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황열병 퇴치의 위업을 남긴 군의관, 월터 리드

2020.4.3 오전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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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황열병 퇴치의 위업을 남긴 군의관, 월터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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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황열병 퇴치의 위업을 남긴 군의관, 월터 리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월터 리드.

황열병의 원인을 규명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린 월터 리드는 1800년대 군의관으로 활동했던 미 육군 소령이었습니다. 병리학자이자 세균학자였던 월터 리드는 육군 황열병 위원회를 지휘하며, 이 병이 특수한 모기에서 전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월터 리드는 1851년 9월 13일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레무엘 쑤튼 리드는 감리교 목사였습니다.   

버지니아 대학에서 고전을 공부하던  월터는 의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불과 17살에 의대를 마쳤습니다. 그는 다시 뉴욕에 있는 벨뷰 의과대학에서 두 번째 학위를 받았습니다. 

공부를 마친 월터 리드는 뉴욕에 있는 여러 병원에서 임상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자신의 역량을 펴는 데 애로를 느낀데다 도시 생활에도 만족하지 못한 월터 리드는 일반 의학을 떠나 군에서 의료 활동을 하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미 육군 의무관 시험에 합격하고 소위로 임관된 월터 리드는 에밀리 로런스라는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그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는 미국 서부의 여러 군 기지에서 복무했습니다. 당시 서부 개척지에서 미군은 토착 인디언들과 잦은 충돌을 벌였습니다.  

리드 군의관은 전투에서 부상한 미군뿐 아니라 많은 인디언도 치료해주었습니다. 리드 군의관은 서부 지역 근무 후 동부로 배치되면서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다시 병리학과 박테리아 학을 공부했습니다.  

차츰 연구와 교수직 일을 많이 하게 된 월터 리드는 워싱턴에 있는 육군 의학박물관의 관장으로 임명되고, 동시에 새로 설립된 육군 의과대학의 세균학, 임상학 교수로도 임명을 받았습니다.  

1900년 여름, 쿠바에 있는 미군 부대에서 황열병이 발생했습니다.  군당국은 특별 위원단을 구성하고 그 원인 규명과 대책을 서둘렀습니다. 단장에는 월터 리드, 위원으로는 군의관 제임스 캐롤과 아리스타이즈 에이그러몬트, 세균전문가 제시 라지어 등이 임명됐습니다. 이에 앞서 쿠바의 의사이자 유행병 전문가인 카를로스 후안 핀레이는 황렬병이 모기에 의해 전염된다는 설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핀레이는 그것을 증명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여러가지 실험을 하던 중 군의관 캐럴은 자신이 직접 황열병에 감염된 모기한테 물려봤습니다. 그 결과 캐럴은 심한 황렬병에 걸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라지어도 모기에 물렸습니다. 불행하게도 라지어는 황열병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환자와 건강한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실험도 했습니다. 함께 자고, 음식을 먹어도 황열병은 전염되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월터 리드 팀은 황렬병이 병원균을 갖고 있는 모기에 의해서만 전염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또 황열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피를 다른 사람에게 주입했을 때도 그 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동시에 황열병이 박테리아로 전염된다는 설은 옳지 않다는 것도 증명했습니다.   

리드 소령의 보고가 있자 미군은 공병대를 동원해 쿠바의 모기 서식지를 없애고 모기 대피 시설을 마련했습니다. 그후 90일 이내에 쿠바에서 황렬병은 사라졌습니다.  

월터 리드는 워싱턴으로 돌아와 교수직을 계속했습니다. 미시간 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는 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습니다.   

그의 나이 51세이던 1902년 11월 22일, 월터 리드 박사는 충수돌기염 수술의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미군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군 의료원을 월터 리드 육군 병원이라 명명했습니다. 월터 리드의 연구는 의학계의 커다란 업적일 뿐 아니라 보건 복지 분야의 업적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