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언론인 대담] "대통령과 말다툼, 언론 자유 증거" 의회 전문기자 올리비아 비버스

2021.6.17 5: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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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언론인 대담] "대통령과 말다툼, 언론 자유 증거" 의회 전문기자 올리비아 비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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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출범 초기 주요 의제들이 이제 의회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 사업인 ‘미국일자리계획(American Jobs Plan)’, 복지 투자 사업인 ‘미국가족계획(American Family Plan)’, 그리고 선거 개혁법안인 ‘국민을 위한 법안(For the People  Act)’을 의회가 다루고 있는데요. 민주-공화 양당의 협상을 통해 언제 어떻게 실현될지, 아니면 좌절될지 관심이 높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의회 전문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소속 올리비아 비버스 기자를 초대했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시겠어요?

비버스) 물론이죠! 제 이름은 올리비아 비버스입니다. ‘폴리티코(Politico)’에서 의회를 출입하고 있고요. 상ㆍ하원에서 나오는 뉴스들을 전반적으로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폴리티코에 온 지는 얼마 안 돼요. 올해 1월에 합류했고요. 그 전에는 의회 전문 매체 ‘더힐(The Hill)’에서 일했습니다. 그보다 전에는 뉴스 전문 방송 CNN에서 근무했습니다. 

기자) 그렇게 여러 매체를 거치면서 의회 전문기자로 유명한데, 저희 청취자분들을 위해 최근 보도 중에 중요한 것을 하나 꼽아주시죠.

비버스) 두 개를 꼽으면 안 될까요? 하하하. 제가 볼 때 중요한 게 많아서요. 하나는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까지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번째 탄핵 사태입니다. 우크라이나와의 밀착(에 관한 의혹)을 다루는 사안이었죠. 탄핵안을 의회에서 논의한 게 1990년대 말 빌 클린턴 대통령 이후 처음이었으니까, 실로 오랜만이었고, 중대한 사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언론사들이 모여 특별취재단을 구성했어요. 그때 제가 언론사 간 합의를 통해, 단장(lead impeachment reporter)을 맡았습니다. 특별취재단이 작성한 기사가 주요 매체를 통해 미국과 세계에 전달됐으니, 제 경력에서 큰 성취 가운데 하나였어요.

기자) 두 가지 중에, 다른 한 가지 중요한 기사는 뭔가요?

비버스) 두 번째는 지난 1월 6일 의사당 내부에서 벌어진 일을 취재한 겁니다. 의사당 습격 사건이요. 미국 헌정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습니다. 시위대가 의사당에 난입해 폭력 행위를 하고, 대선 인증 절차를 멈추게 했어요. 당시 많은 매체는 안전을 우려해, 현장 취재를 자제했습니다. 기자들이 외부에서 상황을 관찰하면서 보도하는 쪽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의사당 안에서 의원들과 함께 머물면서 생생한 보도를 했습니다. 그 공격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의원들이 대피했으며, 어떻게 질서를 회복했는지 상세한 과정을 다음 날(1월 7일) 보도했는데, 여러 매체에서 받아 썼습니다. 

기자) 당시 사건 발생 소식을 듣고 본회의장 내부에 있던 하원의원 몇 명과 통화를 했는데,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의원들을 죽이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었다고 해요. 현장에서 그런 일을 직접 겪으면서 무섭진 않았습니까?

비버스) 무섭지 않았냐고요? 물론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고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회의장 안쪽까지 총성이 울리고 있었어요. 저는 그 안에서 손발이 덜덜 떨렸습니다. 기자로서 ‘이 자리를 지키고, 일어나는 사실들을 독자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는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질 않았어요. 제 몸은 자꾸만 현장을 벗어나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았던 거죠. 그러다 보니, 기사 작성은 뒷전이고 ‘내가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있나’ 계산하기에 바쁜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기자) 결국 현장에 남아 기사를 쓰셨으니까, 개인의 안전보다 기자로서의 사명을 지키기로 한 거군요?

비버스) 네. ‘내가 여기서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정말 두려웠습니다. 그동안 기자 경력에서 그런 적이 없거든요. 제가 무슨 종군 기자도 아닌데, 미국에서 취재 활동 중에 그런 상황을 맞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어요. 그것도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사당이 폭력에 위협받게 되다니…, 엄청난 충격이었죠. 하지만 현장에 남아 제대로 된 기사를 쓰면, 언론계 전체에도 의미 있는 일이고, 미국 역사에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 다그쳤습니다. 당시 현장에 취재진이 많이 없던 상황이라, 더욱 그런 책임이 컸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날 의사당에 남아 끝까지 취재하기로 결정한 그 판단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기자) 그렇게 특별한 날이 아닌 경우, 의회 출입 기자의 일과는 어떻게 돌아갑니까?

