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현대 포토 저널리즘을 출범한 여성 사진기자, 마가렛 버크 화이트 (2)

2020.3.20 2: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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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현대 포토 저널리즘을 출범한 여성 사진기자, 마가렛 버크화이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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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현대 포토 저널리즘을 출범한 여성 사진기자, 마가렛 버그 화이트 두 번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 1943년 제2차세계대전 임무 수행 중인 마가렛 버크 화이트.

마거릿 버크 화이트는 1930년대 초 산업사진 기사로부터 자신의 포토저널리리즘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사진은 기계의 힘과 아름다움을 잘 나타냈고, 사진 한 장에 한가지씩 설명을 붙여 긴 이야기를 만들어갔습니다.  

1936년, 미국의 출판업자 헨리 루스는 포토그래픽 에세이, 즉 글이 아니라 사진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라이프(Life)라는 새로운 잡지를 시작했습니다. 루스는 포천(Fortune)에서 일하던 마거릿 버크 화이트를  라이프 잡지 기자로 발탁했습니다.  

마거릿 버크 화이트는 라이프 잡지 창간호의 표지 사진으로 미국 서부 몬태나주에 건설 중인 새로운 댐을 찍었습니다. 댐을 받쳐주는 거대한 기둥들은 뚜렷한 명암의 대조로 강력한 힘을 잘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또 기둥 아래 서 있는 조그마한 사람의 모습은 그 댐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 나게 전해주었습니다.  

마거릿 버크 화이트는 과거처럼 시설이나 제품만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라이프 창간호에도 그 댐을 건설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댐에서 일하는 사람, 그들이 살고 있는 방, 여가를 즐기는 모습 등을 9페이지에 걸쳐 보여주었습니다.  

1930년대 마거릿 버크 화이트는 미국 남부의 이야기를 주로 써서 명성을 얻은 작가 어스킨 콜드웰(Erskine Caldwell)을 사귀게 됐습니다. 이들은 1939년에 결혼에 골인하게 됩니다. 소설가와 사진기자는 남부의 가난한 미국인들에 관한 책을 내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책을 내기 위해 이들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루이지애나까지 8개 주를 함께 여행했습니다. 1937년에 출판된 ‘책,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You Have Seen Their Faces)’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콜드웰의 글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면서 마거릿 버크 화이트의 사진은 사진대로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사진 중에는 아직도 생존해 있는 남북전쟁 군인들의 얼굴도 들어있었습니다.  

유럽이 전쟁에 휘말려 있던 1941년 봄, 마거릿 부부는 소련으로 갔습니다. 당시 소련을 방문한 서방 언론인은 오직 이들 뿐이었습니다. 6주 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마거릿은 전쟁을 준비하는 소련인들의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7월 어느 날 밤, 소련 관리들은 독일 폭격기들이 모스크바를 기습하고 있으니  누구도 지상으로 나오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사람들이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도중 마거릿 버크 화이트는 호텔 창문 여기저기에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카메라는 밤하늘의 빛을 촬영할 수 있도록 세팅을 해 놓고 호텔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이들 카메라는 모스크바가 폭격 당하는 장면을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독일의 소련 공습을 전하는 세계 최초의 사진들이었습니다. 

소련을 떠나기 직전 마거릿 버크 화이트는 조셉 스탈린을 만날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그의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서방 기자가 스탈린의 얼굴을 찍은 것도  마거릿 버크 화이트가 처음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마거릿 버크 화이트는 미군의 종군기자로 발탁됐습니다. 2차 대전 중 전투 현장에서 활동을 하도록 허락받은 여성은 마거릿 버크 화이트가 처음이었습니다. 그가 찍은 사진은 군과 라이프 잡지에서 공동으로 사용됐습니다.  

마거릿 버크 화이트는 군복을 입고, 장총을 메고, 목에는 카메라를 주렁주렁 매단 채 전쟁터를 누볐습니다. 이렇게 짐이 많은데도 마거릿은 늘 대형 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야만 해상도가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마거릿 버크 화이트는 유럽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미국 폭격기에도 탑승했습니다. 사막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촬영하기 위해 북 아프리카로도 날아가고 싶었지만, 미군 사령관은 너무 위험하다며 허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거릿은 항공기 대신 배를 타고 북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도착하기 전 독일 폭격기에 의해 그 배는 격침되고 말았습니다. 마거릿과 그 외 생존자들은 다행히 연합군 함정에 구출돼 알제리로 보내졌습니다. 그같은 사건도 그녀의 취재 의지를 꺾지 못했습니다.  

마거릿은 튀니지의 독일군 비행장 폭격, 이탈리아 전선,  라인강 전선 등도 취재했습니다. 마거릿은 독일에 있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처참한 유대인들의 모습도 촬영했습니다.  

마가렛 버크 화이트가 찍은 물레를 돌리는 마하트마 간디의 모습.

전쟁이 끝나자 라이프사는 마거릿 버크 화이트를 인도로 보냈습니다. 마거릿은 3년 동안 인도에 머물면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인도의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힌두와 무슬림의 싸움도 취재했습니다. 인도의 무저항주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가 물레 앞에 앉아 있는 그 유명한  사진을 찍은 것도 이때였습니다. 마거릿은 사진 속의 인물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직접 물레 잣는 법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1948년 간디가 암살되기 전 그를 마지막으로 촬영한 사람이 바로 마거릿 버크 화이트였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버크 화이트는 그곳으로 달려가 비극의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사진 중에는 처형된 빨치산의 목을 들고 있는 남쪽 전사,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가족의 관 앞에서 통곡하는 어머니들, 끌려가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오자 얼싸안고 오열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과 싸우는 남쪽 전투경찰들의 모습도 있습니다.  

1950년대 중반 마거릿 버크 화이트는 파킨슨병으로 시달렸습니다. 손이 심하게 떨려 카메라를 잡을 수 없었지만 1969년까지 라이프지에서 일을 계속했습니다. 마거릿 버크 화이트는 1971년 67세로 타계했습니다.  

남성들만의 영역이었던 험난한 다큐멘터리 세계에 처음으로 뛰어든 여성 마거릿 버크 화이트. 공장에서 전투 현장까지 그녀의 삶은 모험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저널리즘 사진작가의 한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