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월트 디즈니

2020.7.31 11: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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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월트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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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미키 마우스 만화를 시작으로 디즈니 왕국을 만들어낸 월트 디즈니의 이야기입니다.

1941년 8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팬코스트 호텔에서 월트 디즈니가 미키 마우스를 그리고 있다.

월트 디즈니는  만화영화를 시작으로 영화, 방송, 비디오, 출판, 웹 포털, 놀이공원 등 수 많은 연예 오락 업체를 거느린 대기업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월트 디즈니는 1901년 태어나 65세 때인 1966년 타계했습니다. 디즈니는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미술 학원에도 다녔습니다. 시카고미술대학(Art Institute of Chicago)에도 다녔습니다. 특히 만화를 그리는 데 뛰어나 결국 그것을 새로운 분야로 발전시켜 대기업을 일으킨 것입니다. 

월트 디즈니의 대표적인 만화영화 주인공은 미키마우스입니다. 

생쥐인 미키마우스는 1920년대에 등장했습니다. 귀가 크고, 흰 장갑을 낀 생쥐, 그러니까 ‘생쥐 미키’라는 뜻입니다. 디즈니가 탄생시킨 미키마우스는 귀엽고 영리한 모습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지금도 디즈니사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미국 영화의 중심지인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에서 1923년 형 로이 디즈니(Roy Disney)와 함께 ‘디즈니 브러더스 스튜디오’라는 조그마한 영화사를 차렸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만화영화를 만들어 어느 정도 영화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창고 같은 허름한 작업실에서 실의에 빠진 채 만화를 그리고 있는 어느 날 디즈니는 생쥐가 왔다 갔다 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귀엽다고 느낀 디즈니는 그 쥐를 만화로 그려봤습니다. 그리고 미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미키마우스 영화는 우스꽝스러운 내용으로 만들어졌지만, 처음에는 사람들로부터 별로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영화는 무성 영화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디즈니는 1928년 움직이는 그림에 각종 소리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최초의 디즈니 영화는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였습니다. 증기선 윌리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특집까지 내고 이제는 어른들도 미키를 최고로 좋아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디즈니는 만화영화 주인공의 목소리도 넣기 시작했습니다. 1929년 나온 ‘카니발 아이(The Karnival Kid)’가 목소리가 들어간 최초의 만화영화였습니다. 축제장에서 핫도그를 파는 미키마우스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월트 디즈니 자신이 직접 소리를 녹음했습니다. 여기서 미키마우스는 짧은 말들을 합니다. 미키마우스가 차츰 하나의 개성을 가진 존재로 굳혀지면서 재미가 더해졌지만 직접 말을 하게 만든 것은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그때의 만화 영화는 짤막짤막한 이야기들로, 극장에서 본 영화가 상영되기 전이나 중간에 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정식 영화처럼 만화영화를 장편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첫 작품이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입니다. 이 영화는 제작에 3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1937년 제작이 끝났을 때는 자금도 바닥이 났습니다. 많은 사람은 이 영화 때문에 디즈니 사는 망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보란 듯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디즈니는 1938년 첫 번째 배급에서 800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수입도 많았지만, 이 영화는 동화를 영화의 주제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시켜 준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디즈니는 수많은 걸작 만화 영화들을 제작해 냈습니다. 50년대까지 피노키오, 덤보, 밤비, 신데렐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터 팬 등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가 즐기는 영화가 연달아 출시됐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또 다른 분야로의 개척을 시도합니다. 즉 만화 영화 외에 실물 배우를 등장시킨 영화에 뛰어든 것입니다. 맨 처음 나온 것은 보물섬으로 또 한 번 대박을 터뜨립니다. 연이어 나온 많은 작품이 지금까지도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디즈니 영화는 극장은 물론, 텔레비젼, 비디오 등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디즈니는 영화와 텔레비전에 머물지 않고 또 다른 획기적인 사업, 즉 대형 놀이공원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새로운 사업구상은 디즈니랜드로 현실화됐습니다. 캘리포니아주 애나하임에 자신의 영화에 등장한 여러 주인공들을 실물로 재현시켜 그것을 놀이 공원, 즉 테마파크로 만든 것입니다.

미국 플로리다주 디즈니월드 입구에 월트 디즈니와 미키 마우스 동상이 세워져있다.

디즈니랜드는 160ac에 달하는 대지에 잠자는 공주의 성을 비롯해 뉴올리언스 스퀘어, 곰의 나라, 미키 툰타운 등 각종 환상의 시설들을 마련해놓고 있습니다. 디즈니랜드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새로운 것이어서 계획 때부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드디어 1955년 7월 17 일 디즈니랜드가 개장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개막 연설에서 “이 행복한 장소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디즈니랜드는 바로 여러분의 나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디즈니랜드 개막식에는 당시 아나운서로 활동하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중계를 맡기도 했습니다. 

디즈니랜드에는 개장한 1955년부터 2018년까지 7억 2천 600만 명이 방문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전 세계 어느 놀이공원보다 총 입장객 수가 많은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디즈니는 또 1965년에 플로리다주의 올랜도 부근에 세계적인 테마파크 디즈니월드를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디즈니는 완성을 보지 못하고 1966년 12월 15일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그가 사망한 후 로이 디즈니가 디즈니사를 이끌어 갔습니다. 

디즈니랜드보다 규모가 더 큰 디즈니 월드는 1971년 개장했습니다. 총면적이 100 ㎢로 그 규모가 세계 최대입니다.  

월트 디즈니는 생전에 그의 영화로 영화 예술계 최고의 상인 아카데미상을 22개나 받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기록입니다. 월트 디즈니가 시작한 디즈니 공원은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홍콩, 중국의 상하이에도 세워져 세계인들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갔지만 그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엔터테이너이자 가장 유명한 비정치적 공인’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