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노숙자에서 자선사업가가 된 뉴욕 피자 챔피언...양조장으로 변신한 성당

2020.2.25 오전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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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노숙자에서 자선사업가가 된 뉴욕 피자 챔피언...양조장으로 변신한 성당
방송 시작 시간 오전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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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이민자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찾는 곳이 바로 미 동부의 대도시 뉴욕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 산업이 공존하는 뉴욕은 인생의 새로운 기회와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정말 꿈과 같은 도시인데요.  가난한 이민자 출신으로 한때 뉴욕 거리를 전전하는 노숙자로 살았지만, 지금은 백만장자 사업가이자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돕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러 뉴욕으로 가보시죠. 

피자를 만들고 있는 하키 아크데니즈 씨.

“첫 번째 이야기, 노숙자에서 자선사업가가 된 뉴욕의 피자 챔피언”

[현장음:뉴욕 거리]

바쁘게 오가는 차와 사람들로 분주한 뉴욕 도심의 거리. 이곳은 쿠르드족 출신의 이민자 하키 아크데니즈 씨의 활동무대이기도 합니다. 유명 사업가인 하키 씨는 큰 집과 좋은 차를 충분히 소유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녹취: 하키 아크데니즈] “저의 꿈이 돈이 아닙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제 꿈이죠. 얼마나 많은 걸 갖고 있는지는 상관없어요. 전 사실 검소하고 단순한 사람입니다.  제가 지금 차고 있는 이 시계도 100달러 정도 밖에 안하는 거에요. 전 사실 수천, 수만 달러하는 롤렉스 시계도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안 하는 거죠.”

올해 39살인 하키 씨는 쿠르드족 가정의 17남매 가운데 한 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10대 때 캐나다로 왔고, 더 나은 삶을 위해 2001년 뉴욕으로 향했는데요. 하지만 뉴욕에 오면서 고생이 시작됐습니다.  

[녹취: 하키 아크데니즈] “전 뉴욕에 온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 바로 여기 도착한 날이에요. 뉴욕 공항에 도착하면 미국인 친구가 마중을 나와서 도와주기로 했는데,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죠. 전화를 했더니 전화기도 꺼져있더군요.”

하키 씨는 결국 싸구려 모텔과 기차역 등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거리에서 지내다가 ‘바우어리 미션’이라는 노숙자 쉼터에 들어가게 됐는데요. 하키 씨는 거기서 3달을 머물렀습니다. 

[녹취: 하키 아크데니즈] “제 방에선 노숙자 20~30명 정도가 함께 지냈습니다. 사람들은 노숙자들이 쉼터에 들어가면 생활이 편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또 쉼터에서 공동생활하는 것이 썩 자유롭지도 않았어요.”

하키 씨는 이후 뉴욕 시내의 한 피자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바닥 설거지부터 시작해 피자를 자르기,  피자굽기까지 차근차근 배워나갔죠. 하키 씨는 하루 19시간씩 일하면서 어떻게든 돈을 아끼려고 노력했고, 몇 년 후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직접 가게를 열었는데요. 시내 수백 군데 달하는 피자 가게들과 경쟁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피자 만들기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하게 됐는데요. 피자 도우라고 하는 둥근 빵에 불을 붙여 돌리는 현란한 기술로 챔피언 즉 피자 만들기 일인자에 오른 겁니다. 하키 씨 우승 이야기와 사진이 지역 잡지에 표지로 실리게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알고는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녹취: 하키 아크데니즈] “잡지 표지에 제 사진이 실리면서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저희 직원들도 다 놀랬죠. 잡지책을 가지고 온 손님들이 가게 밖에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손님들은 계속 늘어났고 얼마 후 두 번째 가게를 열 수 있었습니다”

가게 이름은 자신의 별명에서 따 ‘챔피언 피자’라고 붙였는데요. 현재 챔피언 피자는 14개 지점에 달합니다. 하키 씨는 유엔(UN)에서 연설하기도 했고요. 하키 씨의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따르는 사람은 400만 명에 달합니다. 그리고 하키 씨가 거리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영상의 조회 수는 4억 회를 넘겼습니다. 

