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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회화의 개념을 바꾸어 놓은 화가, 잭슨 폴락 


[인물 아메리카] 회화의 개념을 바꾸어 놓은 화가, 잭슨 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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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는 추상표현주의 라는 미술 형식으로 서양미술사에 새로운 장을 연 잭슨 폴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0세기까지 대부분의 회화는 사실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 잭슨 폴락과 같은 화가들은 주제를 표현하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잭슨 폴락도 처음에는 사람이나 동물을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른바 추상화라는 완전히 다른 예술 운동을 창조했습니다.

추상화란 그림 속 주제를 보이는대로 그리지 않고 그 주제가 갖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성질을 상징하는 색갈과 모양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폴락의 작품 속에는 거의 대부분 그 안에 있는 것이 사람인지 풍경인지 알수 없습니다. 대신 넓은 화폭이 여러 가지 색갈로 가득차 있습니다.

폴락이 처음부터 혁명적인 추상화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그림을 그려오면서 그같은 화풍을 만들어 냈고 결국 새로운 세계를 연 작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잭슨 폴락은 1912년 미국 서부 와이오밍 (Wyoming)주 코디 (Cody)에서 태어났습니다. 그후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에서 여러 해를 살았습니다. 폴락은 나중에 서부의 광활한 곳에서 살았던 경험이 대형 그림을 그리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1930년 그는 뉴욕 시로 옮겨 아트 스튜던츠 리그(Art Students League)라는 미술학교에서 재능을 연마했습니다. 폴락은 토머스 하트 벤튼 (Thomas Hart Benton) 선생 밑에서 약 2년 동안 그림을 그렸습니다. 벤튼은 미국 인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 영향으로 폴락도 처음 얼마 동안은 선생의 화풍과 같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차츰 전통적인 방식의 그림으로부터 분리돼 그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착시켜 나갔습니다.

폴락의 작품은 다른 영향도 받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대형 벽화를 그리는 멕시코 화가들과의 교류였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1930년대 미국 뉴욕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폴락은 그들이 벽화 그리는 것을 직접 볼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여러가지 기법과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화면이 크다는 것, 물감을 자유롭게 쓴 다는 것, 그리고 옛것을 존중하고 새로운 전통을 만든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폴락은 스페인 작가 미로에게서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미로는 초현실주의 파에 속하는 작가였습니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이 꿈을 꾸는 마음의 영역을 조종한다고 믿는 주의입니다. 폴락도 무의식적인 마음이 예술을 창조하는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예술가들의 생각에 동의했습니다.

그는 또 20대 후반에 우울증, 알콜 중독 등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결국 정신 치료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알게된 인간과 감정의 관계도 폴락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1944년 폴락은 또 한사람의 추상화가인 리 크래스너 (Lee Krasner)와 결혼했습니다. 그 다음 해 이들 부부는 뉴욕 주 롱 아일랜드에 있는 작은 도시 이스트 햄튼으로 이주했습니다. 시골 분위기가 있는 이곳에서 이들은 자연을 즐기며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습니다.

집 옆에는 커다란 스투디오를 짓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폴락이 유명해 진 것은 여기서 만들어진 작품들로부터 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잭슨 폴락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몸을 많이 움직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행동으로 그린다’ 라는 뜻으로 Action Painting이라는 말로도 불리웠습니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화판을 앞에 세워놓고 그리기도 하고 데스크에 올려놓고 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폴락은 대형 캔버스를 방 바닥에 펼쳐놓고, 화폭의 사방을 돌아다니며 색갈을 입힙니다. 액체 물감을 캔버스에 붓기도 하고 뿌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물감을 떨어뜨리는 비법은 그의 작품을 매우 강렬하게 느끼게 합니다.

그의 그림은 휘어진 선, 모양, 색갈이 뒤엉켜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그가 팔을 어떻게 움직이며 그렸는지 알수 있게 됩니다. 또 그가 몸을 캔버스 위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알수 있습니다. 폴락의 그림 그리는 과정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입니다.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잭슨 폴락은 그리기 전에 어떻게 그려야 되겠다는 것을 구상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화가들은 본화를 그리기 전에 작은 사이즈로 스케치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폴락은 빈 캔버스에 물감을 직접 칠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그는 즉흥적인 사고와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폴락은 가장 맞는 색상과 선을 신중한 몸 놀림으로 조화시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그의 작품이 함부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할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신중한 콘트롤을 거쳐 완성됩니다.

잭슨 폴락은 1999년 영국 BBC 방송 제작 영화에서 자신의 기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가끔씩 붓을 사용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자주 쓰는 것은 막대입니다. 어떤 때는 물감을 캔버스에 그냥 붓기도 합니다. 물감을 흘리며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색상을 입히는 과정은 필요에 따라 자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나는 그림의 주제를 그 장면대로 표현하기 보다는 느낌을 표현하려 하죠.”

폴락은 언젠가 왜 그림 속에 무엇이 있는 지 알수 있게 그리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폴락은 만약 당신이 꽃을 보고 싶다면, 꽃의 실물을 보면 된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건, 밖에 드러난 모양이 아니라 그것이 풍기는 느낌이나 감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폴락의 작품은 찬사도 받고 비판도 받았습니다. 1940년대 중반 그의 그림은 여러 유명 화랑에서 전시됐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폴락은 물감을 흘리는 방식의 완전한 추상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1950년에 가서야 사람들은 그러한 작품을 뉴욕에 있는 베티 파슨스 갤러리(Betty Parson's Gallery)에서 볼수 있었습니다.

어떤 미술 평론가들은 그 전시가 그해 최우수 미술전의 하나이며, 폴락은 미국 최고의 화가 중 한명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비평가는 그의 그림이 어떤 기법도 존재하지 않은 완전한 무질서와 혼란이라고 혹평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추상화를 보면 이것이 무슨 미술이냐라고 의아해 합니다.

오늘날 폴락의 작품은 한점 당 수백만 달러를 홋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전시회에서는 단 한점밖에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

작품은 유명한 라벤더 안개, 즉 Lavender Mist였습니다. 폴락의 작품이 어떤 것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현재 워싱턴 디시의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 소장돼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가로 거의 3미터, 세로 2미터가 넘는 큰 것으로, 흰색, 검은 색, 빨강, 노랑, 회색, 갈색, 핑크색의 작은 강들이 화면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이들 색상과 선은 시각적 에너지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흥미있는 것은 이 그림 속에는 라벤더 꽃도 없고, 자주색도 보이지 않습니다. 폴락의 지인들은 여러가지 다른 색갈들이 캔바스 위에서 라벤더의 안개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폴락은 보는 사람들이 그림을 제목과 연계시켜 해석하려 하는 것을 원치 않아, 보통 그림의 제목을 숫자와 그린 날짜로 붙였습다. 라벤더 미스트 처럼 잭슨 폴락의 그림은 회화에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습니다.

폴락은 1956년 자동차 사고로 4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잭슨 폴락이 부인 리 크라스너와 함께 살던 뉴욕 주 이스트 햄턴에 있는 그의 집은 현재 박물관이 됐습니다. 이곳에는 그가 살던 방과 함께 커다란 화실이 보존돼 있습니다. 화실 바닥에는 여러 해 동안 그가 물감을 쏟아 부은 자욱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바닥이 그대로 하나의 작품처럼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박물관이 하나의 미국 문화재라고 말합니다. 이곳이야말로 추상화라는 새로운 미술을 세상에 소개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폴락은 전통적인 규칙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제시한 미국 현대 미술의 창조자였습니다. 잭슨 폴락을 시작으로 미국이 서양 미술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됐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중요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화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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