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미국 최초의 컨트리 음악 트리오, 카터 패밀리

2021.5.21 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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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미국 최초의 컨트리 음악 트리오, 카터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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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어느 여름 날, 미국 남부 테네시 주와 버지니아 주 경계에 있는 작은 도시 브리스톨.  아팔라치안 산맥이 굽이치는 농촌 도시에 많은 음악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음반사 빅터 레코드의 제작자 랄프 피어(Ralph Peer)가 주최하는  경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랄프 피어는 애팔라치안 산맥 일대에 사는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녹음이 결정된 가수나 연주자들에게는 상금을 준다는 광고를 미리 내 놓았었습니다. 

상금은 한곡마다 50달러. 오늘날 가치로는 약 670 달러로, 가난한 산간 지대 사람들에게는 꽤 많은 돈이었지만, 사람들은 상금보다 자신의 노래를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더 컸습니다. 

이날 대회에서 랄프 피어는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는  한 팀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카터 패밀리였습니다. 

카터 패밀리는 A.P. 카터라는 남성과 그의 부인 새라 카터, 그리고 새라의 사촌 여동생 메이벨 카터로 구성된 3인조 악단이었습니다. 메이벨은 A.P. 카터의 제수씨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그룹 이름을 카터 패밀리, 즉 카터가족이라고 불렀습니다. 카터 패밀리는 버지니아의 산길을 넘고 넘어 이날 경연에 나왔습니다. 

A.P. 카터는 베이스. 노래와  피들을 을 연주했습니다. 아내 새라 카터는 노래와 오토하프를 연주했습니다. 새라는 선창자였고, 가장  높은 음을 노래했습니다. 목소리도 가장 컸습니다. 

메이벨 카터(Maybelle Carter)는 기타와 화음을 주로 맡고  간간히 리더보컬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메이벨의 기타에는 매우 새롭고 독특한 그녀만의 스타일이 있었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두 사람이 동시에 연주를 하는 것 처럼 들렸습니다. 메이벨은 낮은 음으로 노래의 주제 부분을 연주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모든 줄을 한꺼번에 튕깁니다. 

그런 스타일은 카터 스크랫치, 즉 카터식 긁기라고 불리웠습니다. 카터 스크래치는 머지않아 세계 기타 연주자들이 너도 나도 따라하는 스타일이 됐습니다. 

이들은 모두 버지니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클린치 마운턴에서 태어난  A.P. 카터는 어린시절 어머니한테서 전통적인 애팔래치안 민요와 피들을 배웠습니다. 

새라는  어린시절 가족들에게 노래와 오토하프,기타,밴조등 다양한 악기연주법을 배웠습니다.  A.P.와 새라는 1915년에 결혼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버지니아주에서  살면서 지역모임이나 파티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밴조, 기타, 오토하프 등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메이벨이A.P.의 동생과 결혼하면서, 1926년부터 트리오, 즉 3인조 가족 악단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카터 패밀리는 미국 최초의 컨트리 가족악단이었습니다.

카터 패밀리의 노래와 연주는 그때까지 사람들이 방송에서 듣던 클래식이나 재즈와는 달랐습니다.  음악 교육에서 가르치는 것도 아닌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시골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카터 패밀리의 노래는 마치 자기 이웃들의 소리, 또는 자신들이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처럼 들렸습니다.   대도시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골 사람들은 자기들이 부르는 스타일의 노래를 라디오 방송에서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터 패밀리는 컨트리 가수, 즉 시골 가수라는 이름으로 불리웠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컨트리 뮤직으로 불리웠습니다.  

카터 패밀리는 버지니아, 테네시, 노스 캐롤라이나 등 아팔래치안 산맥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노래했습니다. 어느 소녀와 특별한 사랑에 빠진  청년의 이야기, 그곳 산천의 아름다움, 슬픈 이야기, 죽음의 이야기를 노래했습니다. 죽은 후 저세상에서 보다 나은 생명을 기대하는 종교풍의  노래도 불렀습니다.

A.P. 카터는 노래를 하면서 새로운 노래도 발굴했습니다. 그는 미국 남동부 넓은 지역을 작은 마을까지 찾아다니며 지역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직접 들었습니다. 가사도 기록을 하고 곡을 머리에 담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새라와 메이벨을 투입해 카터 패밀리 특유의 곡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카터 패밀리는 머지 않아 유명해졌습니다. 이들은 더욱 많은 곡을 녹음했습니다. 미국 동부 지역의 많은 도시와 마을을 순회하며 공연을 가졌습니다. 수많은 미국인들은 카터 패밀리의 노래를 듣고 음반을 구입했습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3년 동안 카터 패밀리의 음반 30만장이 팔려나갔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이 몰아쳐 수 많은 미국인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했습니다. 대규모 실업 사태도 발생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음반은 어떻게든 구입을 했습니다.  A.P., 새라, 메이빌은 경제가 나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난이 무엇인지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카터 패밀리는 항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노래도 부르려고 애썼습니다. 그런 노래중 하나가  ‘KEEP ON THE SUNNY SIDE’입니다.  
대공황 속에서도 이들은 계속 공연을 하고 음반도 냈습니다. 1938년 이들은 텍사스를 여행했습니다. 그곳에는 멕시코 국경과 가까운 곳에 출력이 강력한 라디오 방송국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방송국의 전파는 미국 내 다른 어느 방송국보다 가청 지역이 넓었습니다. 카터 패밀리는 매일 두 차례씩 이 방송국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미국 거의 전 지역 청취자들은 물론 일부 다른 나라에서도 이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카터 패밀리는 뮤지컬 그룹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사람들이 모르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A.P.와 새라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부부생활은 이혼으로 끝났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새라는 A.P.의 사촌과 재혼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세 사람은 함께 공연을 이어가려 했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1943년 결국 악단은 해체됐습니다. 새라와 그녀의 새 남편은 캘리포니아로 떠났습니다. A.P.도 노래 부르기를 그만두고 고향 클린치 마운튼으로 돌아가 여생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악단 카터 패밀리에 남아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는 사람은 메이벨 뿐이었습니다.  메이벨은 ‘나의 크린치마운틴 고향집’ 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가수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메이벨은 테네시 주 내쉬빌에서 그랜드 올 오프리 (The Grand Ole Opry)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출연했습니다. 메이벨은 ‘미국 컨트리 뮤직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마더 메이벨 (Mother Maybelle)로 불리웠습니다. 

1950년대와 60년대 메이벨의 딸들은 어머니 마더 메이벨과 함께 많은 공연도 하고 음반도 냈습니다. 이들은 자주 또 한 사람의 유명한 컨트리 가수  자니 캐시와 함께 공연을 했습니다. 메일벨의 세 딸중 둘째인 준 카터는 자니 캐시와 결혼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1978년 마더 메일벨이 사망할때까지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카터 패밀리는 순수하고 소박한 컨트리 음악의 확고한 기초를 정립했습니다. 이들은 블루그래스, 가스펠, 팝, 록은 물론   1960년대 포크 부흥에도 큰 영향을 미친 공로자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