남의 경제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가 미-북 관계 개선과 북한의 경제발전에도 시사하는 함의는 충분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실제로 이런 베트남식 모델을 따를지는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김병연 교수] “북한이 베트남처럼 전 세계 FDI(해외직접투자)를 지역에 제한 없이 다 받을 수 있다라는 게 완전한 개혁·개방인데, 그게 베트남 모델이라고 한다면 북한이 그런 베트남식 모델을 따를 준비와 의지가 있는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볼 수 있겠죠. 저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북한 정권은 해외직접투자로 주민과 외국 자본의 접촉이 늘어나 주민들이 자본주의 생활 방식을 따르는 상황을 체제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결단이 어려울 것이란 설명입니다.

적대관계였던 베트남과 미국은 베트남 공산당이 1986년 개혁과 개방을 추구하는 도이모이를 채택한 후 10년 만인 1995년에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이후 6년 뒤인 2001년에 미-베트남 간 무역협정 비준,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통해 실질적인 국제경제 공동체에 편입해 고도의 성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종연구소의 조경환 객원연구위원은 12일 보고서에서 미국은 수교의 핵심 조건으로 토지 사유화, 다당제 전환,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내세웠고 지원을 늘릴 때마다 내부 개혁 조치를 요구한 게 두 나라 관계 개선의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도 내부 자원 동원에 한계가 있어 국제 지원과 대규모 해외자금 유입이 필수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무역협정 체결이 중요하게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WTO 가입이 종국적으로 이어져야 개혁과 개방이 완수될 수 있음을 베트남 사례가 일깨워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지적은 자원이 풍부하고 문이 열리면 외자 유치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종석 전 장관과의 분석과는 온도 차가 있는 겁니다.

조 위원은 그러나 베트남의 성공에는 호치민이라는 걸출한 지도자, 내부의 개혁지향 집단 리더십과 이에 적합한 새 인물 교체가 있어 가능했다며, 북한 정권이 절대 권력의 약화를 감수하면서 개혁·개방을 어디까지 이끌지가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과거 베트남전쟁 이후 베트남인들의 치유 과정에 관해 연구했던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12일 ‘VOA’에 베트남 모델이 중국보다 북한에 더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권헌익 교수] “제일 중요한 게 미국과 적대관계, 경쟁이나 싸우는 관계가 아니고 어차피 베트남도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운명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물론 중국과 무역은 해야 하지만, 자본은 서양 자본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베트남 모델이 훨씬 더 적절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이 친미 노선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 미국과 친하게 지내고 중국과도 거리를 너무 두지 않는 자주노선을 걷고 있기 때문에 ‘우리식 정치’를 추구하는 북한에도 적합하다는 겁니다.

권 교수는 베트남이 이번 미-북 정상회담을 적극 유치한 이유도 국경을 마주한 중국의 일방적 외교에 종속되지 않고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권 교수는 김 위원장이 이번 베트남 방문 중 산업기지 시찰뿐 아니라 하노이의 대표적 명소인 바딘광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낮에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권헌익 교수] “그렇게 하면 북한 지도자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이미지, 항상 벽에 쌓여있고 투명유리에 쌓여있는 그런 게 상당히 벗어질 것 같아요. 북한 쪽에서도 안으로 도움이 안 되겠습니까? 지도자가 밖에 나갔는데 외국의 인민들이 우리만큼 환대하는 장군님 모습? 그러면 안으로도 좋고 나름대로."

권 교수는 “김 위원장 뒤로 북한에서는 여전히 비싼 수많은 오토바이가 역동적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북한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해 보라”며 그의 광장 방문은 여러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