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코로나 1년, 미국 내 한인들의 이야기

2021.3.17 5:25 오전
라디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코로나 1년, 미국 내 한인 이야기
방송 시작 시간
This program has ended and is being processed for playback.

​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김현숙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세계적인 전염병 유행 사태, ‘팬데믹(Pandemic)’으로 선언한 지 1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전 세계 많은 사람이 큰 혼란을 겪었는데요. 미국 내 한인들도 팬데믹으로 인한 변화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오늘은 한인들의 코로나 극복 얘기를 들어봅니다.

전직 유치원 교사인 유니스 문 씨가 집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코로나로 학교가 된 집”

 

[현장음: 유니스 문 집]

버지니아주 버크에 거주하는 유니스 문 씨의 아침은 아이들 온라인 원격 수업을 챙기면서 시작됩니다. 유치원에 해당하는 ‘킨더’에 다니는 아들 네이선의 수업을 챙긴 후 옆방으로 옮겨 가는데요. 거기에는 초등학교 1학년인 루카스의 온라인 수업이 진행 중입니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두 아이를 챙겨준 후 1층에 내려온 문 씨. 여기엔 또 어린이집에 갈 나이의 두 아이, 조슈아와 리디아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이 두 아이의 수업은 직접 진행합니다. 

능숙하게 아이들을 지도하는 문 씨는 원래 유치원 선생님이었는데요. 1년 전 팬데믹 선언 때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녹취: 유니스 문]
“당황스럽고 무서웠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 유치원도 문을 닫게 됐어요. 자녀들도 첫째 아들이 9월에 킨더가든 가는데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려면 제가 계속 애를 봐야 하잖아요. 그런 상황이 걱정이었고. 집에 있어야 하면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걱정이 많았어요.”

문 씨가 일하던 유치원은 몇 개월 후 다시 문을 열었지만, 문 씨는 가족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대신 자신의 자녀 두 명에 다른 워킹맘의 아이들까지, 총 4명의 아이를 집에서 돌보게 됐습니다. 

직장인 엄마로 바쁜 삶을 살았던 문 씨.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문 씨의 일상은 더 바빠졌습니다. 
 
[녹취: 유니스 문]
“엄마로서 저는 밖에서 일하는 게 좋거든요.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와서  집에서 쉬웠죠. 원래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에 와서 저녁만 준비하면 되었는데 이젠 아침, 점심, 저녁을 준비해야 해서 저는 그게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청소, 아이들이 4명이니까 금방 더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순간순간 청소하고 정리하고 돌아다면서 그랬거든요.”

아이들 역시 처음엔 학교에 가지 않으니 좋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진 상황에 우울해했다고 하는데요. 유니스 씨는 본인을 위해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더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녹취: 유니스 문]
“저는 프리스쿨 선생님이라서 아이들이 이 시간을 슬픈 기억으로 남기기  싫었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뭐를 하든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고 했어요.”

유치원 교사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특별한 1년을 보낸 문 씨는 코로나 사태를 통해 이전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됐다고 했는데요.

[녹취: 유니스 문]
“가족을 더 많이 보러 갈 걸. 너무 바빴거든요. 가족들이랑 더 자주 볼 걸… 사람과의 터치가 많이 그리운  같아요. 가족들 친구들 만나서 안아주고 놀러 가고 교회에서 다 같이 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올해 9월 킨더 입학을 앞둔 5살 리디아와 조슈아도 새로운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리디아, 조슈아]
“미스 유니스 집에서 놀고 싶지만, 학교에 가고 싶어요. 친구들이랑 다시 놀고 싶어요.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요.” 
“할머니랑 같이 놀고 싶어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 놀러 갈게요!”

오토바디샵을 운영하는 김연만 씨가 자동차 정비 용품을 정리하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 위기를 기회로 삼은 자동차 정비소”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의 ‘오토 바디 월드’ 자동차 정비소. 이곳의 사장인 김연만 씨는 쉴 새 없이 자동차를 손보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1년 전 팬데믹 선언 때만 해도 자신의 삶과 정비소에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합니다. 

[녹취: 김연만]
“방송을 보고 알게 됐지만, 거기에 대한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간에 마트에 들렀는데 생필품과 소독약, 마스크 이런 것들이 동이 난 것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김 씨는 17년 동안 정비소를 운영한 사장님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데요. 군에 있는 자녀도 있다 보니 가족 걱정이 컸었다고 했습니다. 

