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 뉴스] “북한 ‘납북 소행’ 진실 밝혀야 ‘남북 화해’ 가능”

2021.6.17 3:01 오전
삽입하기
방송 시작 시간
This program has ended and is being processed for playback.

오는 25일은 한국전쟁이 벌어진 지 7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이 3년 동안 벌어지면서 당시 북한군에 끌려갔다가 지금까지 생사조차 불분명한 납북 피해자는 10만 명에 이릅니다. 이들 납북자들의 유가족 단체들이 한국 진실화해위원회를 찾아가 납북피해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시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영상취재: 김형진 / 영상편집: 이상훈)

1950년,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벌어진 6.25 한국전쟁. 

당시 15살이었던 이정화 씨는 아버지가 영문도 모른 채 북한군에게 끌려간 그해 7월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정화 / 한국전쟁 납북 피해 유가족 

“아주 젊은 인민군인데 아주 젊은 사람이에요. 그냥 그 사람들이 와서 가자는 거죠. 자수하라 가자고. 인민군이 먼저 나가고 아버님이 아무것도 못 쓰시니까 우물쭈물하시다가 나중에 나갔는데…”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아버지는 북한군에 의해 평양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석 달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정화 / 한국전쟁 납북 피해 유가족 

“그때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요. 인민군이 후퇴할 때 강계 그쪽으로 후퇴하는데 아버지가 그 이상 걸으실 수 없어서…팔다리가 다 얼잖아요. 유엔군도 그때 많이 다들 북쪽으로 가다가 참 추울 때였으니까…” 

또다른 납북 피해자의 아들인 이길용 씨.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채 한 달도 안 됐던 그때, 출근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다섯 살 그에게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길용 / 한국전쟁 납북 피해 유가족 

“회사에서 어떤 분이 오셨었대요. 와서 ‘나오셔도 된다’ 그런 말을 듣고 출근하셨다가 근무처에서 내무서로 연행돼 갔다고 해요. ‘같이 나가자’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우리가 잘못한 게 뭐 있냐’ 그러셨대요. 그분은 탈출하셔서 이 얘기를 해 주셨고. 꼭 한 번 뵙고 싶습니다. 살아 계시면 육성이라도 듣고 싶고 정말 정말 보고 싶습니다.” 

납북 피해 유족들은 한국전쟁 발발 71주년을 일주일여 앞두고 한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찾아가 집회를 열었습니다. 

“온전한 진실규명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실체를 밝혀라! 밝혀라! 밝혀라!” 

유족들은 한국 정부에 납북피해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한편 북한 정권에 납북 피해에 대한 사죄를 요구했습니다. 

유족들은 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30분 동안 비공개로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이미일 / 사단법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북한이 분명히 했는데도 안 했다고 주장하니까 그것을 확실하게 보고서에 ‘북한이 했다’는 것을 담아줘야 하고 그것이 우리한테는 첫 번째 명예회복이 되는 거고. 그리고 가해자가 생겨야지 진실이 규명되고 그래서 진실에 입각한 책임 있는 조치를 함으로써 

화해의 길로 갈 수 있는 거다...” 

정근식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우리 진실화해위원회는 직접 북한 정권에 대해 권고를 하거나 그럴 권한은 없고 우리 정부 부처에 권고를 할 수 있는 권한밖에 없기 때문에 저희들이 법률적으로 정해진 틀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검토해 보겠습니다.” 

한국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은 한국전쟁 납북 피해자를 9만5천 456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납북 피해를 밝히는 일은 국가가 먼저 나서 해야 할 일이라면서 북한에게 인정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한국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통일부는 한국전 납북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는 VOA의 질문에 앞으로도 남북대화와 국제사회 협력 등을 통한 진전 모색과 납북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통해 분단으로 인한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시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