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바비 인형을 세계의 우상으로, 루스 핸들러

2020.2.28 오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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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바비 인형을 세계의 우상으로, 루스 핸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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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바비 인형을 세계의 우상으로 만든 루스 핸들러에 대해 알아봅니다. 

루스 핸들러가 바비 인형 모델에 입맞춤을 받고 있다.

바비 인형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특히 여자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인형입니다. 미국 인형 시장에서 바비 인형 판매량은 단연 1위이고, 연간 판매되는 인형의 수는 어림잡아 6천만 개에 달합니다. 바비 인형은 미국 외에도 약 150개 국가에서 팔리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10억 개 이상의 바비가 퍼져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기 있는 바비 인형을 고안해 낸 사람은 루스 모스코라는 여성이었습니다. 루스는 1916년 콜로라도주 최대 도시 덴버에서 태어났습니다. 폴란드에서 건너온 유대인 가정이었습니다. 루스는 고등학교 남자 친구인 엘리엇 핸들러와 결혼한 후 로스앤젤레스로 옮겨갔습니다. 

남편 엘리엇은 동업자인 해럴드 맷슨과 마텔(Mattel)이라는 액자 제작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엘리엇과 맷슨의 이름을 혼합한 명칭이었습니다. 

루스와 엘리엇 핸들러 부부는 바버라와 켄 남매를 두고 있었습니다. 딸 바버라는 인형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루스는 딸이 친구들과 인형 놀이하는 것을 세심히 관찰했습니다. 가지고 노는 인형은 종이를 오려서 만든 평면적인 것이라 쉽게 해지고 인형에 붙인 옷도 금방 떨어져 나가곤 했습니다. 

루스는 또 여자아이들은 인형을 갖고 놀 때 자기 또래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어른 흉내를 내며 논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기 인형이 아니라 숙녀 인형을 만들고, 옷도 종이가 아니라 천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1956년에 딸 바버라와 켄을 데리고 유럽 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그들은 스위스의 한 가계에서 숙녀 인형을 발견했습니다. 독일에서 만든 ‘릴리’라는 제품인데 루스가 생각했던 것과 아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루스 부부는 릴리 인형 세 개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는 딸 바버라한테 주고 두 개는 회사 마텔용으로 보관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인형의 이름은 딸 바버라의 이름을 따 ‘바비(Barbie)’라 불렀습니다.  

핸들러 부부는 1959년 3월 9일, 뉴욕에서 열린 국제 장난감 박람회에 첫 바비 인형을 선보였습니다. 처음 나온 바비는 얼룩말 무늬가 있는 수영복에 금발의 말꼬리 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비는 옷을 따로 사서 입힐 수 있게 돼 있었습니다. 

얼마 후 독일의 릴리 회사가 마텔을 상대로 디자인 도용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다행히 재판은 합의로 끝나고 마텔은 독일 회사의 저작권을 정식으로 매입했습니다.    

바비 인형은 세상에 나온 초기, 판매고가 크게 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자 루스는 하나의 도박을 단행했습니다. 월트 디즈니 영화사가 어린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미키마우스 클럽을 방영 하는데, 루스는 자신의 전 재산을 걸고 그 프로의 단일 광고주가 되기로 한 것입니다. 

루스 핸들러는 장난감을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직접 광고하는 마케팅을 한 것입니다. 텔레비전 광고를 통한 홍보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보통 미국 여자아이들이 7개 내지 8개의 바비 인형을 갖고 있을 정도로 루스 핸들러의 제품은 불티 나듯 팔렸습니다.

루스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장차 원하는 여러 가지 직업과 다양한 의상, 그리고 인종을 나타내는 새로운 바비를 끊임없이 내놓았습니다. 1960년대에는 간호사, 우주인,  90년대에는 소아과 의사, 여자 소방대원, 여자 조종사도 나왔습니다. 2000년대에는 영화감독, 과학자, 여성 대통령 인형, 태권도 바비도도 나왔습니다. 

루스 핸들러는 마텔사의 회장이 됐습니다. 성장을 거듭한 마텔은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이 선정하는 세계 대기업 그룹, 즉 ‘포천500’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바비 인형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수천 개의 바비 인형을 가진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한 경매장에서는 루스 핸들러가 사인한 인형 하나가 1만7천 달러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처음 선을 보인 지 60여 년, 바비는 180가지가 넘는 직종을 나타내는 세계적인 인형이 됐습니다. 또한, 여성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어린이들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바비 인형 사업은 1980년대 후반 언론 프랜차이스, 영화, 텔레비젼 특집 쇼, 유튜브, 비디오 게임 등 여러 분야로 확대됐습니다. 또 바비 인형은 액세서리, 복장, 바비의 친구 등 연관되는 각종 상품 판매를 선도하는 기능을 하면서 세계 장난감 산업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승승장구하던 루스에게도 시련이 왔습니다. 1970년대 초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결국 절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1973년에는 마텔의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루스는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루스는 ‘루스톤코포레이션(Ruthton Corp)’을 설립하고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바로 자신이 경험했던 아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편안한 인조 가슴을 개발해 냈습니다. 신제품에 ‘거의 내 몸과 같다’는 의미의 ‘Nearly Me’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조 가슴과 수술 후 입을 수 있는 수영복 등을 제조해 국제적으로 판매했습니다. 

루스 핸들러는 2002년 85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뉴욕 뉴스데이(New York News Day)’지의 칼럼리스트로 ‘영원한 바비’라는 책을 쓴  엠지 로드(M.G. Lord)는 ‘루스가 만들어 낸 바비는 부엌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을 제시해 주었다’고 말합니다.

여성도 당당한 인격체로서의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정신을, 인형을 통해 고취시킨 루스는 미국의 사회적 가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친 여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