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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언론인 대담] '대통령의 건강' 심층 보도, 크리스틴 섀머스


[여성 언론인 대담] '대통령의 건강' 심층 보도, 크리스틴 섀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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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한테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대통령의 건강 문제에 관심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통령의 건강’에 관한 심층 보도를 진행 중인 크리스틴 섀머스 기자를 초대했습니다. 섀머스 기자는 미국 언론에서 손꼽히는 ‘건강 전문기자’이자, 양성 평등을 다루는 ‘젠더 전문기자’이기도 한데요. 지금 바로 이야기 듣겠습니다.

크리스틴 섀머스 기자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캐슬린 갤리건 기자)
크리스틴 섀머스 기자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캐슬린 갤리건 기자)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섀머스) 네, 제 이름은 크리스틴 섀머스입니다.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Detroit Free Press)’에서 젠더-건강 전문기자(Gender and Health Reporter)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는 미시간주 최대 신문이고요, 이 밖에 전국 규모 주요 매체와 방송 등에 기고하거나 출연하고 있습니다.

기자) ‘건강 전문 기자’는 많이 있어도, ‘젠더 전문 기자’는 드문데, 어떻게 그런 타이틀을 갖게 되신 건가요?

섀머스) 음, 길고 복잡한 사연이 있는데요. 프리프레스에서 일한 게 좀 오래돼서, 편집국 간부 직책을 맡았거든요. 논설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여성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좀 바꿔야겠다는 문제의식이 커졌어요. 그래서 양성 평등에 관한 사안을 취재하는 ‘젠더 전문 기자’로, 다시 취재 일선에 나선 겁니다.

기자)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이 커진 계기는 뭡니까?

섀머스) 2016년 대선 이듬해였습니다. 당시 워싱턴 D.C.에서 대규모 행진이 열렸던 것 기억하세요? 미국 여성 운동에 새로운 활기가 돌았거든요. 이런 움직임이 미국 주요 도시 곳곳으로 퍼지면서, 이른바 ‘핑크 웨이브(Pink Waveㆍ분홍빛 물결)’가 펼쳐졌습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이 과정을 현장에서 보도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마침 저희 신문의 건강 전문기자가 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어요. 그래서 그 일도 제가 맡았죠. 그렇게 ‘양성 평등’와 ‘건강’ 두 가지 전문 분야를 갖게 됐습니다.

기자) 건강 전문기자로서, 요즘 주목받는 기사들을 쓰고 계십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요. 여러 매체에서 인용하는데, 어떤 내용인지 저희 청취자들께 간략히 소개해 주세요.

기자) 수많은 의료진을 인터뷰했어요.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에서 우리 미국인들이 배워야 할 점이 무언지를 물었습니다. 대통령까지 팬데믹의 직접 피해자가 된 상황이라면, 우리가 뭔가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걸 짚어내는 게 언론의 역할이고요. 그래서, 제가 만나본 대다수 의료진은 이렇게 말해요, “바이러스는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적 지위’를 보고 감염 대상을 고르지 않는다”고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코로나 사태의 원인과 현황, 해법을 보는 정치적 관점이나 입장 차이가 있더라도, 기본적인 방역 수칙은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누구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게 결론입니다.

기자) 정치적인 입장과 관계없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방역 수칙이란 건 어떤 것들인가요?

섀머스) 마스크를 써라, 손을 자주 씻어라,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라, 이 세 가지가 제가 만나본 의료진의 공통 요구 사항입니다. 뻔한 얘기 같지만 아주 간단해요. 언론에도 자주 보도됐고, 보건 당국자들도 여러 차례 강조했던 것들입니다.

기자) 섀머스 기자의 언론 경력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죠, 기자가 된 계기는 뭡니까?

섀머스) 저희 부모님께서 엄청난 뉴스 소비자셨어요. 여러 가지 신문을 한꺼번에 받아 보시고, 텔레비전을 켜면 항상 뉴스만 보셨어요. 그리고 여느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아침마다 라디오 뉴스에서 정보를 얻으셨고요. 그런 환경에서 자란 저는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글 쓰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기자) 어려서부터 뉴스를 자주 접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신 거군요?

섀머스) 네, 집안 분위기에 제가 완전히 함몰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언론 관련 수업을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시러큐스대학교에서 1990년대 중반에 언론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뒤로 곧바로 신문사에서 일했어요.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에 합류한 지는 15년 정도 됐네요. 그걸 포함해서, 언론에 몸담은 게 거의 25년이 돼 갑니다.

기자) 약 25년을 지내는 동안 가장 좋았던 일은 뭐고, 가장 나빴던 일은 뭔가요?

섀머스)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이 한 가지 사건으로 중첩돼요. 바로 9. 11 테러 사태입니다. 신문사에 출근할 준비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케이티 큐릭(당시 NBC ‘투데이 쇼’ 진행자)과 맷 라우어(당시 NBC ‘투데이 쇼’ 진행자)가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충돌했다’고. 그러고 나서, 두 번째 비행기가 충돌하는 걸 화면을 통해 제 눈으로 목격했어요.

기자) 기자로서, 당시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섀머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곧바로 출근했는데, 저희 편집국에서 펼쳐진 광경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어요. 기자들 중에 뉴욕에 사는 가족ㆍ 친지를 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중에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근무하는 지인들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모두가 냉정을 잃지 않고 신문 제작에 몰두했습니다. 담당 분야를 가리지 않고 힘을 합쳤어요. 그렇게 그날 호외를 발행했고요, 다음 날 아침 정규 신문 발행까지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 언론인들의 헌신과 사명이 이런 거구나’하고 감동했어요.

