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 뉴스] “한국전쟁 때 ‘인도적 지원’ 제의…북한 무응답”

2020.9.8 8: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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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십자위원회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남북한 모두에 인도적 지원을 제의했지만, 북한 당국은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새로 공개한 한국전쟁 기록물에서 한국 내 북한군 포로수용소를 160번 방문해 지원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지만, 한국군 포로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어 규명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상편집: 조명수)

국제적십자위원회 ICRC가 의사결정기구의 기록을 70년 후 공개한다는 원칙에 따라 최근 한국전쟁 기록물을 일부 공개했습니다. 

스위스 공영 매체 ‘스위스인포’가 최근 일부 자료를 공개해 국제적십자위원회가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발발 직후 남북한 당국 모두에 전보를 보내 지원 제의를 했지만, 북한 외무성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던 사실을 밝혔습니다. 

적십자위원회는 1949년 새롭게 확대 보완한 4개 제네바 협약 제정에 따라 인도적 지원, 억류 수감자 등 포로와 민간인 보호 활동을 위해 이런 지원 제의를 했으며 당시 남북한 정부는 모두 새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러나 전쟁 발발 다음 날인 26일 지원 제의를 바로 수용해 일주일 여 뒤인 7월 3일에 프레데릭 비에리 초대 한국 대표가 한국에 도착해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국제적십자위원회 활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동의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응답을 하지 않아 새로 임명한 북한 담당 요원들이 소련을 거쳐 북한 입국을 시도하고 홍콩에서 북한 비자를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기록물에는 당시 전쟁 포로와 피난민 상황을 설명한 비에리 대표의 전보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북한군 포로들은 대부분 18~20세로 1주일 정도의 군사 훈련과 1~2주가량의 사상 교육을 받은 채  무장도 제대로 못 하고 전쟁에 투입됐으며 체포될 경우 고문을 받거나 사살됐다는 내용입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대표단은 북한군 포로들에게 쌀과 보리, 담배를 지원했다며 당시 부산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담배를 받는 북한군 장교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비에리 대표는 또 의료진 등을 통해 입수한 정보를 통해 북한군에 체포된 미군 포로 150~200명의 행렬 가운데 일부가 반자본주의 현수막을 들고 있었으며 모두 상태가 나빴고 일부는 구타를 당한 것처럼 보였다고 보고했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앞서 지난 6월에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한국 ‘연합뉴스’를 통해 북한군 포로들을 지원하던 일부 사진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한국의 일부 민간단체들은 이런 한국전쟁 역사 자료의 공개를 반기면서도 접촉이 쉬웠던 북한군 포로들에 대한 자료가 풍부한 반면, 북한군에 체포된 한국군 포로 상황은 자료도 적고 관심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영환 대표/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역사 교육이나 젊은 세대들이 봤을 때는 과연 북한으로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 그렇게 많은 국군포로들이나 유엔군 포로 같은 내용들은 일절 찾아보기 힘든 심각한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2년 전 서울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열린’6·25 전쟁포로 전시회’가 북한군 포로가 당한 인권 침해를 크게 다루고 한국군 포로는 거의 다루지 않은 채 규모도 축소해 논란 끝에 일부 전시를 폐쇄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 국방부와 유엔군 사령부에 따르면, 휴전 후 공산군은 7만 5천 명 이상이 북한으로 돌아갔지만, 한국군은 실종자 8만 1천여 명 가운데 8천300여 명만 복귀했고 나머지 수만 명은 탄광 등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에 혹사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