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6.25전쟁 중 순직한 한국인 철도기관사에게 특별공로훈장을 수여합니다. 특별공로훈장은 미국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영예입니다. 유미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한국 국방부는 지난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6.25전쟁 당시 포로로 붙잡힌 미군 장성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고 김재현 기관사에게 미국 정부의 특별공로훈장이 수여된다고 밝혔습니다.

특별공로훈장은 미국 정부가 뛰어난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민간인에게 주는 가장 큰 훈장입니다.

김재현 기관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20일, 대전 운전사무소 본무조사로 근무하던 중 현지에서 실종된 미 제24사단장 윌리엄 F. 딘 장군 구출작전에 미군과 함께 참가했습니다.

미군과 한국 군은 당시 파죽지세의 북한 인민군에 밀려 대전 공방전에서 많은 전사자를 냈고, 최후까지 대전지구 사수를 진두지휘했던 딘 소장은 미처 탈출하지 못한 채 1950년  7월 19일 실종됐습니다.  

이에 미군은 딘 소장을 구출하고 대전 지역의 철도보급품을 회수하기 위해 특공대를 조직했습니다. 33 명으로 구성된 특공대는 임수 수행을 위해 이미 적의 수중에 들어간 대전으로 열차를 몰고 진격하게 됐습니다.

김재현 기관사는 동료 철도원 2명과 미군 특공대원 30명을 태우고 미카3 129 증기기관차를 몰고 이원역을 출발해 대전역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세천 큰굴다리를 앞두고 양쪽 언덕에서 북한 군의 무차별 공격이 가해졌습니다.

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을 뚫고 가까스로 대전역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 20분경. 미군 특공대원들은 이미 상당수가 전사한 상태였습니다.

검은 연기에 휩싸인 대전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려웠고, 특공대원들은 1시간 넘게 역 구내 일대를 수색했지만 딘 소장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특공대는 구출작전에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옥천으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특공대는 다시 세천터널을 빠져 나오면서 북한 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부상자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전사했습니다.

김재현 기관사도 전신에 8발의 총탄을 맞고 달리는 열차 안에서 장렬하게 순직했습니다. 당시 나이 28살이었습니다.

대전철도국 직원들은 지난 1962년 김재현 기관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가 산화한 세천역 철로변에 순직비를 건립했습니다.

김재현 기관사는 또 지난 1983년 한국 정부로부터 공적을 인정 받아 철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현충원 장교묘역에 안장됐습니다.

민간인 신분으로 미군 특공대와 함께 살아 돌아올 확률이 거의 없는 위험한 작전에 나섰던 김재현 기관사. 딘 소장 구출작전은 결국 실패했지만, 김재현 기관사의 용기와 숭고한 희생정신은 오늘날까지 6.25 전쟁 무용담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국 국방부는 보도자료에서 오랫동안 김 기관사에 대한 공적 치하 방안을 미국에 요청했었다며, 미국은 최근 미국을 방문한 한국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딘 소장 구출작전의 전투 경과를 듣고 김 기관사에게 특별공로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의 미-한 연합사령부는 오는 26일 고 김재현 기관사의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에 대한 특별공로훈장 서훈 행사를 가질 예정입니다.

미국의 소리, 유미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