비버스) 의회 일정이 매일매일 다르기 때문에, 제 일과도 거기에 맞춰 돌아갑니다. 의회 출입 기자가 커버(담당)할 분야가 꽤 넓어요. 상ㆍ하원에서 그때그때 열리는 법안 표결, 청문회, 또 관련 브리핑 같은 것들을 다 챙겨야 하고요. 주요 의원들의 지역구 활동도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 일과는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어요. 

기자) 출퇴근 시간도 일정하지 않고, 밤낮없이 일하시겠네요?

비버스) 네. 그래도 하루의 시작과 끝은 같습니다. 제가 ‘폴리티코’ 독자들에게 발송하는 뉴스레터(소식지) 담당 에디터거든요. 그래서 의회 일정을 마무리한 저녁 시간에는 그날 일들을 정리한 뉴스레터를 써요. 오후 한 6시쯤 됩니다. 거기에 들어갈 말들을 정리하기 위해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시간도 저녁때예요. 그리고 잠자리에 든 뒤, 다음 날 오전 5시 반에 일어납니다. 밤 새 별일이 없었다면, 전날 써둔 뉴스레터를 마무리해 ‘전송’ 버튼을 클릭해요. 그러고 나면 오전 7시 반 정도 되고요. 아침 식사를 하고 제 출입처인 의사당으로 향하는 시각이 오전 9시께입니다. 

기자) 그렇게 의회로 출근한 뒤에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비버스) 회의 일정이 잡혀있으면 우선 참석하고요.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은 주요 의원들을 만납니다. 만나서, 현안에 대한 입장을 물어요. 특정 사안이나 법안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확답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그 사안이 실현될지 안 될지 큰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런 내용의 기사를 쓰는 게 의회 출입 기자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예요. 그런 기사를 보고, 백악관과 행정부에서 대응책을 모색하게 되니까요. 물론 백악관 정무 계통에서 직접 의회와 교섭하지만, 저희 보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정 법안에 관해 ‘통과가 어려울 듯’이라고 저희가 기사를 쓰면,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백악관 측이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하고요. ‘누가 특정 사안에 반대한다더라’고 저희가 기사를 쓰면, 백악관에서 해당 의원 설득 작업에 나서기도 합니다.

지난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탄핵 특별취재단장을 맡은 올리비아 비버스 기자가 MSNBC 뉴스에 출연해 탄핵안 발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MSNBC 제공).

기자) 최근 의회에서 최고 쟁점 사항 가운데 하나가 아무래도 지출안이 아닐까 합니다. 인프라와 복지, 두 사안에 총 4조 달러 넘는 돈을 들이려고 정부가 추진하고 있잖아요? 정부는 시한을 제시하고 의회를 압박하는 중인데 조만간 성사될 것 같습니까? 근거 입법을 마련해줘야 하는 의회 내 분위기가 어떤가요?

비버스) 아시다시피, 바이든(대통령)이 그 사안들에 초당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쓰려는 액수(price tag)가 공화당이 보기에는 너무 크거든요. 몇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한꺼번에 지출하는 계획은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화당은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공화당이 원하는 수준까지 규모를 줄이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합의 처리가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기자) 극적인 타협 가능성은 없습니까?

비버스) 현재로선 거의 없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입장이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요. 양쪽 모두 양보를 잘 안 하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액수도 문제이지만, 다른 쟁점들이 또 있어요. 인프라 투자 사업의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첨부한 ‘사회 복지 항목들(social package)’들이 걸림돌입니다. 저소득층 주거 개선, 노약자 지원 시설 확충 같은 것들인데, 정부와 민주당에선 이것도 ‘넓은 의미의 인프라’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공화당은 그런 것들이 ‘정부의 개입만 확대하는 진보 좌파 의제’라고 봐요. 그래서, 시급하게 성사시키려면 정부와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독자 처리뿐입니다. 하원에서는 (민주당이 다수당이니까) 될 거고, 상원에서도 필리버스터(filibusterㆍ장시간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뚫을 방법은 있습니다. 예산 수정 결의안에 ‘조정권(reconciliation process)’을 행사하면 단순 과반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데요. 그걸 매번 쓰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기자) 비버스 기자 본인의 이야기로 돌아가죠. 언론인이 되자고 마음먹은 계기는 뭔가요?

