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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어린이 문학의 최고봉, 닥터 수스


[인물 아메리카] 어린이 문학의 최고봉, 닥터 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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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세기의 안데르센이라 불리우며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어린이 문학 작가 닥터 수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해마다 3월 2일이면 미국의 초등학교들은 닥터 수스 데이(Dr. Seuss Day)를 기념하는 여러가지 행사를 벌입니다. 어린이들은 학교나 도서관에서 닥터 수스 이야기 속 주인공의 옷을 입고 그의 책을 함께 읽습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초록색 계란과 햄을 함께 먹기도 합니다.

닥터 수스.
닥터 수스.

닥터 수스는 어린이 문학의 개척자이자 역사상 최고의 그림책 베스트셀러 작가였습니다. 닥터 수스는 본인이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쓴60권 이상의 동화책을 펴냈습니다. 독특한

등장인물과 음율로 된 그의 동화책들은 6억권이 넘게 팔리는가 하면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세계 각지의 어린이들에게 재미와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닥서 수스는 정치풍자 만화가, 삽화가, 시인, 만화영화 제작자이기도 했습니다.

본명이 시어도어 수스 가이젤인 닥터 수스는 1904년 3월 2일 매사츠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일계인 부모는 양조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나 동네 친구들은 그를 테드(Ted)라고 불렀습니다. 수스라는 이름은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을 딴 것이었습니다. 본래 독일어 발음으로 '조이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수스'라고 부르자 그대로 굳어진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특이한 형태의 사람과 동물 그리기를 즐겨했고, 그런 동물에 재미있는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했습니다. 테드는 아버지를 따라 자주 동물원엘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가 본 것들을 스케치했습니다.

테드는 동부의 명문 다트머스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재학중에는 Jack-O-Lantern이라는 교내 유머 잡지 편집장을 지냈습니다. 1925년 다트머스를 졸업한 테드 가이젤은 영국으로 건너 갔습니다. 부모님들의 소원대로 교수가 되기 위해 그는 옥스퍼드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가이젤은 그곳에서 헬렌 팔머라는 여성을 만났습니다. 헬렌은 가이젤에게 자신의 재능을 살려 계속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두 사람은 1927년 결혼하고, 뉴욕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가이젤은 교수의 꿈을 포기하고 만화와 삽화에 집중했습니다. 그의 글과 그림은 라이프 지, 배니티 페어 등에 실렸습니다.

가이젤은The Saturday Evening Post 1927년 7월 호에 실린 만화에 처음으로 닥터 수스라는 필명을 사용했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를 의미하는 닥터는 아니었지만, 그는 어린 학생들에게 책 읽는 재미를 처방해주는 닥터라는 의미로 그런 호칭을 사용한 것입니다.

가이젤은 대형 석유회사인 스탠다드 오일 광고부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제작한 살충제 Flit광고들은 재미있는 그림과 문장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는 15년 동안 이곳에서 일을 계속했습니다.

이 무렵 바이킹 프레스라는 출판사에서 어린이용 도서, Boners에 삽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 출판물이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가이젤은 여기서 아동문학의 문을 두드리게 됐습니다.

2차 대전때는 통신 부대에 들어가 훈련용 영상을 제작하고, 전투력 고취를 독려하는 포스터를 그렸습니다. 당시 만든 죽음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Death)는 1947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습니다.

닥서 수스 사후 발견된 원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화책 'What Pet Shoud I Get?" 출판기념회가 지난 2015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닥서 수스 기념 도서관에서 열렸다.
닥서 수스 사후 발견된 원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화책 'What Pet Shoud I Get?" 출판기념회가 지난 2015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닥서 수스 기념 도서관에서 열렸다.

가이젤의 첫번째 어린이 책은 And To Think That I Saw It On Mulberry Street, ‘멀베리 가에서 본것’ 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고향인 스프링필드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회상하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쓴 이 책을 여러 출판사에 갖고 갔지만 무려 27차례나 거절을 당했습니다.

가이젤은 속이 상해 매디슨 가를 걷다가 책을 던져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학교 급우였던 마이크 맥클린토크(Mike McClintock)를 만났습니다. 뱅가드 프레스라는 출판사의 소년 물 편집인으로 막 임명이 된 매클린토크는 가이젤을 자기 사무실로 데리고 가 그 책의 출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가이젤 최초의 어린이 책은 그런 우여곡절 끝에 1937년에 나왔습니다.

가이젤은 그래서 나중에 자신은 운을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날 매디슨 가의 반대쪽으로 가고 있었더라면 어쩌면 오늘 나는 아마 세탁소를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테드와 헬렌은 1948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일생동안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1954년 저명한 미국 작가 존 허시(John Hersey)가 라이프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초등학교 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저조한 이유가 재미있는 아동 도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휴튼 미플린 출판사가 닥터 수스에게 딱 225개 단어만을 사용해1학년 짜리가 손에서 뗄수 없도록 재미있는 책을 하나 써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가이젤은 그보다 한 단어가 더 들어간 226개 단어로 책을 썼습니다. 그것이1957년에 나온 모자 쓴 고양이The Cat in the Hat였습니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오는 날 텅빈 집에서 따분해 하던 아이들한테 모자 쓴 고양이가 나타나 재미있는 마술 등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소리와 윤률이 잘 어울리고 재미가 있는 이 이야기는 어린이 문학에서 가이젤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혀놓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책이 나오자 출판사 랜덤하우스는 ‘모자 쓴 고양이 돌아오다’ 라는 연작 스토리 4편을 더 발행했습니다.

닥터 수스의 책은 그 후에도 여러 편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그중 하나인 파란 계란과 햄은 1960년 비기너 북에서 출판됐습니다.

이 외에도 유명한 책으로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말해주는 How the Grinch Stole Christmas, 코끼리가 주인공인Horton Hears a Who, Oh Say Can You Say, Mr. Brown Can Moo, Dr. Seuss’ ABC’s 등이 있습니다.

그의 저서 중 13개는 권위 있는 출판계 주간지 Publishers Weekly 가 선정한 사상 최고 판매 서적 100위안에 들어 있습니다.

세개의 저서는 1살에서 14살 사이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그림 동화책에 주는 연례 도서상 칼데코트 아너 상을 받았습니다. 가이젤은 1984년의 퓰리처 상을 비롯해 아카데미 상도 받았고, 에미상 3개, 그래미 상 3개등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가이젤의 이야기 중 여러개는 텔레비젼 시리즈나 실제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어떤 것은 그가 타계한 후에 만들어 지기도 했습니다. 상상력 뛰어난 주인공들과 재치있는 이야기들은 지금도 각종 상품으로도 만들어지고 있으며, 영화, 박물관, 테마 공원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가이젤은 첫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1968년 오드리 다이아몬드와 재혼했습니다. 6살짜리 초등학생에서부터 항공우주국 엔지니어에 이르기까지 천재적인 상상력으로 측정할수 없는 유산을 남겨준 닥터 수스는 1991년 9월 24일, 87세로 타계했습니다.

가이젤이 타계하자 부인 오드리는 남편이 남긴 작품 원본과 글, 그림 등을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고 대학에 기증했습니다. 대학은 1995년 학교 도서관을 가이젤 도서관으로 개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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