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20세기 미국 문학의 거봉, 어니스트 헤밍웨이 (1)

2020.8.21 1:22 오후
라디오
[인물 아메리카] 20세기 미국 문학의 거봉, 어니스트 헤밍웨이 (1)
방송 시작 시간
This program has ended and is being processed for playback.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20세기 미국 문화의 거봉,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이야기입니다.

1960년 11월 스페인 마드리드를 방문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899년 대도시 시카고 근교 오크 팍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안정된 가정에서 자란 어니스트는 고등학교 때  학교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니스트는 당시 유명한 스포츠 기자 링 랜더의 글이 좋아 자신도 그처럼 쓰려고 노력하면서 글 쓰는 재능을 익혀갔습니다.  

헤밍웨이 가족은 여름이 되면 미시간 주에 있는 별장에 가서 지내다 오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니스트에게 낚시, 사냥, 텐트 치는 방법, 불을 피워 요리를 하는 방법 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 경험은 모두 나중에 그의 작품 세계에 반영이 됩니다. 

미국이 세계 제 1차 대전에 참전을 하자 헤밍웨이는 대학을 가지 않고 대신 군대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시력이 나빠 입대는 좌절됐습니다. 그러자 헤밍웨이는 미조리 주에 있는 캔사스 시티 스타 신문사에 기자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습니다. 헤밍웨이는 병원, 경찰서, 열차 정거장 등을 돌며 매우 활동적으로 취재를 했습니다. 

당시 신문사의 경험은 헤밍웨이의 문장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신문사는 기자들에게 문장을 짧게 쓰라고 요구했습니다. 또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안에 들어있는 독자성을 찾아 내라고 강조했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두가지를 익히며 이른바 빙산 이론을 굳혔습니다. 밖으로 들어난 것은 조금이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문장 스타일입니다. 

늘 적극적인 것을 추구했던 헤밍웨이는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1차 세계 대전의 현장엘 가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9개월만에 신문사를 그만두고 적십자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에 배치돼 구급차 운전수로 일했습니다. 

헤밍웨이는 위기에 처해있을 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게 되는지를 스스로 알아보기 위해 가능한 한 최 전선까지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폭파현장에서 200개의 파편이 다리에 박히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긴급히 밀라노 육군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6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그는 부상이 아물고 전쟁이 끝나자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선에 가 있는 기간은  1년도 채 안된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경험은 헤밍웨이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고 겪을 것들을 글로 써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고 그때 경험한 것들이 작품 속에  투영됩니다.  

미국에 돌아온 헤밍웨이는 캐나다의 토론토 스타 신문 기자로 들어갔습니다. 헤밍웨이는 당시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최초의 작가로 알려진 셔우드 앤더슨을 알게 됐습니다.   헤밍웨이는 앤더슨의 글이 무척 사실적이라고 느꼈고 자신도 그렇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앤더슨은 헤밍웨이에게 글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앤더슨은 프랑스 파리에는 세계 여러 곳에서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와 있다며 그곳에 가볼 것도 권장했습니다.

헤밍웨이가  해들리 리차드와 결혼한 후 토론토 스타 지는 그를  유럽 특파원으로 발령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1921년 파리로 갔습니다. 이들은 파리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파리는 춥고 칙칙했으며 방은 좁고 물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헤밍웨이는 파리가 어떤 곳인가를 깊이 들여다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헤밍웨이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프랑스 풍습과 스포츠를 즐겼습니다. 새로운 친구들 중에는 1920년대에 파리로 온 예술가, 작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시인 에즈라 파운드, 전위작가 거트루드 스타인, 작가 스코트 핏취제랄드  등이 있었습니다. 

헤밍웨이는 온 유럽을 돌아다니며 정치, 평화회의, 국경분쟁, 스포츠, 스키, 낚시 등 다양한 기사를 썼습니다.  토론토 스타는 헤밍웨이의 보도가 마음에 들어 더 많은 기사를 보내도록 재촉했습니다.

1934년 4월 뉴욕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폴린 파이퍼.

헤밍웨이가 내 놓은 최초의 소설집은 ‘우리들의 시대에’ (In Our Time)였습니다. 이 무렵 헤밍웨이는 장편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장편으로 자신이 진지한 작가라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또 돈도 벌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태양은 다시 떠 오른다’  (The Sun Also Rises)입니다. 이 장편 소설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에 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입니다.

전쟁은 젊은이들의 꿈을 파괴했고, 그 꿈을 대신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즉각 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에도 성공했습니다. 불과 25살의 나이에 헤밍웨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됐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헤밍웨이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문장은 캔사스 시티 스타 기자 때 배운대로 짧고 설명이 없었습니다.

‘태양은 다시 떠 오른다’가 성공을 한 뒤 그는 파리에서 더 유명해졌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것이 결혼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폴린 파이퍼라는 미국 여성이 있었습니다. 여성잡지 보그의 편집인이었습니다. 헤밍웨이를 만나면서 이 여성은 헤밍웨이 부인 해들리와도 친구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