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다재다능한 최초의 흑인 여성 우주인, 메이 제미슨

2021.2.18 7: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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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다재다능한 최초의 흑인 여성 우주인, 메이 제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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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 미국의 흑인 역사의 달입니다.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의 역사와, 그들이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을 조명하고 기념하는 기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우주인이며, 과학자, 의사, 대학교수로, 아프리카계 뿐만 아니라 모든 젊은이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메이 제미슨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우주인 메이 제미슨이 지난 1999년 9월 우주왕복선 인데버호 탑승을 앞두고 찍은 사진. 사진=미항공우주국(NASA).

메이 캐롤 제미슨은 1956년 10월 17일 앨라바마 주 디케이터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와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는 아버지에게서 난 3남매중 막내였습니다. 

어렸을 적 제미슨 가족은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이사했습니다. 제미슨은 춤추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또 한가지 좋아하는 것은 과학이었습니다. 어린 제미슨은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가서 과학과 천문학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제미슨은 늘 하늘의 별을 보며 자신이 그곳에 가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제미슨은 텔레비젼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달 탐험 계획, 아폴로 계획도 흥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제미슨은 항상 여성 우주인이 없다는게 불만이었습니다. 

인기있는 텔레비젼 우주과학 드라마  Star Trek도 제미슨이 즐겨보는 프로였습니다. 

제미슨은 1973년 시카고의  모건 파크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16살에 캘리포니아의 명문 스탠포드 대학교에 학격했습니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제미슨은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는 한편 흑인학생 연맹 회장을 맡는 등 학생활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춤을 좋아한 그는  흑인 학생들의 경험을 나타내는 ‘그늘 밖으로’라는 무용극도 제작 공연했습니다. 

제미슨은 1977년 화공학과 흑인 예술 복수 전공으로 스탠포드를 졸업했습니다. 다음에는 뉴욕의 명문 코넬 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갔습니다.  1981년 의대를 졸업한 제미슨은 로스 엔젤레스 카운티 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거처 일반 내과 전문의가 됐습니다. 제미슨은 진료실을 개업했습니다.

1983년 미국에서는 샐리 라이드가 최초의 여성 우주인이 돼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제미슨 박사는 환자 보는 것을 그만두고 어렸을적부터 꿈이었던 우주인이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1985년에 존슨 우주 센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무작정 우주인 지원서를 내고 싶다고 하자 우주 센터 직원은  약간은 황당하기도 해 웃기만 했다고 제미슨은 당시를 회고합니다.  제미슨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86년에는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가 공중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항공우주국은 당분간 지원서를 받지 않았습니다.  제미슨은 1987년에 다시 원서를 냈습니다. 제미슨은 2천명의 응시자들 중 최종 합격자 15명에 뽑혔습니다. 제미슨은 항공우주국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사진촬영에서부터 지리학, 지질학, 각종 시스템의 이해,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스쿠버 다이빙, 비행기술 등 우주인이 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제미슨은 특수비행요원으로  1989년 9월 28일 STS-47 비행계획에 배치됐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92년 9월 12일. 드디어 제미슨을 포함한 7명의 우주인들은 왕복선 인데버 호를 타고 지구 궤도로 날아갔습니다. 흑인 여성 최초의 우주 여행 소식은 세계적인 화제가 됐습니다.  왕복선은 파리, 개구리와 그 알, 곰팡이, 씨앗, 파리 등도 싣고 갔습니다.

제미슨은 우주를 날으면서 자신과, 지구, 그리고 우주는 서로 연결이 돼 있는 존재라는 점을 실감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지구 궤도에서 미국 시카고를 내려다 보며 우주인이 되기를 꿈꾸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다고 말했습니다. 

인데버 팀은 지구를 127번 돌면서 두 팀으로 나뉘어 쉬지않고  생물학, 물리학, 무중력 상태에서의 인체의 건강, 배아의 변화 등 각종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재료공학 분야로는 액체의 움직임, 물질의 이동, 금속, 유리, 쎄라믹 등에 관한 실험도 진행했습니다. 인데버는 190시간 30여분의 비행을 마치고 1992년 9월 20일 플로리다 주 케네디 우주 센터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우주인 메이 제미슨 씨가 지난 2019년 4월 뉴욕에서 열린 '세계여성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왕복선 비행을 마친 제미슨 박사는  6년만에 우주국을 떠났습니다. 제미슨 박사는 자신의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교육과 사회를 위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과학, 기술, 사회개혁을 증진하는 자문회사를 설립하는 한편,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연구소도 운영했습니다. 그는 명문 다트머스 대학과 코넬 대학교 교수로도 일했습니다.

12살에서 16살 사이의 학생들을 위한 국제우주 캠프도 개설했습니다. 2001년에는 첫 저서 ‘바람은 어디로 가는가’ (Find Where the Wind Goes) 를 펴냈습니다. 자신의 삶을 어린이들에게 소개하는 저서입니다. 

제미슨 박사는 미국 첨단 국방 연구국 (DARPA)에서 100년간의 혹성 탐사선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0년 이내에 인간이 또 다른 혹성으로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업입니다.

과학과 예술은 서로 연결돼 있다고 강조하는 제미슨 박사는 무용 연구소도 갖고 있으면서 현대 재즈와 아프리카 댄스를 주제로한 여러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고 있습니다.     

제미슨 박사는 국립과학 아카데미 회원입니다.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 미 의학협회 명예의 전당, 텍사스 과학 명예의 전당 등에도 헌정됐습니다. 여러가지 영예 훈장도 받았고, 여러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도 받았습니다. 

제미슨 박사는 과학교사, 학생,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수 많은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제미슨 박사는 인간의 아이디어야 말로 잠재적인 에너지이지만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