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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국방물자생산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DPA)’을 전격 발동시켜,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문인데요. 감염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현시점을 전시에 준하는 비상 상황으로 규정한 겁니다. 이에 따라 주요 대기업들이 의료 물자를 생산하게 되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 시간에는 국방물자생산법에 관해 알아봅니다.

“국방물자생산법 발동”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해 GM(제너럴모터스)이 인공호흡기를 만들도록 조치했다”고 백악관 브리핑에서 밝혔습니다. GM은 자동차 제조 회사인데요. 자동차 회사에 의료 장비를 만들도록 한 겁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확산에 따라, 인공호흡기 등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GM이 폐쇄한 오하이오주 공장이나 다른 공장을 즉시 가동해야 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트위터에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강조의 의미인 영문 대문자로 “인공호흡기 생산을 곧바로 시작하라!”고 덧붙였는데요.

GM 측은 이날 즉시, 인공호흡기 1만 개를 4월 중에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또 다른 자동차 회사인 포드도 곧바로 인공호흡기 생산에 들어간다고 밝혔는데요. 전기 자동차 업체인 ‘테슬라’도 앞서 의료 장비 생산 의향을 공표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입법 계기”

GM 등이 의료 물자를 만들도록 한 ‘국방물자생산법’은 대통령 직권으로 시행됩니다. 이 법을 특정 물품 생산에 적용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 발효되는데요.

이후 세 단계를 거쳐 진행됩니다.

첫째, 연방 정부가 관련 원자재 수급 상황과 가격 등을 통제하고, 둘째, 관련 제품 생산에 대한 규제를 집행하는 한편, 셋째, 완성품들을 정부가 필요 분야에 일괄 공급하는 건데요.

이 법이 제정된 계기는 한국전쟁이었습니다. 지난 1950년 9월, 한반도로 전투 관련 물자를 투입하기 위해 만든 법인데요. 정기적인 개정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전쟁 상황에만 적용되진 않았습니다. 50 차례 이상 관련 법규가 시행됐는데요. 군사적 위기 외에 각종 재난, 연방 정부 셧다운(shutdownㆍ일시 업무 중단) 등 다양한 상황에 대응했습니다.

즉, 국내외적 비상사태에 따라 특정 품목의 생산 역량을 집결할 필요가 있을 때, 군 당국과 민간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협조하도록 한 겁니다.

따라서 집행 주체는 국방부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방물자생산법 적용의 역사”

국방물자생산법은 1950년대 알루미늄과 티타늄 산업에도 적용됐습니다. 이들 분야는 당시 군수물자 생산뿐 아니라, 공업 전반에 핵심이었는데요. 국방부가 해당 산업에 자본과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고, 생산을 촉진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신기술 개발 분야에도 국방물자생산법이 적용됐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바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 법을 다시 시행했는데요. 외국에서 생산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수급을 통제했습니다. 중국의 사이버 첩보 행위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요.

트럼프 행정부는 당초, 코로나 사태에 대한 국방물자생산법 발동을 망설였다고 인터넷 매체 ‘복스’ 등이 전했습니다. 이 법의 적용 효과가, 통제 국가인 베네수엘라와 같은 경제 위기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공중보건 상황이 하루빨리 정상 회복돼야, 경제도 향상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관련 법규 적용을 결정했다고 전해졌습니다.

“의회의 역할”

국방물자생산법은 대통령 직권으로 시행되지만, 의회가 일부 감독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관련 산업 분야의 임금이나 상품 가격을 통제하려면, 의회의 합동 결의안을 동반해야 되는데요.

관련 업계의 대출이나 대출 보증 금액이 5천만 달러 이상이면, 역시 의회 승인을 받아야 됩니다.

하지만, 국가적인 비상사태에서 이런 의회 감독 기능이 유예될지 여부는 불명확합니다.

“미군 당국의 민간 지원”

미군 당국은 이밖에 다양한 방식으로, 이번 코로나 사태 대응에 민간 부문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군인과 군무원 등 보호 중심의 사태 대응 목표에서, 전 국민으로 범위를 확대했는데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주요 군사시설과 물자들을 민간 보건당국에 지원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해군 병원선 두 척을 현장 지원 임무에 투입시켰는데요.

동부 해안에서는 ‘컴포트(Comfort)’함이 뉴욕 일대 관할 임무를 수행하고, 서부 해안에서는 ‘머시(Mercy)’함이 로스앤젤레스 일대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엇갈리는 반응”

이번 국방물자생산법 발동에 대해, 찬반 의견이 엇갈립니다. 우선, ‘적극적인 대응이었다’는 긍정 여론이 있는데요.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최근 상당히 오르기도 했습니다.

