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현대 환경운동의 선구자, 레이첼 카슨

2021.4.23 2: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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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현대 환경운동의 선구자, 레이첼 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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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22일은 지구의 날입니다. 1970년 이날, 미국의 환경운동가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일깨우고, 현대 환경 보호운동을 본격적으로 출범하기 위해 지구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은 세계적으로 190여개 국가에서 정부 차원의 환경보호 정책을 추진함은 물론, 민간분야에서도 지구를 살리기 위한 많은 일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이런 변화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비효율적이고 극심한 오염을 일으키는 자동차 연료를 제한없이 사용했습니다. 공장들은 검은 연기, 공장폐수 등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을 배출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관이나 여론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검은 연기는 번영의 상징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이 1962년에 펴낸 저서 ‘침묵의 봄’은 세상에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 셀러가 된 이 책은 생태계의 위기, 환경, 공기 오염과 건강에 관한 위험성을 날카롭게 파헤침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책은 24개국에서 발행돼 첫해에 50여만권이나 팔릴만큼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레이첼 카슨은 특히 ‘신이 내린 물질’이라며 찬사를 받던 DDT가 사실은 지구와 인류에 엄청난 해를 가져오는 물질이라고 경고를 하며 환경보호 운동에 불을 지폈습니다. 

DDT는 ‘디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 에테인’(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이라는 합성 살충제의 약자입니다.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헤르만이 발명한 것으로, 헤르만은 이 공로로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DDT는 강력한 살충제로 미국 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살포되기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DDT로 말라리아와 티푸스를 일으키는 모기를 없애 수백만 명의 민간인과 군인들을 질병에서 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농장의 살충제로  대대적으로 사용됐습니다. 각종 해충을 없애 농업 생산을 늘리는 총아로도 각광을 받았습니다. 세계 빈곤국이나 개발 도상국에서도 살충제 뿐 아니라 이나 빈대를 없애기 위해서도 막대한 양이 뿌려졌습니다.  

당시에도 DDT의 해독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피해를 집중적으로 파헤치질 않았습니다. DDT의 인기가 너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해양생물학자이던 레이첼 카슨이 심각한 생태계 파괴, 암 발생 등 그 독성과 피해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 독성을 지적할 뿐 아니라 강력한 반대운동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카슨은 정부, 기업계,남성중심의 과학계, 언론 등 모두의 비판과  탄압 속에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카슨은 정부의 DDT 사용금지 조치를 이끌어 냈습니다. 

레이첼 카슨은 1907년 5월 27일 펜실배니아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동산 업을 하는 아버지 로버트 카슨과  교사인 어머니 마리아 카슨 사에에서 난 3남매중 막내였습니다.  

레이첼은 글 쓰는 재주가 뛰어났습니다. 불과 10살 때 쓴 소설이 어린이 잡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펜실바니아 여자대학에 들어가서도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레이첼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레이첼은 도중에 전공을 생물학으로 전환했습니다.  레이첼은 대학을 마치고  메릴랜드 주 발티모어에 있는 죤스 홉킨스 대학으로 가서 동물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메릴랜드 대학에서 몇 년 동안 동물학을 강의했습니다. 

레이첼은 여름철이면 매사츄세츠 주에 있는 우즈홀 해양 생물 연구소(Woods Hole Marine Biological Laboratory)에서 해양과 그 생태계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곳에서의 공부와 경험으로 1930년 대 중반에는 와싱턴에 있는 연방정부의 수자원 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레이첼은 월간지 아틀란틱(Atlantic Monthly)에 바다 생물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어느 출판사가 그에게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써보라고 권했습니다. 레이첼은 1941년 첫 저서 ‘해풍 아래서’  (Under the Sea Wind) 를 펴냈습니다.

1951년에는 두 번째 저서 ‘우리 주변의 바다’ (The Sea Around Us)가 출간됐습니다. 천 군데 이상의 바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생태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1년 이상이나 가장 잘 팔리는 책, 즉 베스트셀러의 위치를 고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최우수 도서상도 받았습니다. 

