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소아마비 소녀에서 올림픽 3관왕으로, 윌마 루돌프

2020.4.17 3: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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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소아마비 소녀에서 올림픽 3관왕으로, 윌마 루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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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소아마비 소녀에서 올림픽 3관왕이라는 놀라운 위업을 달성한 윌마 루돌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 1960년 윌마 루돌프가 로마 하계 올림픽 100m 달리기에서 우승한 후 금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윌마 루돌프는 신체적으로, 가정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려운 조건이란 조건은 다 가지고 태어난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미국 최초의 올림픽 여자 육상 3관왕이라는 놀라운 위업을 달성한 아프리카계 여성입니다. 

윌마 루돌프는 1940년, 미국 남부 테네시주 세인트베틀레헴이란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당시 몸무게는 고작 2kg도 되지 않았습니다. 자녀가 22명이나 되는 무척 가난한 가정이었습니다. 루돌프는 그중 20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가게 점원이나 공사장에서 노동일을 했고 어머니는 가정부였습니다.  

윌마는 4살 때 폐렴이 걸렸습니다. 또 성홍열을 앓으며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왼쪽 다리가 한쪽으로 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소아마비 선고를 내렸고 그녀가 다시는 걷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충격에 빠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주 토요일  윌마를 데리고 약 80km나 떨어진 내슈빌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지금 같으면 자동차로 약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당시에는  버스를 타기도 하고, 업고 가기도 했기 때문에 여러 시간이 걸렸습니다.  

흑인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시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먼 데를 가서라도 물리치료와 마사지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매일 병원에 들를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한 의사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물리치료법을 어머니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집에 와서 배운 대로 윌마의 다리를 마사지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걸 가르쳤습니다. 어머니, 언니, 오빠가 모두 동원이 돼서 하루에 적어도 네 번 윌마의 다리를 마사지했습니다. 어떨 때는 밤새  발을 주물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앞으로 걸으면 온 가족이 윌마를 칭찬하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가족들의 정성도 지극했지만, 본인의 의지도 강했습니다. 윌마는 다리에 많은 통증이 왔지만, 남들처럼 다시 걷고 싶은 생각에 재활치료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덕분에 윌마는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8살 때 윌마는 보조기구에 의지해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9살이 되던 해에는 드디어 교정기를 떼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절뚝거렸지만, 학교에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오빠들은 윌마가 11살 때 집에 농구대를 설치하고 윌마와 함께 농구를 했습니다. 윌마는 농구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늘 농구를 하다 보니 다리 운동도 많이 되고 농구 실력도 늘어났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교의  여자 농구팀 선수로 뽑히기까지 했습니다. 코치는 윌마가 농구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특별히 지도하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윌마는 어느 경기에서 무려 혼자 49점을 냈는데,  테네시 주 전체의 득점 기록이었습니다. 

그 무렵 학교에 육상팀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농구에서 워낙 많이 뛰었기 때문에 윌마는 육상에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윌마는 열심히 달리는 훈련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중인 때 윌마는 올림픽 육상 선수 선발전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1956년 호주 멜버른 하계 올림픽 미국 육상 선수로 선발됐습니다. 

멜버른 대회에 출전하는 미국 선수 중 윌마는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윌마는 400m 계주와 200m 달리기에 출전했습니다. 무더운 날씨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윌마는 200m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러나 400m 계주에서는 세 번째 주자로 나서 미국 팀이 동메달을 따는 데 기여했습니다. 고등학생  어린 선수로서는 대단한 결과였습니다.  

지난 1960년 로마 하계 올림픽 100m 달리기 준결승전에서 선두로 달리고 있는 윌마 루돌프.