기자) 그래서 9.11 테러 사태가 나쁜 기억이지만, 좋았던 기억이기도 하단 말씀이군요?

섀머스) 네. 역설적이게도, 그 불행한 국가적 사태가 제게 언론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더욱 북돋아 준 계기가 된 거니까요. 제 언론 경력을 통틀어,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지 않을까 싶어요.

크리스틴 섀머스 기자.
크리스틴 섀머스 기자.

기자) 이런저런 일을 경험하신 뒤 지금은 전문기자로 인정받고 있는데, 그동안 여성이라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섀머스) 어휴, 말도 마세요. 초년 시절에는 저를 기자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어리고, 여자였으니까 ‘이중 차별’의 대상이었던 거죠. 제가 비교적 어린 나이에 부장이 됐는데, 남성 부하 기자가 지시를 거부하는 일도 많았어요. 제가 나이 많은 남성이었다면, 그 기자가 저를 그렇게 무시했을까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여성은 책임자나 관리자가 되더라도, 걸맞은 대우를 안 해줬었다는 말씀이군요?

섀머스) 그렇습니다. 게다가 여성이 책임자나 관리자가 되기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당시 저희 편집국에서 보직 간부가 된 여성은 자녀가 없거나, 장성한 아이들을 독립시킨 사람들밖에 없었어요. 여성의 사회활동과 가사노동을 병립할 수 없다고 보는 분위기였으니까요.

기자) 양육 부담이 있는 ‘엄마’들한테는 중요한 자리를 맡기지 않았던 건가요?

섀머스) 네. 어린 자녀를 둔 보직 간부가 한 명 있었는데요. 2009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미국의 경기가 위축됐을 때, 해고됐습니다. 그 일이 제게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어요. ‘여자가 언론계에서 성공하려면, 가족을 가지면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제가 결혼하고 아이들도 낳아보니, 포기할 게 많더라고요. 제가 기획 기사 담당 부국장까지 올랐을 때, 셋째 아이를 가졌어요. 그런데 도저히 육아와 함께 업무를 감당 못 하겠더라고요. 그게 제가 직책을 내려놓은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기자) 여성들이 직장 내에서 그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섀머스) 시간제 근무도 방안이 될 수 있고요. 업무 시간을 각자 사정에 맞게 짤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해 줄 필요가 있어요. 지금은 나아졌지만, 당시 저희 신문사에 그런 게 많이 부족했거든요. 제가 셋째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에서 돌아온 뒤에 다시 부국장이 됐는데, 몇 년 뒤 또 자리를 포기해야 했어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거든요. 그때 생각했죠, ‘내가 남자라면 어디까지 갔을까?’, ‘육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됐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이런 것들에 관해서요.

기자) 여성이라서 포기한 기회들에 대한 아쉬움입니까?

섀머스) 그렇진 않아요.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행복합니다. 현장 취재를 하는 게 즐거워요. 그런 점에서 저희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은퇴하신 뒤로 줄곧 저의 육아를 도와주셨거든요. 어머니가 안 계셨다면 저는 여기까지도 올 수 없었을 겁니다.

기자) 그럼 ‘젠더 전문기자’의 시각에서, 지금 미국 언론의 양성평등 현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섀머스) 여전히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요. 뉴스룸(편집국ㆍ 보도국)의 중요한 자리는 대부분 백인 남성으로 채워져 있거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육아 부담이 없는 사람들 위주로 선택 받고 있는 거예요. 요즘은 신문사나 방송사나 가릴 것 없이,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뉴스를 내보내잖아요. 그럼 기자들 중에서, 아이를 키울 시간이 필요한 ‘엄마’들은 선택에 직면하죠. ‘가정’과 ‘직무’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겁니다.

기자) 섀머스 기자가 일을 시작한 25년 전 상황에서 달라진 게 없는 겁니까?

섀머스) 나아지고는 있어요. 하지만 양성 간의 균형과 평등이 완전히 실현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다만 양성 문제뿐만이 아니에요. 각 언론사 구성원 중에 인종, 연령을 비롯한 ‘다양성’ 전반에 개선 여지가 많습니다.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섀머스) 딱 집어서 점수를 매기긴 제 입장에서 좀 어렵습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을 향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죠, ‘국민의 적(the enemy of the people)’이라고요. 그만큼, 정치권을 중심으로 언론에 대한 적대적 환경이 조성된 게 사실이죠. 이런 상황에서 대중을 상대로, 언론의 신뢰를 지켜내는 건 언론인들 자신의 몫이라고 봐요. 이럴 때일수록 언론은 힘 있는 사람들이 감추려는 진실을 밝혀내, 대중에게 알리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겁니다. 언론을 가리켜서 ‘민주주의의 4번째 기둥’이라고 하잖아요. 언론의 신뢰가 무너지면, 민주주의 전체가 흔들립니다.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섀머스) 언론이 나서서, 그 사회의 다양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다양한 집단 구성원들이 지도자로 일어서는 데에는 언론의 도움이 필요해요. 여성뿐 아니라, LGBTQ(성 소수자), 유색인종, 종교적 소수자,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함께 하는 곳이 이상적인 사회이고요, 그런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데, 언론이 길잡이가 돼야 하는 겁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크리스틴 섀머스 ‘젠더-건강 전문 기자’의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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