야당인 민주당 측에서도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민주당은 코로나 사태 초기, 심각성을 낮게 보던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를 비판했었는데요.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국방물자생산법 발동 직후, “내가 대통령이었더라도, 같은 조치를 했을 것”이라고 NBC뉴스에 밝혔습니다. 아울러, 산소호흡기 등뿐 아니라 “마스크와 가운 등에 대해서도” 국방물자생산법 적용 범위를 넓히라고 촉구했습니다.

같은 민주당 소속인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는 앞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방물자생산법 적용을 공개 요청했었는데요. 발효 이후, 뉴욕 일대 감염자 등 상황 수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평시에 전시법을 적용하는’ 지나친 조치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냉전 시대 적대국을 상대하기 위해 제정한 이 법규를 동원하지 않아도 관련 물자 수급을 촉진할 대안이 있다고, 공영 라디오 방송 NPR이 지적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대선을 의식해, 지도력과 추진력을 무리하게 부각시키려 한다고 보는 매체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청백당 베니 간츠 대표.
이스라엘 청백당 베니 간츠 대표.

뉴스 속 인물: 이스라엘 제1야당인 '청백당' 베니 간츠 대표.

최근 뉴스에서 화제가 되는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이스라엘 제1야당인 ‘청백당’의 베니 간츠 대표입니다.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총선을 거듭한 이스라엘에서, 극적으로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했습니다. 청백당의 간츠 대표가 지난달 26일 국회의장에 선출됐는데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의 합의로 이뤄진 조치입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여당 ‘리쿠드’당과 제1야당이 연합하는 ‘거국 내각’을 구성한 건데요.

네타냐후 총리는 갖가지 비위 혐의로 기소된 상태이기 때문에, 향후 정국의 열쇠는 간츠 대표가 쥐고 있다는 관측이 중론입니다.

간츠 대표는 군인 출신입니다.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을 지냈는데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에서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 ‘하마스’와의 전쟁을 지휘한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국민적 인기를 얻었는데요. 군인 시절 쌓아온 강직한 인상과 함께, 70대인 네타냐후 총리보다 10살이나 어린 ‘젊음’과 참신성도 강점이었습니다.

게다가, 네타냐후 총리가 수년째 각종 비리 의혹으로 지지를 잃으면서, 간츠 대표가 주장하는 ‘부패 척결’ 구호가 힘을 얻었는데요.

주요 정책에 ‘중도’ 노선을 추구하는 것도 간츠 대표가 높은 지지를 받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간츠 대표는, 외치에서 협상을 강조하고 내치에서는 실용을 추구하는데요. 강경 보수파인 네타냐후 총리와 대립점이 분명한 겁니다.

간츠 대표가 이끄는 청백당은 요르단강 서안(웨스트뱅크)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무분별하게 늘리는 데 반대하고 있고요. 이란에 대한 군사적 타격 주장에도 선을 그어왔습니다.

간츠 대표는 1959년 이스라엘 중부 지중해안의 크파르 아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헝가리 출신으로,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생존자였는데요. 아버지는 루마니아에서 팔레스타인에 불법 진입하려던 혐의로 영국 당국에 체포된 전력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사회의식이 높아, 크파르 아힘 일대에서 농업협동조합을 설립해 함께 운영했는데요.

이들의 아들인 간츠 대표는 18살 때인 1977년, 군에 입대했습니다. 이후 장교가 되고, 주요 부대 지휘관을 거쳤는데요. 공수부대 전력 중심으로 편성된 ‘제35여단’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이 부대는 1950년대부터, 특수작전를 수행해온 곳인데요. 간츠 대표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Ft. Bragg)’에 있는 미 육군 특전사에서 위탁 교육을 받고 이스라엘에 돌아갔습니다.

이후, 간츠 대표 소속 부대는 ‘제1차 레바논 전쟁’을 필두로, 주변국과 무력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혁혁한 전과를 올렸는데요.

간츠 대표는 군인으로 뛰어났을 뿐 아니라, 지적인 면모도 인정받았습니다. 텔아비브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 학위를 받고, 하이파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땄는데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주재 국방 무관으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중동 내 미국의 최대 동맹인 이스라엘의 제1야당 지도자이자, 국회의장이 된 건데요.

간츠 국회의장과 네타냐후 총리가 함께 출범시킨 이스라엘 연합 정부가 과연 국내 정치의 안정을 되찾고 중동 정세를 주도해 나갈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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