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감미로운 음색으로 사랑 받는 팝스타, 팻 분

2021.4.8 7: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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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감미로운 음색으로 사랑 받는 팝스타, 팻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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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3월 일본 도쿄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팻 분.

반세기에 걸쳐 감미로운 노래로 정상의 인기를 누려오던 팻분은 가수, 작곡가, 배우, 작가, 방송인 등 다재다능한 미국의 연예인입니다. 정결하게 빗은 머리, 부드러운 미소를 띤 팻분은 1950-60년대  미국적 가치의 상징이었습니다. 

로큰롤이 세상을 뒤흔들 것이라는 전조가 나타나, 일부 음악 팬들을 불안하게 하던 시기, 팻분은 안전하고 평범하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노래로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본명 패트릭 찰스 유진 분은  당시 4천 5백만장의 레코드 판매라는 엄청난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화잇 크리스마스, 산타 클로스 오시네 등 그가 부른  캐럴 앨범은 성탄절의 고전이 돼 오늘날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사랑 노래부터 헤비 메탈까지 그가 부른 노래는 거의 2천곡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는 장수 텔레비젼 쇼의 진행자에, 10여편의 영화에도 출연한 헐리우드의 배우이기도 합니다. 

팻분은 1934년 6월 1일, 플로리다 주 잭슨빌에서 태어났습니다. 미국 개척시기의 영웅 대니엘 분의 후손이었습니다. 팻분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생회장을 할 만큼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유명한 칸추리 음악 가수 레드 폴리의 딸, 셜리 폴리와 결혼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뒤를 이어 그는 노스 텍사스 주립대학을 거쳐 명문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팻분은 라디오 텔레비젼의 아마추어 탤런트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한 다음, 일년 동안 그 텔레비젼에 고정 출연했습니다. 그가 처음 음반을 낸 것은 1954년이었습니다. 두 마음, 두키스 (Two Hearts, Two Kisses)입니다.

 “한 마음으로는 부족해 baby,   두 개의 하트가 널 미치게 해,  한 번의 키스는 정말 나이스, 두 번의 키스가 당신을 낙원으로” 이런 사랑 노래입니다. 

1955년이 저물어갈 무렵 그가 부른 노래 Ain't That a Shame은 처음으로 빌보드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Ain't That a Shame은 깨어진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956년에서 1963년 사이 팻분은 50 곡 이상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인기 가도를 달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곡들은 나를 막지 마세요(Don't Forbid Me), 4월의 사랑(April Love),   모래위에 쓴 사랑의 편지(Love Letters in the Sand) 등이었습니다.  

이 처럼 달콤하고도 격조 높은 음색의 매력, 성실하고 따뜻한 무대 매너, 훌륭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팻분은 세계 틴에이저·여학생·주부들의 우상이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현란한 의상과 동작으로 인기를 몰아갈 때, 그의 유일한 경쟁자는 바로 팻분이었습니다. 

팻분은 방송과 영화에도 진출했습니다. 그는 나이 23세에 ABC 텔레비젼 쇼  팻분 쉐비 쇼룸(The Pat Boone Chevy Showroom)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이어 영화에도 진출했습니다. 15편의 출연 영화 중에는 1957년의 버나딘(Bernadin), 4월의 사랑 (April Love)이 있습니다. 1959년의 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는 온 가족이 즐겨보는  공상과학 영화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구의 중심부로 탐험 여행을 떠나는 이 영화는 한국에서 ‘마그마 탐험대’로 소개됐습니다. 

팻분은 여러권의 책을 낸 저술가이기도 합니다. 그 중 1950년대 베스트 셀러 1위를 차지한 책, Twixt Twelve and Twenty 는 12살에서 스무살까지의 방황 끝에 틴에이저들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 그리고 문기둥, (Between You, Me and the Gatepost), 부모님 보살피기(The Care and Feeding of Parents) 등도 인기 있는 저서들이었습니다. 

비틀즈가 십대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휩쓸자 팻분의 위상은 약화됐습니다. 1962년 이후 그는 인기순위 40위권 이내로 다시 들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팻분은 60년대 말까지 레코드 취입을 계속했고 부인, 네 딸과 함께 라이브 공연을 이어갔습니다.

지난 2017년 6월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공연하는 팻 분.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팻분은 기독교 복음 성가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컨트리 음악으로 여러 히트곡을 발표했습니다. 나이 50에 가까워지면서 팻분은 현대적 기독교 복음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동시에 대대적인 자선운동도 전개했습니다. 

1980년대와 90년대 팻분은 옛날 처럼 대중 미디어의 각광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1997년에 나온 유머 풍의 노래 ‘난 더 이상 착한 사람이 아니야’ (No More Mr. Nice Guy)로 또 한번 세인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팻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기 가수상인 American Music Awards수여식에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몸에는 문신을 하고 나타나 보수파를 놀라게 했습니다. 보수적인 크리스천 팬들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강한 록 음악, 즉 메탈 음악 동료들은 63세인 그의 변신에 신선하다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팻분은 트리니티 방송 네트워크 (Trinity Broadcasting Network)의  ‘가스펠 아메리카’ 복음 방송 프로그램 (Gospel America)에서 퇴출되는 홍역도 치렀습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돼도 노익장 팻분의 다채로운 행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양적으로는 옛날 처럼 많지 않았지만 그는 크리스마스 노래, 애국을 고취하는 곡, 고전적 R&B 풍의 노래 등 다양한 앨범을 꾸준히 내 놓았습니다.

반세기에 걸쳐 최정상 연예인의 길을 걸어온 그는, 80대 후반으로 접어든 오늘도, 음반사, 방송사, 프로 스포츠 팀 회장으로 뿐 아니라 자선활동, 복음선교 등으로 여전히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