자신이 뉴욕 시내 노숙자였던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는 하키 씨는 매주 수요일, 거리로  나와 노숙자들에게 피자 배식을 하는 등 노숙자 돕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녹취: 하키 아크데니즈] “누구나 아름다운 미소를 가지고 있죠. 중요한 건 이 미소를 잃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노숙자들을 도우면서 늘 웃으라고 말합니다.  더 큰 걸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노숙자분들이 미소를 한번 지어주거나 따뜻하게 안아주면 그걸로 족합니다.”

이제는 피자 사업가보다는 자선 사업가로 더 유명한 하키 씨. 어려운 이들을 더 많이 돕기 위해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요. 노숙자들이 안전하게 생활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6층짜리 노숙자 쉼터를 짓는 거라고 합니다. 노숙자에서 백만장자를 이룬 하키 씨의 아메리칸드림은 이렇게 더 아름다운 꿈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술집으로 재탄생된 성당.

“두 번째 이야기, 술집으로 변신한 100년 된 성당”  

미국에는 수많은 교회와 성당이 있습니다. 또 매년 4천 개~5천 개의 교회가 새로 문을 여는데요. 그만큼, 사라지는 교회도 많습니다. 교회가 문을 닫는 이유는 대부분 경제적인 부분 대부분인데요. 이렇게 팔린 교회는 아파트나 책 가게, 박물관 등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런데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가면 특이하게도, 맥주 공장 겸 술집이 된 가톨릭 성당이 있습니다. 
 
피츠버그 거리에 고풍스럽게 자리 잡은 성당.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건물답게 웅장함을 뽐냅니다. 그런데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일반적인 성당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회중석 대신 수많은 탁자와 의자들이 채워져 있고, 고해실로 쓰였던 곳은 술을 마시는 바(bar)로, 성당 앞 제단은 맥주 양조장이 돼 있습니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세례자 성요한 성당’이었던 이곳은 이제 ‘처치 브루 웍스(Church Brew Works)’, 즉 성당 양조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활기를 보였던 지역 경제가 쇠락하면서 사람들이 지역을 떠나게 됐고 남아 있는 교구 성도로는 성당을 유지하기 어려워 성당의 문을 닫게 됐다고 하네요.

[녹취: 션 케이시] “이 성당은 1902년에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20여 년 전에 성당이 문을 닫으면서 건물이 매매 시장에 나온 겁니다. 저는 이 건물이 아주 좋아 보였어요. 이 건물로 뭔가 해보고 싶었죠. 유럽 스타일의 맥주를 파는 술집이 들어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게 주인인 션 케이시 씨는 그래서 교회 건물을 매입해 술집으로 변신시켰습니다. 가장 힘든 작업은 성당 앞 제단에 6개의 대형 양조 탱크를 설치하는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양조 전문가인 댄 야낼씨는 현재 이 양조 시설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녹취: 댄 야넬] “우리 양조장은 한 번에 20배럴 그러니까 2천300ℓ가 넘는 맥주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맥주 수천 박스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런데 하루에 여러 차례 양조를 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면 4천ℓ가 훨씬 넘는 맥주를 생산할 수도 있어요.”

야넬 씨에겐 양조 작업이 성스러운 의식과 같다고 했습니다. 

[녹취: 댄 야넬] “제게 맥주 양조는 묵상의 시간과 흡사합니다. 무슨 일이 있든, 어떤 골치 아픈 일이 생기든 일단 여기 오면 다 잊고 양조에 집중합니다. 곡물을 뜨거운 물에 붓고 양조 과정을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최고의 맥주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 양조 과정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성당 양조장에선 특제 맥주도 많이 생산하는데요. 국제적인 맥주 품질 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술집을 찾는 이유가 단순히 맥주 맛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해가 질 무렵,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석양을 보며 맥주를 마시면 기가 막힌다는 사람부터, 성당 특유의 높은 천장 등 술집 분위기가 정말 독특해서 좋다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손님은 이렇게 사람들이 성당 술집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고 했습니다. 

[녹취: 손님] “사실 처음 이 가게에 왔을 땐, 성당에서 술을 마신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곳은 성당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마실 수 있게 됐어요”

술집 주인인 케이시 씨는 자신의 자녀들도 가업을 이어받아 계속 성당 술집을 운영하길 바란다고 했는데요. 더는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한 성당은 아닐지라도, 역사적인 술집으로 대를 이어가길 축복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