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루이지애나의 베트남 보트피플...전역 군인들이 재기를 꿈꾸는 카페

2020.3.3 오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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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루이지애나의 베트남 보트피플...전역 군인들이 재기를 꿈꾸는 카페
방송 시작 시간 오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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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입니다. 1970년대, 4백만 명이 넘는 베트남인들이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베트남에 들어선 공산정권을 피해 배를 타고 조국을 떠난 난민들, 일명 보트피플들이 갖은 고생 끝에 미국에까지 도달했던 건데요. 당시 대부분이 미 서부 해안에 정착했지만,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 등 남부지역에 정착한 인구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미 남부 멕시코만 지역에 자리 잡은 많은 베트남 이민자들은 새우잡이 어선을 타거나 수산물 가공 일에 뛰어들었는데요. 빈손으로 미국에 와 새우 처리 사업으로 성공을 이룬 보트 피플을 만나보죠.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새우 처리 시설에서 베트남계 이민자인 테레사 누엔이 새우를 보관할 얼음을 옮기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새우잡이 어선으로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베트남 보트피플”

걸프만을 끼고 있는 루이지애나는 수산업으로 유명합니다. 새우를 한가득 실어 온 새우잡이 어선이 선착장에 닿으면 곧장 처리 시설로 이동하는데요. 이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한 여성, 바로 베트남 보트피플 출신인 테레사 누엔 씨입니다. 

[녹취: 테레사 누엔] “저는 새우 잡이 어선이 들어오면 새우를 구입합니다. 그리곤 선 처리 과정을 거친 후에 대형 새우 가공 업체로 납품합니다.”

누엔 씨는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본인 소유의 새우 처리 시설을 연 첫 번째 베트남계 이민자입니다. 

[녹취: 테레사 누엔] “저는 주말에는 무척 바쁩니다. 주중엔 좀 여유가 있어요. 아무래도 새우잡이 어선들이 출하를 덜 하거든요.”

작고 다부진 체격에 화려한 화장, 당찬 걸음걸이와 말투를 가진 누엔 씨는 70대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인데요. 지난 20년간을 하루도 빠짐없이 새우와 굴을 만지며 보냈다고 합니다.

[녹취: 테레사 누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전처럼 그렇게 일은 못 하고 있어요. 이전엔 정말 한시도 쉬지 않고 일했답니다.”

누엔 씨의 특별한 인생 여정은 1975년에 시작됐습니다. 당시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베트남은 공산정권하에 들어가게 됐고 월남인들은 자유를 찾아, 보트를 구해 조국을 떠나게 되는데요. 테레사 씨 역시 1979년 남편과 5자녀를 데리고 베트남을 탈출했습니다. 

[녹취: 테레사 누엔] “배를 타고 오면서 고생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배가 베트남을 떠난 지 닷새 만에 해적의 공격을 받았어요. 해적들은 배에 탄 난민들을 상대로 강도질과 강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누엔 씨가 탄 배는 말레이시아 국적 어선에 구조됐고 누엔 씨는 미국까지 올 수 있게 됐는데요. 텍사스를 거쳐 루이지애나에 자리 잡았습니다. 

[녹취: 테레사 누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길거리에서 새우를 팔았습니다. 제일 어린 자식을 옆에 앉혀두고서요. 2파운드, 3파운드, 이렇게 조금씩 팔았죠. 뉴올리언스를 돌아다니며 일종의 새우 행상을 했어요. 낡은 차는 뒷좌석도 없어서 조수석에다 어린 아들을 앉히곤 장사를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은 누엔 씨는 곧 문을 닫을 처지에 있던 수산물 처리 시설을 인수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녹취: 테레사 누엔] “처음 한 2년 동안, 지역의 어부들이 저와 거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수산물이 조금 잡힌 날이나 우리 공장에 와서 팔려고 했지, 수확이 좋은 날은 다른 공장을 찾았어요.”

다행히 사업 규모는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강도를 만나기도 했고, 대형 자연재해에 모든 것을 잃기도 했습니다. 

[녹취: 테레사 누엔] “지난 2005년에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 남부를 휩쓸었죠. 당시에 카트리나는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도 사업체를 완전히 다 잃었습니다.”