올림픽 후 윌마는 테네시 주립 대학에 진학해 육상팀에 들어갔습니다. 대학 육상팀 코치 에드 템플은 혹독하게 선수들을 훈련시키기로 유명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코치 밑에서 윌마는 달리기에 모든 정열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윌마는 1960년 올림픽 선수 선발전 여자 200m 달리기에서 세계 신기록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수립합니다. 그 후 8년 동안 누구도 윌머의 기록을 깨뜨리지 못했습니다.   

윌마 루돌프는 1960년 로마 올림픽 100m, 200m, 그리고 400m 계주에 출전했습니다. 100m 달리기에서는 그때까지 한 번도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는 영국 선수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윌마가 여유 있게 1위를 차지했습니다. 기록은 11초. 세계 신기록이었지만 강한 바람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해서 공식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윌마는 200m에서도 1위로 골인했습니다. 올림픽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400m 계주에서도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이로써 윌마는 올림픽 육상 3관왕이 됐습니다.  

올림픽 역사상 여자 선수가 한 대회에서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윌마가 처음이었습니다. 윌마의 기적은 로마 올림픽의 큰  화제거리였습니다. 각국 언론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여성이 나타났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윌마를 잘 달리는 아프리카의 양을 빗대 ‘검은 가젤’이라 불렀고, 프랑스 언론은 ‘흑진주’라고 표현했습니다. AP 통신은 윌마 루돌프를 그해의 여성 체육인으로 선정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신문 방송에 대서특필되는 것은 물론, 국민의 환영 또한 대단했습니다. 윌마는 그 다음 해인 1961년 독일에서 벌어진 육상대회 100m 경기에서도 11초 2분으로 자신의 기록을 또 다시 갱신하며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이어22세때 미국과 소련의 육상대회를 끝으로 윌마는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윌마 루돌프는 가장 뛰어난 아마추어 선수에게 수여하는 설리번상을 받고,  ‘국제 여자 스포츠 명예의 전당’, ‘미국 육상경기 명예의 전당’, ‘올림픽 명예의 전당’, ‘흑인선수 명예의 전당’ 등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986년에는 영예로운 미국 스포츠 아카데미 상도 받았습니다.   

NBC 방송은 윌마의 영화도 만들었습니다. 여러 해 뒤의 일이지만, 윌마 루돌프 기념 우표까지 나왔습니다. 그렇게 화려하게 떠오른 윌마였지만, 그녀는 지극히 겸손하고 소박했습니다. 돈을 벌 기회도 있었지만,  오직 순수한 아마추어로만 활약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학교의 교사로, 대학 육상팀 코치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윌마루돌프재단’을 설립해, 가난한 이들을 돕고 청소년 육상경기를 지원했습니다.  

윌마는 스포츠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민권 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흑인으로서 많은 차별을 경험했기에, 인종차별 폐지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올림픽에서 돌아온 다음, 고향인 테네시주에서는 여러 환영 행사가 있었습니다.  

윌마는 주지사에게 흑인과 백인이 따로 앉는 환영식이라면 나가지 않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흑인과 백인이 함께 참여하는 행사는 드물던 시절이었습니다. 강력한 윌마의 주장으로 고향인 클락스빌에서 벌어진 시가행진과 만찬 등의 행사는 흑백 분리 없이 치러졌습니다. 그것은 클락스빌이라는 도시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윌마 루돌프는 미국 역사상 흑인 여성 운동 선수로서는 최초의 롤 모델, 즉 본보기가 됐습니다. 또한, 그녀의 성공은 미국의 여자 육상 발전에 막대한 촉진제가 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직 남자들만 참가하던 미국 육상계에 남녀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역할도 했습니다.  

 창 후진 양성과 인종 평등을 위해 일을 하던 윌마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54세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뇌종양을 갖고 있던 윌마는 1994년 11월 12일, 테네시주 내슈빌 근교에 있는 자택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그녀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인들은 충격과 함께 애석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며칠 후 테네시주립대학에서 거행된 윌마의 추도식에는 수천 명의 애도객이 모였습니다. 테네시 주민은 그녀를 추모하며 반기를 게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