비버스) 잘못된 언론 보도 하나 때문입니다. 저와 주변 사람들이 큰 영향을 받은 경험이 있거든요. 제가 버지니아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외교학을 전공했는데요. 졸업반이었던 당시, 교내 친교 모임에서 집단 성폭행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종합 문화 매체 ‘롤링스톤(Rolling Stone)’에 실렸습니다. 미국 전역에 큰 파장을 일으킨 보도였어요. 우리 학교에 관심과 비난이 집중되면서, 저뿐만 아니라, 재학생과 졸업생, 교직원을 포함한 학교 구성원 모두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보도 몇 주 만에 대형 오보로 판명 났어요. 기사에서 피해자로 등장한 ‘재키(Jackie)’라는 여성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었고, 여러 가지 사실관계가 다른 것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 학교 구성원들의 명예는 크게 실추된 뒤였습니다. 

기자) 2015년에 나온 그 기사는 미국 언론 역사에서 손에 꼽힐 만한 잘못된 보도로 평가받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롤링스톤’ 측이 명예훼손 재판 끝에 해당 모임에 거액을 배상했죠?

비버스) 네. 하지만 그 친교 모임은 물론, 학교와 지역 사회가 받은 상처는 재판으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특종 경쟁에만 몰입해서 무리한 기사를 내보내면, 사회에 큰 후폭풍을 남기는 전형적인 사례였어요. 저는 분노 섞인 마음에 ‘내가 기자를 하면 저것보다 잘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언론에 관심이 깊어졌어요. 그래서 학교를 마친 뒤 곧바로 CNN 워싱턴 총국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자) 정치를 전문 분야로 택한 이유는 뭔가요?

비버스) 원래 정치를 좋아했어요. 어릴 때부터 아주 매혹됐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겁니다. 정치는 뭐랄까, 제가 볼 때 ‘종합예술’이에요. 시대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주민들을 대표하겠다고 나서고, 선거를 통해 선택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협상과 투쟁을 벌여, 다양한 목표를 이뤄내든가 또는 좌절합니다. 그 결과로 국민의 삶이 나아지기도 하고, 오히려 퇴행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들이 너무 재미있어요. 정치 외에 다른 분야를 취재하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나라의 정치와 다른 나라의 정치가 교류하는 관점에서, 국제뉴스를 다뤄보고 싶습니다.

기자) 그동안 미국 의회를 취재하면서, 여성이라서 감당해야 했던 어려움은 없었나요?

비버스) 음…, 여자라서 특별히 힘들었다거나, 아니면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지금 의회뿐 아니라, 미국 언론의 각 전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들이 많잖아요. 여성들이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겁니다. 언론계는 매우 경쟁이 심한 곳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성별로 단정 짓는 시대가 아니라, 실력과 경력, 그밖에 다양한 요소들로 평가합니다. 이렇게 남성을 상대로, 실력을 통해 겨룰 수 있는 시점에 기자가 됐다는데 감사합니다. 특히 저를 이끌어주신 멘토(상담자)들 중에, 성공한 여성 언론인들이 많아요. 그분들 세대는 여성이 사회 활에 불리했는데, 그렇게 앞서 자리 잡아 변화를 일으켜 주셔서 감사하고, 저희 같은 젊은 세대들을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비버스) 음, 제가 그 문제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미국의 언론 자유는) 최고 수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매일 의원들을 제한 없이 만나서, 불편하게 여길 만한 질문을 거리낌 없이 던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미국 밖의 기자들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옳은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위협을 당하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미국에서 기자 생활을 하는 게 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행정부에 큰 타격을 입힐만한 기사를 쓴다고 해서 목숨을 위협받거나 하는 일은 미국에선 상상할 수 없잖아요. 대통령과 기자가 티격태격 말다툼도 합니다. 자유가 없는 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게 언론 자유의 증거예요. 

기자)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뭡니까?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 거라고 기대하세요?

비버스) 제 목표는 언제나 같아요. ‘진실을 독자들에게 전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쉽진 않아요. 기자가 실력이 없으면, 진실을 보여줘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할 겁니다. 음… 5년이나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진 않았는데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위대한 기자’, ‘훌륭한 기자’로 평가받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비버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의회를 비롯한 미국의 다양한 취재 현장에서 여성과 남성들이 동등한 기회를 갖고, 열심히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 경쟁의 결과물은 양질의 기사가 돼서, 독자들과 대중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고요. 결국 ‘좋은 언론’이 미국을 ‘좋은 나라’로 지탱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이렇게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올리비아 비버스 미 의회 담당 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