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 어니스트 헤밍웨이 (2)

2020.8.28 12: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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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 어니스트 헤밍웨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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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20세기 미국 문화의 거봉,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이야기입니다.

1956년 10월 스페인 마드리드를 방문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헤밍웨이는   여성잡지 보그의 유럽 편집장 폴린 파이퍼와 재혼했습니다. 파이퍼는 미국 아칸소주의 부호 집안 딸이었고, 로마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헤밍웨이는 결혼 전 가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이들은1928년 미국으로 돌아와 남부 플로리다주에 있는 키웨스트(Key West)라는 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헤밍웨이의 키웨스트 생활은 행복했습니다. 아침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낚시를 했습니다. 저녁이면 밖으로 나가 술을 마셨습니다. 이때  나온 단편집이  ‘여자가 없는 남자들(Men Without Women)’이었습니다.  

헤밍웨이의 책이 새로 나온다는 건 독자들에게는 커다란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속에 있는 단편 ‘살인자(The Killers)’는 너무 폭력적이라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헤밍웨이가 총잡이, 군인, 싸움꾼, 주정뱅이 등의 이야기만 쓴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키웨스트에 있는 동안 헤밍웨이는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오직 아버지뿐이었다”며 슬퍼했습니다. 그 후 헤밍웨이의 글에는 전에 없던 슬픔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 새로운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가 나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군에서 싸운 미국 군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군인은 영국 출신 간호사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여인은 아이를 낳다 숨지고 맙니다. 이야기 속의 장면들은 헤밍웨이가 이탈리아 전선에서 군 트럭을 몰던 때의 경험을 살린 것이었습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헤밍웨이의 수입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헤밍웨이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중 한 곳이 몹시도 가보고 싶어 했던 스페인이었습니다. 헤밍웨이는 “스페인에서 본 것, 그곳의 소리, 냄새 등 모든 것을 언어로 채색하고 싶었다. 그중 어떤 것이라도 진실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은 스페인의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나온 것이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 스페인의 전통 스포츠인 투우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헤밍웨이는 글 쓰는 것이 예술이듯 투우도 예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투우야말로 자신이 항상 마음에 두어 왔던 진정한 남성의 용기, 그런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956년 5월 페루에서의 낚시 여행에서 직접 잡은 대형 물고기와 기념사진을 찍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아프리카에도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냥을 많이 했습니다. 헤밍웨이는 아프리카 이야기들을 담은 단편집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The Green Hills of Africa)’을 발표했습니다. 그중 하나인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은 헤밍웨이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예술을 돈 때문에 배반하고 진정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 한 작가의 이야기인데, 이 소설은 사실 헤밍웨이 자신의 고민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헤밍웨이는 ‘북아메리카신문연맹(NANA)’ 통신의 종군 기자로 또 스페인에 가게 됐습니다. 하루는 다른 두 기자와 함께 전선에서 가까운 곳을 운전하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차량은 두 개의 백기를 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반군은 그 차량이 적군의 장교를 태우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총탄을 퍼부었습니다. 헤밍웨이는 구사일생으로 죽음을 면했습니다.    

스페인을 다녀와서 내놓은 작품은 희곡인 ‘제5열(The Fifth Column)’과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가 있습니다. 이 소설은 파시스트에 저항하며 싸우는 한 미국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40년에 책이 나오자 불과 몇 개월 동안 50만 권이나 팔릴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대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에 폴린과의 두 번째 결혼도 종말을 맞고 또 다른 여자가 등장합니다. 마사 젤혼. 기자 겸 작가입니다. 두 사람은 스페인에서 만났습니다. 이들은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쿠바로 가서 수도 아바나 근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무렵부터 헤밍웨이는 변하고 있었습니다. 헤밍웨이는 무엇이든 자기 말이 맞는다고 주장해 부인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마사는 그와 떨어져 있기 위해 장기 여행을 자주 떠났고 헤밍웨이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헤밍웨이는 또다시 종군 기자로 유럽 전선에 파견됐습니다. 헤밍웨이는 영국에서 기사를 썼고, 유럽 침공작전, 즉 노르망디 상륙 작전 현장에도 직접 가서 취재했습니다. 

전쟁 중 헤밍웨이는 또 한 사람의 여기자와 가까워졌습니다. 시사 주간지 타임 기자 메리 왈쉬였습니다. 헤밍웨이는 1945년 마사와 정식 이혼을 한 다음 메리와 결혼했습니다.  

헤밍웨이가 마지막 역작 ‘노인과 바다’를 쓰기 시작한 건 전쟁이 끝난 다음입니다. 이 작품은 자연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쿠바의 한 늙은 어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헤밍웨이는 “나는 어부의 경험이 독자들의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정말로 실감 나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배를 타고 나간 노인이 여러 날 만에 엄청나게 크고 힘센 고기를 낚아 끌고 오는데, 상어 떼들에게 다 뜯기고 뼈만 남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1954년 헤밍웨이는 이 소설로 노벨 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몸이 아파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다시는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절감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설 속 인물처럼 글 쓰는 재주를 돈을 버는 데 팔아먹은 죄책감도 컸습니다. 결국 1961년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아이다호에 있는 집에서 스스로 엽총을 쏘아 61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남긴중에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살던 데서 머물고 떠나고… 신뢰를 하고 불신을 하고…더 이상 믿지를 않고 또다시 믿고…계절이 바뀌는 것을 주시하고…보트를 타고 나아가고…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또 그것이 멈추는 것을 보고…빗소리를 듣고…그리고 어디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을 헤밍웨이는 사랑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