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베이브 루스의 신화를 깬 홈런 왕, 행크 에런

2021.2.5 1: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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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베이브 루스의 신화를 깬 홈런 왕, 행크 에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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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행크 에런 선수가 1974월 4월 8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새 통산홈런 기록을 세운 후 축하받고 있다.

지난 1월 22일 미국의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은 미국 프로 야구계 또 한 사람의 영웅 행크 애런이 타계한 소식을 긴급 뉴스로 보도했습니다. 

가난과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성취를 이루어 낸 인물 중 한 사람인 그는 올해 86세로 고향인 애틀랜타에서 타계했습니다.

언론들은 그가 오랜 세월 메이저 리그 야구의 홈런 왕이었다며, 미국 남부 출신으로 민권운동가이기도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노-야구 팬들은 물론, 지미 카터,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등 전현직 대통령들도 SNS를 통해 애런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행크 애런, 본명 헨리 루이스 에런(Henry Louis Aaron)은 미국 야구의 전설 베이브 루스가 세운 714개의 홈런 기록을 처음으로 깨뜨린 선수였고, 그로부터 33년 동안이나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로 군림한 홈런 왕이었습니다. 

1954년 20세때 밀워키 브루어즈 팀에 입단한 그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팀을 오가며1976년 은퇴할 때까지 총 755개의 홈런으로 전설적인 홈런 왕 베이브 루스를 훨씬 능가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통산2,297 타점과 총루타도 6,856개로 역대 1위에 올라 있습니다. 통산 최다 안타는 3,771개로,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을 치는 힘이 엄청나게 강했던 그에게는 커다란 망치를 뜻하는 Hammer" 또는  "Hammerin' Hank라는 별명도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홈런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뛰어난 야구의 천재였습니다.

에런은 무려 25차례나 올스타에 선정됐고, 내셔널 리그의 최우수 선수, 즉 MVP와, 두 차례의 타격왕도 차지했습니다. 골드글러브 상도 3차례나 받았습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1957년 뉴욕 앵키즈와 월드 시리즈에서 대결했을 때 에런은 애틀랜타에 챔피언을 안겨준 견인차였습니다.

행크 애런은 1934년, 2월 5일 앨라바마 주 모바일이라는 가난한 흑인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허버트 애런과 어머니 에스텔라 사이에서 난 8남매 중 세째였습니다. 아버지는 주점을 운영했습니다. 애런은 어려서부터 공부보다는 야구와 미식 축구 등 스포츠를 훨씬 좋아했습니다.

1951년 18살의 에런은 학교를 그만두고 흑인 야구 연맹, (Negro American League)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인디애나폴리스 클라운스 (Indianapolis Clowns)팀 선수가 됐습니다. 야구 재능이 뛰어난 그는 높은 타율을 보이며, 소속 팀이 리그의 챔피언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1954년, 밀워키 브루어즈의 외야수가, 봄 훈련중 부상을 입어 자리가 비자, 애런은 그 자리를 채우면서 나이 20세에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습니다. 첫해 홈런 13개를 치며 순탄하게 출발한 에런은, 다음해인 1955년 홈런 27개, 106 득점타, 타율 3할 2푼 8리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1956년 안타 상을 받은 에런은 1957년 시즌에 내셔널 리그의 MVP상, 44개의 홈런, 132개 득점타, 타율 3할 2푼 2리로, 거의 3관왕에 다가가는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후 약 15년 동안 에런은 매 시즌 30개에서 40개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나이 39세때인 1973년에도 그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쳐 40개의 홈런을 치고, 통산 713개의 홈런 행진을 기록했습니다.  전설의 베이브 루스가 남긴 기록에 단 한개가 모자라는 숫자였습니다. 

에런이 베이브 루스의 홈런기록 714개에 접근하자 야구의 세계는 다시 한번 인종 차별의 악순환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브레이브스 야구팀의 사무실에는 에런 앞으로 매일 3천통이 넘는 편지가 쏟아졌습니다. 간혹 에런에게 축하를 보내는 편지가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증오와 살해 위협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납치하겠다는 위협도 있었습니다.

에런은 폭도들이 보낸 편지를 뜯어볼 수가 없어, FBI와 같은 수사기관원이 열어봐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1974년 4월 8일,  밀워키 브루어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스로 옮긴 후 9번째 시즌 경기.  헨리 루이스 에런은, 로스 엔젤레스 다저스의 투수 앨 다우닝과 맛섰습니다.

에런은 다우닝이 던진 패스트 볼을 받아쳤습니다. 공은 왼쪽 펜스를 넘어갔습니다. 드디어 715번째의 홈런을 터뜨린 것입니다. 베이브 루스의 신화를 깬 순간이었습니다.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찬 5만여명의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중계방송을 하던 아나운서는 경이로운 순간이라며 야구의 우상이 세운 기록을 흑인이 깨뜨려, 전 관중의 기립 박수와 환호를 받고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1974년 시즌을 마감한 에런은 다시 밀워키 브루어즈로 돌아갔습니다.  에런은 그후 2년을 더 현역으로 뛴다음 1976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빛나는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통산 755홈런 기록은 2007년 샌프란시스코 팀의 배리 본즈에 의해 깨졌습니다. 본즈의 홈런은 764개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홈런은 약물 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본즈보다 에런을 ‘진정한 홈런왕’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에런은 1982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습니다.  에런은 헌정식에서 자신의 성공이 혼자 한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택이었다며 겸손해 했습니다. 

애틀랜타 브레이스와 밀워키 브루어스는 애런의 등번호 44번을 영구결번으로 만들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1999년 애런의 기록 경신 25주년을 기념해 '행크 아론상'을 제정했습니다. 양 리그는 매년 가장 두드러진 타격을 보여준 선수에게 이 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경기를 한후 행크 에런은 애틀랜타에서 여러 개의 자동차 매장을 갖고 사업에 전념하는 한편 흑인 젊은이들을 위한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흑인 의과대학에 거액을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999년 2월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선단체 행사에 참석한 행크 에런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대통령은 에런에게 대통령 시민 메달을 수여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에런은 말년에 자신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어 놓는데 기여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헨리 루이스 에런(Henry Louis Aaron)은 갔지만 애틀랜타의 야구장 풀턴 카운티 스타디움 자리에는 역사적인 그의 홈런 공이 넘어간 곳에 715번 숫자도 선명한 기념비가 여전히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