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새를 사랑한 화가, 존 오듀본

2021.6.11 12:48 오전
라디오
[인물 아메리카] 새를 사랑한 화가, 존 오듀본
방송 시작 시간
This program has ended and is being processed for playback.
미국의 조류 화가이자 탐험가, 생태학자인 존 제임스 오듀본.

존 오듀본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조류 화가이자 , 탐험가, 생태학자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을 바쳐 거의 500종에 달하는 새를 관찰하고 채집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생생한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그의 그림은 뛰어난 미술 작품일 뿐 아니라 조류 생태계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존 제임스 오듀본 (John James Audubon)은   1785년 4월 26일, 카리브 해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 섬, 오늘날의 아이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장 오듀본은  프랑스 군 대위로,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생모는 대위의 하녀인 지니 라빈이었습니다. 존 오듀본의 태어날 때 이름은 진 라빈이었습니다. 

생모는 오듀본을 낳고 곧 사망했습니다. 진 라빈은 누나와 함께 프랑스 낭뜨에 있는 대위의 정식 부인 앤에게 보내졌습니다.  대위와 앤은 남매를 정식으로 자신의 아이들로 입적시키고 진 라빈에게  장자끄 포기에르 오듀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장자끄 오듀본은 넉넉한 집안 덕에 미술, 음악, 자연사 등을 포함한 여러가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또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습니다. 

오듀본은 이때부터 자연, 특히 새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아름답고 섬세한 깃털을 갖고 부드럽게 하늘늘 나는 새에 매력을 느낀 오듀본은 그림 솜씨를 발휘해 이들 새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듀본이 18살 때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 쟝은 아들이 나폴레옹 군대에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를 자신이 소유한 미국 펜실배니아 주 농장으로 보냈습니다. 쟝은 오듀본에게 그곳에 있는 광산의 운영도 맡겼습니다.

미국으로 오면서 오듀본의 이름은 존 제임스 오듀본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듀본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새로운 땅 미국에는 처음 보는 수 많은 새들이 있었습니다.  오듀본은 즉각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 온지 일년 후 오듀본은 루시 블랙웰이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오듀본의 미국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광산이 망한 뒤 오듀본 부부는 켄터키 주로 가서 잡화상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듀본은 부채를 갚지 못해 잠시 동안 감옥 신세까지 져야 했습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어린 두 딸이 숨지고 말았습니다. 실의에 빠져 이곳 저곳을 전전하던 오듀본은 남부인 뉴올리언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기서 부인 루시는 가정교사로 일하고, 오듀본은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새를 그리는 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듀본은 틈만 나면 늪지대, 삼림, 야생 지역 등을 돌아다니며 각종 새를 관찰하고 그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때로는 원주민 인디언들을 만나기도 하고, 도적에게 쫓기기도 하고, 열병에도 걸리는 등, 온갖 난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견디며 30여 년간 그린 많은 그림들은 살아 있는 것 같은 섬세함과 생동감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오듀본은 차츰 화가로서, 또 생태학자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생태학자이자 탐험가, 조류화가인 존 오듀본의 그림을 담은 화첩.

1824년을 전후해 오듀본은 자신의 그림을 책으로 펴낼 출판사를 찾았습니다. 실물 크기로 새를 그린 오듀본은  책도 그 크기 대로 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는 그런 책을 내수 있는 출판사가 없었고, 관심 있는 출판사도 없었습니다. 

오듀본은 자신의 그림을 가능한 한 정밀하게 인쇄할 수 있는 출판사를 찾아 영국으로 갔습니다.  오듀본은 우선 자신의 그림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 전시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좋은 반응이 나왔습니다.  숫가락 두루미, 흰머리 독수리, 캐롤라이나 앵무새, 큰 부리 바다오리 등 신기한 새와 뛰어난 그림 솜씨, 아메리카 개척지의 이야기를 곁들인 전시회는 관람객들을 완전히 매료시켰습니다.

전시회가 성공하자 그의 그림을 출판하겠다는 업체가 나타났습니다. 런던의 하벨 앤 손 출판사였습니다.  드디어 400백장이 넘는 그림이 들어간 첫 번째 책 ‘아메리카의 새들’이 출간됐습니다.  가로1 미터에 세로가 66 센티미터, 워낙 커서 큰 책상 위에 펼쳐놓고 봐야 하는 책이었습니다. 그의 네 권 짜리 시리즈는1827년부터 1838년까지 사이에 차례 차례 발행됐습니다. 전질이 나오기까지 11년이 걸린 것입니다. 

책과 함께 부록으로 조류학 전기도 나왔습니다. 이 부록은 책에 실려 있는 각 새들의 생태적 특징과 습성, 그리고 오듀본 자신의 탐험 기록이 담겼습니다. 

오듀본은 이 책에 이어 1839년에는 ‘북 아메리카 조류의 개요’를 펴냈습니다. 이 책은 그림과 함께 기록한 해설로 조류 해부학과 생태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진화 학자인 찰스 다윈도 그의 유명한 저서 ‘종의 기원’에서 세 차례나 오듀본의 관찰 결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이 책은 미술책으로서도 위대한 작품집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책이 나오자 영국의 조지 4세 국왕과 미국의 앤드류 잭슨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큰 찬사를 보냈습니다. 

오듀본은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추대됐습니다.  명성과 물질적 여유를 얻은 오듀본은 미국 뉴욕 맨하탄 북부의 허드슨 강가에 커다란 저택을 마련하고 가족을 그곳으로 옮겼습니다. 오듀본은 그곳에서 ‘아메리카의 새들’의 소책자를 편집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오듀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1843년에는 미조리 강으로 가서 포유류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그의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아들 존 우드하우스 오듀본이 그림을 그리고 친구인 존 바크만 신부와 다른 아들들이 함께 출판을 추진했습니다. 새로운 책 ‘북 아메리카의 포유류’는 1848년 세상에 나왔습니다. 

오듀본은 1851년 1월 27일 뉴욕의 자택에서 6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떠나갔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위대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해 1886년 최초의 조류 보호협회가 설립됐습니다. 이 조직은 1905년 전국 오듀본 소사이어티로 발전했습니다. 이 기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조류 보호 기구이며,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 있는 자연보호 단체의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오듀본의 그림이나 초기의 책자는 오늘날 보물 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2018년 뉴욕의 미술품 경매상 소더비 경매에서는  ‘아메리카의 새들’ 한 질이 965만 달러에 낙찰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0년 같은 경매장에서 무려 1천 27만 달러에 팔린 이래 사상 두번째 경매가였습니다. 이 외에도 그의 그림은 크기와 주제에 따라 한 작품에 몇 천 달러에서 몇 만 달러를 홋가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오늘날은 오듀본의 노예 소유와 유색인종에 대한 그의 인식도 일부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술과 조류학에 끼친 영향은 결코 가볍게 볼수 없는 역사적 공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