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아메리카] 최초의 대서양 단독횡단 여류 비행사, 어밀리아 에어하트

2021.3.26 12: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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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최초의 대서양 단독횡단 여류 비행사, 어밀리아 에어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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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설적인 여류비행사 어밀리아 에어하트.

3월은 미국의 여성 역사의 달입니다. 오랜 세월 각분야에 걸쳐 이룩한 여성들의 업적을 찬양하고,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따르는 어려움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기간입니다. 오늘은 여성으로써 최초로 대서양 횡단 단독 비행에 성공하고, 더 나아가 세계 일주 비행에 나섰다 실종된 전설의 조종사 어밀리아에어하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어밀리아에어하트는 1897년 7월 26일 미국 중부지방인 켄사스 주 애치슨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에어하트는 매우 모험심이 많고 독립성이 강한 소녀였습니다.

1920년 12월 28일, 에어하트는 캘리포니아 주 롱비취에 놀러 갔다가 비행기를 처음 타보았습니다. 구경꾼들에게 비행기를 태워주는 행사였습니다. 약 10분간 비행기를 타본 다음부터 에어하트의 운명은 완전히 비행 인생으로 굳어졌습니다. 

에어하트가 처음으로 비행 기술을 배운 것은 1921년이었습니다. 1923년에는 여성으로는 미국에서 16번째로 파일러트, 즉 조종사 면허를 땄습니다. 

에어하트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최초의 비행기를 구입했습니다. 두 사람이 탈수 있는 노란색 쌍발 프로펠러기. 그녀는 그 항공기의 이름을 캐너리(The Canary)로 명명했습니다. 

에어하트는 이 비행기로 고도 4,267m 상공까지 올라가, 여성 비행사 최고의 고도비행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1928년 4월 에어하트는 뉴욕의 출판업자 조지 푸트남으로부터 대서양을 비행한 최초의 여성이 돼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를 수락한 에어하트는 조종사 윌머 빌 스툴츠와 부조종사 루이스 슬림 고든과 함께 1928년 7월 17일 캐나다의 뉴 펀드랜드에 있는  트레파시 하버 공항을 이륙했습니다. 

이들이 탄 비행기는 포커 F7이라는 기종으로 이름은 우정이라는 뜻의 Friendship 호였습니다. 이들은 대서양을 약 21시간 비행한 끝에 영국 남서부 웨일즈의 베리 포트에 착륙했습니다. 

최초의 대서양 횡단비행 여성의 탄생은 세계적인 뉴스가 됐습니다. 이들이 돌아오자 뉴욕에서는 색종이가 하늘을 뒤덮는  환영 시가행진이 벌어졌습니다. 칼빈 쿨리지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이들을 위한 환영 리셉션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에어하트는 이 영광이 자기 것이 아닌 것만 같았습니다. 남이 조종하는 비행기에 탑승해 보조 역할만 한 것 뿐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감자 자루와 같이 실려갔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에어하트는 대서양 비행을 준비할 때 부터 출판업자 푸트남과 가까워졌고, 결국 1931년 2월 7일, 결혼했습니다. 독립심이 강한 에어하트는 이 결혼을 두개의 조종간이 있는 동반자 관계라고 묘사했습니다. 

두 사람은 단독 대서양 횡단비행으로는 역사상 두번째, 여성 단독으로는 사상 최초의 기록을 만들어 내기 위한 비밀 공작에 돌입했습니다. 남녀를 통틀어 최초의 단독 비행은 앞서 찰스 린드버그가 수립한바 있습니다. 린드버그의 비행이 있은지  5년만에 에어하트는 다시 뉴펀드랜드를 출발해 프랑스 파리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비행은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북풍이 강하게 불고, 눈보라가 쳤습니다.  기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에어하트는 파리 대신 아일랜드의 런던데리 부근 어느 목장에 착륙했습니다.

어하트의 이 비행은 여성 최초라는 기록 외에 대서양 최단시간 횡단이라는 기록까지 세웠습니다. 에어하트가 대서양을 건넜다는 소식은 미디어를 통해 미국은 물론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에어하트는 영웅이 됐습니다.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에어하트에게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금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미국 의회는 그녀에게 영예 십자 비행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여성이 이 훈장을 받은 것은 에어하트가 처음이었습니다. 여러나라 지도자들도 이 용감한 여인을 귀빈으로 초대했습다.

에밀리어 에어하트는 1930년대 경제공황으로 허덕이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태어난 여자아이에게 어멜리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유행일 정도였습니다.  

그후로도 에어하트는 계속 신기록을 만들어 냈습니다. 헬리콥터의 원조격인 오토자이로 비행고도 5,610여 미터 신기록, 하와이 호놀롤루에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까지의 3,860여 Km의 태평양 단독비행, 멕시코 시티에서 뉴왁 까지의 단독 비행 등입니다.  

어밀리아 에어하트가 1937년 5월 사상 최초의 첫 여성 세계일주 비행을 앞두고 '록히드 10 일렉트라' 항공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나이 40에 가까워지던 1937년 에어하트는 마지막으로 역사적인 도전을 준비했습니다. 사상 최초의 여성 세계 일주비행입니다. 그해 6월 1일, 에어하트는 항법사 프레드 누난과 록히드 일렉트라 쌍발 엔진 항공기를 몰고  마이애미에서 야심찬 여정을 출발했습니다. 

남미를 거쳐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태평양을 날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동쪽 방향 코스였습니다.  6월 29일, 이들은 뉴기니의 라에(Lae)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남은 비행 거리는 약 1만 천265 Km. 다음 목적지는 중부 태평양 상에 있는 하울랜드(Howland) 섬이었습니다.  

하울랜드는 길이가 1마일 반, 넓이가 반 마일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그 다음 기착지 호놀룰루까지 가기위해 연료를 채워야 하는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7월 2일 두 사람은 라에를 이륙했습니다. 항법사 누넌은 정확하지 못한 지도로 방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미국 해안경비군 소속 이타스카 호가  하울랜드 섬 부근에 도착할때까지 안내를 하도록 배치됐습니다. 다른 두 선박도 갑판에 불을 켜고 에어하트가 항로를 알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날씨가 좋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하늘에는 구름이 끼고 소나기도 있었습니다. 누넌의 항로 파악은 어려워졌습니다. 에어하트는 이타스카호에 날씨 흐림, 날씨 흐림을 반복해 송신했습니다. 

교신은 자주 끊기고 잡음은 심했습니다. 오전 8시 45분, 에어하트는 ‘배가 보이지 않음. 연료가 다 떨어져 간다. 우리 고도는 천 피트라고 송신했습니다. 교신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교신이 끊기자 즉각 공중과 바다에서 해군 사상 최대규모의 구조활동이 시작됐습니다. 17일 동안 25만 제곱 마일에 달하는 넓은 바다를 수색했지만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수색대는 마침내 7월 19일, 작업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해상추락사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미국 법원은 1939년 1월 5일 에밀리어 에어하트가 실종된 7월 2일을 사망일로 공식 선언했습니다.   

하울렌드 섬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등대가 세워졌습니다. 미국 전역에는 에어하트의 이름을 딴 도로, 학교, 공항 등이 등장했습니다. 그녀의 출생지인 캔사스 주 애치슨에는 기념관이 세워졌습니다. 

에어하트의 실종에 대해 수 많은 주장들이 등장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일부러 실종돼 비밀리에 살고 있었다고도 하고, 당시 남태평양에 주둔하던 일본군에 발각돼 처형되었다고도 했습니다. 그녀의 유해가 발견됐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사실로 증명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용기있고, 비젼있고, 여성으로써 또 항공인으로써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세상은 기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