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전설적 감독, 존 포드

2020.2.7 3: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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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오디오]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전설적 감독, 존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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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전설적 감독, 존 포드에 대해 알아봅니다.

영화 감독 존 포드.

미국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는 존 포드 감독은 무성영화 시대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14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했습니다. 그는 네 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고 아직까지도 최대 감독상 수상자의 기록을 지키고 있습니다. 

영화 팬들은 존 포드를 기억할 때 흔히 서부극을 떠올립니다. 워낙 서부극을 많이 만들었고, 그 분야에 큰 영향과 업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존 포드는 서부극만큼 비서부극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사실 그는 예술성 면에서 서부극보다 비서부극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감독이었습니다.
  
존 포드는 1895년 미국 북동부 메인주 아일랜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1명의 남매 중 10번째로 어렸을 때 이름은 존 마틴 피니(John Martin "Jack" Feeney)였습니다. 존은 책 읽기를 좋아했고, 미술과 어학에 재능이 있었지만, 수학은 잘 못했습니다. 평소 해군이 되고 싶어 했던 그는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대신 메인대학교에 들어갔지만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해 불과 몇 주 만에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존 포드에게는 할리우드에서 영화감독 겸 배우로 활동하는 형이 있었습니다. 존은 캘리포니아로 형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형 프랜시스 포드 밑에서 조연출로 일하면서  가끔씩 배우로도 출연했습니다. 

차츰 감독으로 진출한 포드는 1924년 ‘철마(The Iron Horse)’를 연출해 처음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최초의 대륙횡단 철도 건설에 얽힌 이야기였습니다. 토착 인디언의 습격 등 난관에도 ‘센트럴 퍼시픽 철도’와 ‘유니온 퍼시픽 철도’가 사막 한가운데서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반사막지대인 시에라 네바다 현장 촬영이 많았고, 무려 5천 명의 엑스트라, 2천 필의 말, 그리고 1개 기병 연대가 동원됐습니다. 제작비는 28만 달러라는 거금이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벌어들인 돈이 200만 달러나 돼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죠.
 
존 포드는 193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많은 서부극을 만들어 고전적인 서부극 영화의 전형을 수립한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영화 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라고 평가되는 ‘역마차(Stagecoach)’를 내놓았습니다. 

2차 대전이 벌어지자 존 포드는 해군 예비군으로 들어가 전쟁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그때 만들어진 영화 중 두 편은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는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전투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부상을 당하면서도 촬영을 감행한 용기로 군 표창도 받았습니다.

존 포드의 전쟁 다큐멘터리에는 한국전 기록도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이다(This Is Korea)’라는 제목의 약 50분짜리 기록 영화는 주로 미군의 활약상을 담고 있습니다. 또 평화로이 살던 한국 사람들이 처참한 비극을 겪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존 포드는 기병대 3부작, 즉 ‘아파치 요새’, ‘노란 리본을 단 여인, ‘리오그란데’를 연이어 내놓았습니다. 그 후 상당한 공백이 있다가 ‘수색자(The Searchers)’를 연출했습니다. 텍사스-인디언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금방 명작으로 호평을 받았고, ‘미국영화연구소(AFI)’는 이 영화를 사상 가장 우수한 서부극 100편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습니다. 

존 포드가 서부극을 많이 만들었지만, 아카데미 최우수 감독상을 받은 영화는 모두 비서부극입니다.  존 포드 자신도 그가 만든 수많은 작품 중 폭력 장면은 그리 많지 않고, 있더라도 가능한 한 짧게 만들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첫 번째 감독상은 ‘밀고자(The Informer)’로,  아일랜드 독립전쟁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수상작은  대공황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를 영화화한 것으로, 이는 사상 최고의 명화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세 번째 수상작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How Green Was My Valley)’, 네 번째는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조용한 남자(The Quiet Man)’입니다.

지난 1953년 존 포드 영화감독과 아들 패트릭이 로마의 한 호텔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존 포드는 건강이 악화되고 시력에 문제가 있었지만 1960년대까지 왕성하게 영화계에서 활동했습니다. ‘일곱 여인들(7 Women)’은 그의 마지막 영화가 됐습니다. 중국에서 선교하는 여성들이 몽골 무장 괴한들의 공격을 견디어 내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존 포드는 AFI가 수여하는 평생공로상의 첫 수상자가 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은 그에게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여하고 명예 해군 제독으로 승진시켰습니다. 

70대 들어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존 포드는 1973년 캘리포니아 팜 데서트에서 만 78세로 타계했습니다. 존 포드는 유니버설, 폭스, 워너, 등 유명 영화사와 인연을 갖고,  50여 년 동안 웨스턴, 멜로드라마, 코미디, 전쟁물 등 다채로운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고향 아일랜드와 북아메리카에 대한 무한한 애정,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남성다운 기법으로 표현한  존 포드는, 고전 시기를 대표하는 거장이자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