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미국 적십자 창설자, 클라라 바턴

2020.4.10 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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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미국 적십자 창설자, 클라라 바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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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미국 적십자 창설자, 클라라 바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클라라 바턴.


미국 적십자사는 국내는 물론, 세계 여러 지역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미국 최대의 구호 기관입니다. 적십자 운동은 스위스의 앙리 듀낭에 의해 1863년에 출범했지만 미국에서는 그보다 늦은 1881년  클라라 바턴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클라라 바턴은 1821년 12월 25일, 미국 북동부 매사츄세츠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스테픈 바턴은 농부이자 민병대 대위 출신이었습니다. 위로는 두 언니와 두 오빠가 있었습니다. 

클라라는 무척 수줍은 아이여서 부모들은 클라라를 집에서 가르쳤습니다. 교사인 오빠가 읽기, 쓰기, 산수를 가르치고 아버지는 지리와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클라라 바턴의 첫 직업은 교사였습니다. 다음에는 워싱턴으로 가 정부기관인 특허청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1861년 남북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해  워싱턴에서 별로 멀지 않은 볼티모어에서도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북군 병력 중에는 클라라의 고향에서 온 부대도 있었습니다. 북군의 부상병들은 워싱턴으로 후송이 됐습니다. 클라라는 혹시 고향 사람이 있지 않을까 염려돼 그들이 수용돼 있는 기차 정거장으로 가봤습니다. 클라라는 그곳에서 뜻밖에도 아는 사람을 여러 명 만났습니다. 클라라는 만사를 제쳐놓고 그들을 보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클라라는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장병들을 간호하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클라라는 부상 당한 후 빨리 치료를 했으면 살 수 있었을 전사자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클라라는 전투 현지에서 가능한한 빨리 부상병을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고위 지휘관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군대 규정으로 여자는 어떤 사람도 전투 지역에 들어갈 수가 없게 돼 있었지만, 지휘관은   클라라의 간절한 요청을 듣고 그것을 허락했습니다. 

클라라는 워싱턴과 접한 버지니아주의 불런(Bull Run)이라는 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여성들과 기차를 타고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불런에서는 북군이 참패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부상병들이 쓰러져 있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클라라는 잠도 자지 못하고 부상병들을 돌보았습니다. 그 후 4년 동안 클라라는 이처럼 처참한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부상병들을 돌보았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클라라 바턴은 휴식차 유럽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여행 중 스위스를 방문한 클라라 바턴은 그곳에서 국제적십자 창설자인 앙리 듀낭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적십자 정신에 완전 매료가 됐습니다.
‘전쟁 시 부상당한 군인은 아군이든 적군이든 또는 어떤 인종이든 가리지 않고 간호한다. 적십자사에 종사하는 대원들, 의사, 간호사를 절대 납치하거나 감옥에 넣으면 안 된다. 화재, 홍수, 태풍, 바람, 지진 등 인간이 고통 받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돕고 나눈다. 모든 봉사는 무료다’ 클라라 바턴은 이런 적십자 정신에 ‘내가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느꼈습니다. 

미국에 돌아오자 클라라 바턴은 즉각 미국 적십자 창설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정부 요인, 의회, 사회 지도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 적십자 창설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클라라는 러더포드 헤이스 대통령과 후임 체스터 아서 대통령도 찾아가 적십자 설립을 허가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클라라 바턴은 1881년 5월 21일, 워싱턴에서 미국 적십자사의 출범식을 거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클라라 바턴은 총재로 추대됐습니다. 

출범 후 미국 적십자사는 오하이오, 펜실바니아, 텍사스 등에서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하자 이재민들을 돕는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플로리다에서는 황열병이 발생하자 50명의 의사와 간호사를 동원해 감염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재임25년 동안 클라라 총재는 러시아, 아르메니아 등의 기아, 중동의 전쟁 피난민 구호 등 적십자 활동을 국제적으로 확대했습니다.  78세의 고령일 때도 클라라는 쿠바의 병원을 직접 찾아가  환자들을 돕는 등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미국 적십자사는 이재민 구호뿐 아니라 혈액 제공, 군인 가족 지원, 국제 원조 등 여러 분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습니다. 소요되는 자금이나 인력은 모두 기부와 자원봉사로 이루어 졌습니다.

오늘날 미국 적십자사는 전국 650여 개의 지부에 3만여 명의 직원, 50여만 명의 자원봉사자를 두고 연간 7만 건이 넘는 재난 구호를 하고 있습니다. 36군데의 혈액 센터가 있고, 3천여 개 병원과 재난 지역, 전쟁터 등에 긴급 혈액을 제공하는 미국 최대의 혈액공급처이기도 합니다. 미국 적십자사는 이런 활동을 위해 모금한 금액만도 연간 70억 달러에 가깝습니다. 클라라 바턴은 80대 중반이던 1904년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에도 강연을 하고 책을 쓰는 등 바쁘게 지내던 클라라 바턴은, 1912년, 메릴랜드 주 자택에서 90세로 타계했습니다. 

수줍고 조그마한 체구였지만 거대한 삶을 산 클라라 바턴. 그가 시작한 일은 오늘날까지도 어려움에 처한 수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