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스페셜올림픽을 창설한 케네디 가의 여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2020.5.8 3:06 오전
라디오
[인물 아메리카] 스페셜올림픽을 창설한 케네디 가의 여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방송 시작 시간 오전 3:06
방송이 끝났습니다

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스페셜올림픽을 창설한 케네디 가의 여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가 지난 2004년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스페셜올림픽 본부 사무실에서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다.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는 스페셜올림픽(Special Olympics)을 창설해 전 세계 지적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여성입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1921년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조셉 케네디와 어머니 로즈 케네디 사이에서 태어난 10남매 중  6번째였습니다. 위로 오빠 존 F. 케네디 대통령, 아래로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과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있는 미국 굴지의 정치가 집안입니다.  

결혼 전 이름은 유니스 케네디였으나, 1953년에 서전트 슈라이버와 결혼해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로 이름이 바뀌게 됐습니다. 유니스는 캘리포니아주의 명문 스탠퍼드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다음 사회복지사(social worker) 등으로 일했습니다. 

유니스 슈라이버 여사가 장애인 돕기에  나서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케네디가에서는 전사한 큰 아들 조셉 케네디 주니어를 기리기 위해  사회복지를 위한 ‘조셉 P. 케네디 주니어재단 (Joseph P. Kennedy Junior Foundation)’을 창설했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1957년 이 재단의 부회장직을 맡게 되면서부터 지적 장애인들을 돕고,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적극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슈라이버 여사가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는 가정적인 요소도 있었습니다. 슈라이버 여사의 언니이자 존 F. 케네디의 바로 아래 동생인 로즈마리 케네디는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로즈메리가 20살 때 그의 아버지는 딸의 뇌 수술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수술은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로즈메리는 완전한 불구가 됐습니다. 로즈메리는 사망할 때까지 중증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로즈메리를 특히 불쌍히 여긴 슈라이버 여사는 언니를 보살피는데 많은 애를 썼습니다.  

슈라이버 여사가 잡지에 실은 가족 이야기도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여사는 1962년 시사잡지인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에 ‘지적 장애인의 희망’이란 글을 게재했습니다. 이 글에서 슈라이버 여사는 비밀로 해 왔던 장애인 언니 로즈메리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지적 장애인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을 신랄히 지적했습니다. 

장애아가 있는 가정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사회적 지원이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고발하면서, 장애인들도 쓸모 있는 시민으로 대우를 받도록 특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강조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슈라이버 여사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지적 장애인들은 아무 잘못도 없고, 죄를 범한 것도 아니고 어떤 부당한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 이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희생자들입니다. 이들은 오직 다르다는 것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적 장애인과 발달 장애인들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는 슈라이버 여사의 노력은 다행히 오빠나 동생들이 정부 요직에 있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오빠인 케네디 대통령을 설득해 국립보건원(NIH)에 ‘국립아동보건인간개발연구소’가 설치되도록 했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또 워싱턴과 인접한 메릴랜드주에 지적 장애아들을 위한 여름 캠프를 열었습니다. 여름 동안에 장애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과 스포츠 활동을 하는 일종의 여름 학교였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정상적인 아이들도 이곳에 참여하는 걸 환영했습니다. 

지적 장애, 발달 장애인들의 운동 경기, 즉 스페셜올림픽(Special Olympics)은 이런 활동에서 싻트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까지도 지적 장애인들은 운동경기를 해서는 안 되는, 그리고 할 수도 없는 사람들로 치부됐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참여하는  스포츠 대회를 연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스페셜올림픽은 ‘조셉 P. 케네디 주니어 재단’의 지원을 받아 추진됐습니다.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가 지난 197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국제스페셜올림픽에서 육상경기에서 우승한 아도니스 브라운 선수에게 금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드디어 1968년 7월 20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첫 스페셜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첫 대회에는 미국 26개 주와 캐나다에서 약 천명의 선수들이 참가했습니다. 개막식에서 슈라이버 여사는 장애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스타입니다. 세계가 여러분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출전함으로써 여러분은 모든 나라, 모든 도시, 모든 마을에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희망의 메시지이며 승리의 메시지입니다.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그 자부심을 부모님께 그리고 여러분 나라에 보여주십시오.”  

이들은 육상, 수영, 하키 등 경기를 벌였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스페셜올림픽을 통해 지적 장애,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뛰어난 체육인이기도 하다는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스페셜올림픽은 같은 해 ‘Special Olympic Incorporated’라는 비영리 법인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프랑스에서도 장애아를 갖고 있는 가정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활동은 1970년대와 80년대 스페셜올림픽이 대규모 국제적인 행사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늘날 스페셜올림픽은 170여 개 국가에서 예선전에 나서는 지적 장애인들, 그 가족, 코치 등570여만 명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지적 장애인 체육행사가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장애인 사업을 이루어 놓은 슈라이버 여사지만, 세계 1억8천만 명에 달하는 지적 장애인들이 겪는 편견과 억압을 타파하기 위해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스페셜올림픽 외에도 사회 개혁을 위한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와 워싱턴 D.C.의 조지타운대학교에는 의학 윤리 센터를 개설했습니다. 또 ‘Community for Caring’이라는 제도도 만들었습니다.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의 지적 장애 학생들의 인성 교육에 중점을 두는 교육 계획입니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1,200여 학교에서 이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권리, 낙태 반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 부족한 면을 개선하려는 많은 노력으로 미국 민간인 최고의 상인 대통령 자유메달,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네르 훈장 등 국내와 해외에서 많은 표창을  받았습니다. 

슈라이버 여사는 2009년에 88세를 일기로 숨졌습니다. 바락 오바마 대통령은 슈라이버 여사가 ‘어떤 지적, 신체적 장애도 인간의 정신적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케네디가에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미국 은화에 얼굴이 새겨진 최초의 여성,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는 전 세계 수많은 지적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간 이 시대의 빛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