책도 많이 팔리고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레이첼은1952년 정부 일을 그만두고 미국 동북부 메인 주 해안으로 이사를 가 저술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1955년에는 ‘바닷가’  (The Edge of the Sea) 를 펴냈습니다. 바다에 면한 미국 내 곳곳의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담은 책이었습니다.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으로 평가되는 레이첼의 저서 ‘침묵의 봄’ (Silent Spring)은 한 친구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친구는 바다에 면한 조류 보호구역에 땅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국은 여러 해 전부터 모기를 죽이기 위해 비행기로 그곳에 DDT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바다 물이 오염되고 많은 새와 물고기들이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DDT의 인기가 높아 이를 비판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레이첼 카슨은 여러 잡지사에 이 문제에 관한 글을 싣도록 건의했지만, 어떤 잡지사도 그 같은 논란 거리를 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레이첼 카슨은 직접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4년동안 세계 각지로부터DDT로 인한 피해 발생 사례들을 수집하고 이를 연구한 다음 ‘침묵의 봄’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아름다운 마을이 점차로 생명을 잃어가다가 봄의 소리, 새들의 소리가 사라진 죽음의 공간으로 바뀐다는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이어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파괴되는  생태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폭로했습니다. 

DDT와 같은 살충제와 농약이 새, 물고기, 야생동물, 인간에게 미치는 파괴적 결과도 파헤쳤습니다. 무서운 것은 생물의 몸에 들어간 DDT는 체내에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새끼들에게도 그대로 이전이 되고 먹이 사슬을 따라 다른 동물에게도 옮겨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비로소 합성살충제의 폐해에 대해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됐습니다. 듀퐁, 몬샌토 등을 중심으로 한 화학업계는 즉각  그 책이 비 과학적이고 감정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레이첼에게 공산주의자라는 혐의까지 제기했습니다. 당시는 언론까지도 레이첼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레이첼은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추구한다는 각오로 그 피해를 지적했습니다. 책의 내용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DDT사용량이 줄어들었습니다.

레이첼은 계속 각종 모임이나 방송 등에 나가 살충제의 해독과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레이첼은 우리가 전혀 자연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이익을 위해 그 균형을 깨뜨려서는 안된다고 역설했습니다. 

환경오염에 대해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되자 살충제를 제한하자는 법안이 미국 내 여러 주 의회에 상정됐습니다.  또 이 무렵 암연구소는 DDT가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증거를 발표했습니다. 살충제를 생산하는 화학 회사, 정부 기관 등도 대세를 거스를 수가 없게 됐습니다. 존 F케네디 대통령도 유해 살충제에 대한 조사를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1963년 케네디 행정부에는 환경 자문위원회가 구성되고 여러  주들은 DDT의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1969년 미국 의회는  국가환경정책법안을 통과시키고 이 법안에 따라  미국 경보호청, EPA는1972년 드디어 DDT 사용금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사실 EPA라는 정부 기구가 창설된 것도 레이첼 카슨이 주도했던 풀뿌리 환경운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레이첼 카슨은 그 같은 결정이 내려진 걸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레이첼은 저서 ‘침묵의 봄’이 나온 지 2년 후인 1964년 유방암으로 숨졌습니다. 그의 나이  56세, 아직도 한창 일할 나이였습니다. 

레이첼은 비교적 일찍 떠났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가 출범한 환경 운동은 그 후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환경운동에 불을 지피게 됐습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레이첼 카슨을 20세기 가장 큰 영향을 미친100대 인물의 한명으로 꼽았고 지미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 그녀에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오늘날 지구의 날은 조그마한 마을에서부터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환경보호를 위한 정책변화와 인간의 생활방식을 바꾸도록  추진하는 세계 최대의 민간 운동이 됐습니다. 

VOA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