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최초의 여자대학을 세운 선구자, 메리 라이언

2020.2.21 2: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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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최초의 여자대학을 세운 선구자, 메리 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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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최초의 여자대학을 세운 선구자, 메리 라이언을 알아봅니다.

메리 라이언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주 사우스해들리에 위치한 ‘마운트 홀리오크 대학(Mount Holyoke College)’. 사려 깊고 유능한 여성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교시 아래 2천300여 명의 여학생들이 학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메리 라이언이 180여 년 전 ‘마운트 홀리오크 세미나리(Mount Holyoke Seminary)’라는 명칭으로 시작한 학교입니다.  마운트 홀리오크는 조지아주의 웨슬리언 대학과 함께 미국 최초의 여자대학이라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의 건국 초기 여성 교육 환경은 극히 열악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각 주는 공립학교를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었으나, 제대로 된 교사조차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여성들이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난 다음 상급학교로 진학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메리 라이언은 그런 시대를 산 인물이었지만, 여성이란,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도 교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다, 또 젊은 여성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신에게 봉사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믿었습니다.  

메리 라이언은 1797년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주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불행하게도 겨우 5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린 메리도 엄마와 오빠를 도와 힘든 농장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메리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거리지만, 걸어서 다녀야 했습니다. 그 후 공부를 좀 더 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로도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어 석 달씩 친구 집을 돌며 부엌일과 청소를 해주고 침식을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또 어려움이 닥칩니다. 메리가 13살이 됐을 때 어머니가 재혼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메리는 학교도 중단하고 오빠를 도와 농장과 집안일을 맡아 해야 했습니다.  오빠는 메리에게 수고비로 1주일에 1달러씩을 주었습니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열정이 강했던 메리는 꼬박꼬박 그 돈을 모아 얼마 후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17살이 됐을 때 메리는 교실 한 칸짜리 학교에서 여름철에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보수는 1주일에 75센트.  적은 돈이었지만 침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었습니다.
메리 라이언은 처음에는 유능한 교사가 못 됐습니다. 학생들을 다루는 데도 서툴렀고 아이들과 함께 큰 소리로 떠들며 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아이들을 잘 보살핀다며 학부모들의 칭찬이 자자해졌습니다.
 
메리가 20살 때 매사추세츠주 애쉬필드라는 곳에 ‘샌더슨아카데미(Sanderson Academy)’라는 새 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메리는 자신이 직접 만든 책 커버를 팔고, 그동안 모았던 돈을 몽땅 털어 등록금을 마련해 그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샌더슨아카데미에서는 과학, 역사, 라틴어 등 지난날보다 훨씬 어려운 과목들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메리는 엄청나게 빨리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라틴어 책 한 권을 단 3일 만에 완전히 암기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메리는 나중에 자신의 지식은 거의 샌더슨에 있을 때 습득한 것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나이나 시간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샌더슨아카데미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약 1년. 메리 라이언은 글씨를 잘 못 써서 다른 사람이 읽기에 불편해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메리는 21살이나 됐지만, 초등학교에 다시 가 어린아이들과 한 교실에서 글씨 쓰기를 익혔습니다.

메리 라이언은 27살 때 버클랜드라는 곳에 젊은 여성들을 위한 교실 한 칸짜리, ‘버클랜드여자신학교(Buckland Female Seminary)’를 열었습니다. 미국에서 고등 교육이 처음 등장하던 시기 여러 사립학교는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을 시작했고, 따라서 학교 이름도 ‘신학교(seminary)’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과목을 늘리면서 ‘대학(college)’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습니다. 16살 내외의 여학생들은 이 학교에서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라이언은 학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윤을 내는 것이 아니라 교육 그 자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고등교육 기관들은 투자 이익을 얻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후 라이언은 버클랜드여학교를 떠나 친구 질파 그랜트(Zilpah Grant)를 도와, 또 다른 사립학교, ‘입스위치여자신학교(Ipswich Female Seminary)’를 설립했습니다. 

새 학교는 학생 수가 130명에 달했습니다. 개교 후 이 학교는 대단히 우수한 학교 중의 하나로 평가됐습니다. 그러나 재정이 모자랐습니다. 질파 그랜트와 메리 라이언은 영구히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독자 건물을 갖기 원했지만, 그 노력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라이언은 입스위치를 사임하고 매사추세츠 노튼에 또 다른 사립 여학교, ‘위튼여자신학교 (Wheaton Female Seminary)’를 설립했습니다. 이 학교가 오늘날 ‘위튼칼리지’의 전신입니다.  

메리 라이언은 이어 자신의 꿈이었던, 제대로 된 여성 고등 교육기관, 요새로 치면 여자 대학을 설립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영구적이고 영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자체 건물도 마련한다는 큰 꿈이었습니다. 학교 운영은 독립적인 이사회의 지침을 따르고, 자금은 투자가들이 아니라 이사회가 책임을 지도록 했습니다. 또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학생들이 청소도 하고 부엌일도 하도록 구상했습니다. 

메리 라이언은 열심히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새 학교가 정식으로 문을 열 때까지 메리 라이언은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돈을 투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메리 라이언은 5층짜리 건물을 짓기에 충분한 자금을 모금했습니다. 

​ 1837년 개교한 ‘마운트 홀리오크 세미나리(Mount Holyoke Seminary)’. ​

메리 라이언은 1837년 매사추세츠주 사우스해들리에 ‘마운트 홀리오크 세미나리(Mount Holyoke Seminary)’를 개교했습니다. 학생 수는 약 80명, 교사는 4명이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침식을 같이하며 공부했습니다. 다음 해가 되자 학생 수는 110명을 넘었습니다. 그 후로도 학생 수는 계속 늘어나고, 건물도 연이어 새로 세워야 했습니다. 학제도 3년제를 4년제로 바꾸고 과목도 점차 신학 계통을 줄이고 일반 과목을 늘렸습니다. 명칭도 신학교(seminary)에서 대학(college)으로 바꾸었습니다.

남자 대학과 같은 수준의 교육을 실시하는 미국 최초의 여자대학을 설립한 메리 라이언은 거의 12년 동안 이곳에서 교장, 또는 총장으로 재직하다 1849년 52세로 타계했습니다. 미국 우정국은 위대한 미국인 기념 우표 시리즈의 하나로 메리 라이언 우표를 발행했습니다. 

메리 라이언은 여성 명예의 전당에도 헌정됐습니다.  역사가들은 19세기 중반 미국의 여성 교육 분야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여성이 메리 라이언이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메리 라이언은 교육의 남녀평등을 넘어 여성들을 위한 더 원대한 것을 추구한 여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