하지만 누엔 씨는 오뚝이처럼 일어서도 또 일어서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70대가 된 지금까지 넘치는 열정으로 새우 처리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녹취: 테레사 누엔] “71살이 됐으니까 이제 은퇴할 때도 됐죠. 하지만 하늘이 허락하는 한 저는 계속 일을 할 겁니다.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요.”

사람들의 편견도, 자연재해도 누엔 씨의 꿈과 열정만큼은 꺾을 수 없는데요. 배를 타고 미국에 온 보트피플 출신 난민은 미국 멕시코만에서 새우잡이 어선을 통해 아메리칸드림을 이루어 냈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도그태그 베이커리'에서 전역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 전역 군인들이 재기를 꿈꾸는 카페”  

‘음식은 사랑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성 들여 요리한 음식에는 그 음식을 먹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아끼는 마음이 들어가기 마련이죠. 그런데 워싱턴 DC에는 전역 군인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내는 카페가 있습니다.  

향긋한 커피 향과 각종 빵과 케이크로 가득한 이곳은 ‘도그태그 베이커리’입니다. 도그태그란 말 그대로 풀이하면 개목걸이인데요. 미군이 목에 걸고 다니는 인식표, 즉 군번줄을 도그태그라고 부르곤 하죠. 상호에서 알 수 있듯 이 카페는 일반적으로 커피와 빵을 파는 카페와는 조금 다른, 특별한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녹취: 매건 오길비] “우리 카페는 일종의 생활 경영 학교입니다. 전역 군인들과 군 복무 중 장애를 입은 상이군인, 군인의 배우자, 또 군인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모여서 소규모 사업과 기업가의 정신 등에 대해 배웁니다. 참가자들은 주 4일, 6시간씩 5개월간 수업을 들어요.”

도그태그 베이커리의 최고경영자(CEO)인 매건 오길비 씨는 이들 참가자들이 조지타운대학교 교수가 가르치는 총 7단계 과정을 수료하게 된다고 설명했는데요. 수강 기간, 그룹 토론과 몇 차례 시험을 통과하면 조지타운대가 수여하는 경영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가게 1층은 일반적인 카페와 똑같이 차와 커피를 팔지만 2층은 전역 군인과 그 가족들이 수업을 듣는 학습 공간입니다.  

[녹취: 매건 오길비] “수업 중에 ‘나의 목소리 찾기’라는 과정이 있어요. 이 수업을 통해 참가자들은 자아를 개발하고 자신의 가치와 또 삶의 목적을 찾는 기회로 삼습니다. 무엇보다 미래의 계획을 세울 수도 있죠.”

미국의 비영리 연구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전역 군인 약 4명 중 1명은 군 복무를 마친 후 민간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또 이들 가운데 30%는 군 생활에서 얻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민간인으로의 복귀에 매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데요. 도그태그 베이커리의 수강생인 티키 툰디 씨 역시 제대 후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했습니다. 

[녹취: 티키 툰디] “저는 육군으로 복무하던 중에 건강상의 문제로 2015년에 의병 제대했습니다.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알아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툰디 씨에게 지금 듣고 있는 수업은 새로운 길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녹취: 티키 툰디] “이런 프로그램을 만나게 된 것이 또 내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이 너무 기쁩니다. 늘 무기력하던 제가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하루를 위한 계획이 세우고, 성취할 무언가가 생긴 것. 이런 변화가 제게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수업은 전역 군인은 물론 군인 가족들에게도 열려있습니다. 이동이 잦고 때로 가족 부양의 책임을 지기도 하는 군인의 배우자들에겐 직장을 찾고 또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요. 4년간 전업주부로 살다가 건강 문제로 제대한 남편을 돌봐야 하는 처지에 놓인 브랜디 램버트 씨는 그래서 바로 이곳을 찾았습니다.

[녹취: 브랜디 램버트] “집에만 늘 있다가, 사회에 나가 취업을 해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는 것과 가정을 돌보는 것을 동시에 어떻게 수행하고 또 균형을 맞추며 생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이런 간절함으로 모인 사람들이기에 수업 시간은 뜨거운 학구열로 넘치는데요. 오길비 CEO는 도그태그 베이커리는 군인들만을 위한 공간, 혹은 민간인들만의 공간이 아닌,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공간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