[녹취: 김연만]
“아이들이 제일 먼저 걱정이 되었고요. 사회 생활하든, 군에 있든, 학생이든, 쓰나미가 지나간 뒤에 새롭게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제 건강보다는 부모로서 자녀들이 걱정이 됐습니다. 경제적인 걱정은 그래도 정부에서 자동차 서비스 샵은 계속 오픈하라고 지침이 와서 다행히 다른 비지니스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그렇게 심각한 위기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필수 업종으로 지정돼 사업장의 문을 열 수는 있었지만, 수입은 예전만 못했다고 합니다. 

[녹취: 김연만]
“수입은 많이 줄었죠. 반 이상 준 거 같아요. 그래도 일단 감사한 것은 같이 일하는 분들하고 생활할 수 있는 정도는 되니까 거기에 감사하고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게 답답하고 사람들하고 눈과 입을 보면서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답답한 거 같아요.”

김연만 씨는 하지만, 코로나 기간 가장 답답했던 것은 사람들과 만나지 못한 점이라고 하는데요. 공동체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들과 만나 식사하는 걸 무척 즐겼다는 김 씨.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걱정도 되지만, 코로나 사태를 통해 배운 것도 많고 무엇보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습니다. 

[녹취: 김연만]
“무덤덤해지고 서먹서먹해지고 이렇게 계속 가다가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되고... 하지만 이번 팬데믹 기간을 통해서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사람들 활동도 많아지고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새롭게 비지니스 확장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그러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종합보험사 대표인 정윤희 씨가 유리막을 사이에 둔 채 마스크를 쓰고 고객과 상담을 하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 이웃의 사랑을 깨닫게 해준 코로나”

종합보험사 대표 정윤희 씨가 사무실에서 고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보험 설계사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상담. 그런데 정 씨와 고객 앞에는 투명막이 세워져 있고 서로 마스크를 쓴 채 멀찌감치 앉아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조심스럽게 고객들과 만난 지도 벌써 1년이 됐습니다. 

[녹취: 정윤희]
“모든 게 다 걱정이 됐었어요. 미로를 눈 가리고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모든 것이 암흑 속에 있는 느낌이었고. 뉴스를 볼 때면 항상 나쁜 말만 나오잖아요. 시간이 길어질지 짧아질지 그것도 종잡을 수 없었으니까 그냥 매일 매일 조심조심 살았던 것 같아요.”

정 씨는 보험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되 지 않았을 때 코로나 사태가 시작됐다고 했는데요. 코로나 사태로 개인 실적도 떨어졌지만, 보험업계에도 변화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녹취: 정윤희]
“좀 떨어졌죠. 그리고 손님들 만나는 것도 힘들었고. 온라인으로 해서 커버는 했지만 만족스럽진 못했죠. 일처리 자체도 다 늦어졌는데 고객들이 이해해주셨고요. 또 새로 가입한 분도 계시고 돈을 못 내서 해약한 분도 계셨고요.”

정 씨의 남편은 워싱턴 D.C.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는데요. 필수업종으로 지정돼 팬데믹 기간에도 가게의 문을 계속 열 수는 있었지만,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녹취: 정윤희]
“저희 남편은 매일 새벽마다 팬데믹 시작하자 마자 마스크와 새니타이저(소독제)를 구하러 다녔거든요. 그당시에는 물량 확보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살이 많이 빠졌어요.”

게다가 지난해 5월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흑인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미국 곳곳에서 인종차별 철폐 시위가 벌어졌는데요. 시위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녹취: 정윤희]
“작년 5월에 D.C.에서 소요 사태가 있었잖아요. 그때 가게가 파손됐는데 그 당시에 지역 주민분들이 얼마나 도와주시는지. 사랑의 빚을 많이 졌어요. 제 평생에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코로나 사태에 더해 시위로 가게까지 피해를 보았지만, 오히려 미국인들의 사랑을 경험하게 됐다는 정 씨. 코로나 펜데믹 1년은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녹취: 정윤희]
“이전에 소소한 일상들이 굉장히 가치가 있는 것이란 걸 깨달았죠. 팬데믹이 끝나면 제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격려해주고 안아주고 그렇게 하고 싶어요. 사람이 그리워요.”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