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마이 칼릴자드 미국 아프간 특사와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탈레반 협상 대표가 지난달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간 전쟁을 종식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잘마이 칼릴자드 미국 아프간 특사와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탈레반 협상 대표가 지난달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간 전쟁을 종식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최근 미국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에 공식 서명했습니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한 건데요. 아프간 일대에 실질적인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지 주목됩니다. 평화협정 체결 과정과 현지 반응, 오종수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역사적인 아프간 협정 체결”

미국 정부와 아프가니스탄 반정부 무장 조직 탈레반이, 지난 2월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평화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지난 2001년부터 계속된 아프간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한 겁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사무총장은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사이의 후속 협상을 지원하는 별도 선언문에 서명했습니다. 주요 언론은 ‘역사적인 합의’로 평가하면서, 실천 방향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28일) 성명을 내서, 협정 체결 계획을 직접 공개했습니다. 

“19년여 전, ‘9ㆍ11’ 공격 배후 세력을 근절하기 위해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갔다”고 상기시킨 뒤, “그 동안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강조했는데요. “나는 선거운동 당시, 전쟁을 끝내고 미군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아프간 전쟁의 시작”

아프간 전쟁은, 지난 2001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연합군이 현지에 진입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탈레반에 대한 공격을 직접 지시했다고, 담화를 통해 밝혔습니다.

[녹취: 조지 W. 부시 대통령 개전 담화] “On my orders, the United States military has begun strikes against al-Qaida terrorist training camps and military installations of the Taliban regime in Afghanistan.

그해 미국 뉴욕을 강타한 ‘9ㆍ11테러’로 3천 명 가까운 인명이 희생됐습니다. 이 공격을 주도한 테러 조직 ‘알카에다(al-Qaida)’의 우두머리,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한 작전을 펼친 건데요. 연합군은 당시 아프간 집권 세력이던 탈레반을 축출했습니다. 

이후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아프간에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요. 하지만 탈레반은 권력을 빼앗긴 뒤에도 세력을 유지했습니다. 

아프간 남부와 파키스탄 북부에서 테러와 군사 활동을 지속했는데요. 이 때문에 미군이 현지에 계속 남게 됐고, 아프간 전쟁은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이 됐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탈레반과 직접 협상”

2017년 출범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동 주요 지역에서 미군을 불러들이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듬해인 2018년부터 탈레반 대표들을 카타르 도하에서 만나, 평화 협상을 벌였는데요. 1년여 만에 타결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됐습니다. 

지난해 9월, 탈레반 지도자들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을 미 대통령 별장인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할 계획이었는데요. 평화협정에 서명하려던 일정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 전에 취소했습니다. 며칠 앞서 발생한 탈레반의 공격 때문에, 미군 1명을 포함한 12명의 사상자가 나온 것을 취소 이유로 들었습니다.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회담 직전) 걸어 나왔던 것처럼, 이란과의 협상에서 떠나버린 것처럼, 조건이 적절치 않고 미국민을 보호하는 데 바람직하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협상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탈레반 측은 즉각 반발했는데요. “앞으로 더 많은 미국인이 죽게 될 것”이라고 대변인 성명을 통해 위협했습니다. 

“향후 14개월에 걸친 미군 철수”

양 측이 이렇게 거친 설전을 벌인 뒤, 협상이 재개됐습니다. 

폼페오 미 국무장관은 탈레반과의 대화에 여전히 관심이 있다고 밝히고, 탈레반 측은 휴전을 제의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추수감사절 휴일을 맞아 아프간을 예고 없이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취임 후 처음 현지를 찾아, 미군 장병들을 위로한 겁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아프간 현지 연설] “right here the toughest, strongest, best and bravest warriors in the face of the earth….”

“지구상 가장 강하고 용감한” 미군이 현지에서 현저한 성과를 거뒀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장에는 가니 아프간 대통령도 동행했는데요. 결국 해를 넘겨, 탈레반을 상대로 협상 타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과 나토는 향후 14개월에 걸쳐, 현지 주둔 병력을 철수하기로 이번 협정에서 규정했는데요. 1차 철군과 2차 철군으로 시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초기 135일 동안, 5개 기지 주둔 인원을 8천600명 선으로 줄이도록 했습니다. 이어서 남은 9개월 반 동안, 잔여 병력이 현지에서 나오는 건데요. 이와 함께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 포로를 석방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탈레반 측은 아프간 정부군 포로를 풀어주고, 아프간 정부를 상대로 정치 안정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도록 했는데요. 아울러 군사행동을 멈추고, 주변 테러 세력을 비호하는 행위도 중단하도록 명시했습니다. 

“불안정한 현지 상황”

하지만 합의 이후에도, 아프간 현지에서는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측이, 각자 불만을 표시하는데요. 아프간 정부를 대표하는 가니 대통령이 먼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협정에 규정한 포로 교환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힌 겁니다. 

이에 대해 탈레반 측은 2일 “평화협정을 부분적으로 파기한다”면서,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재개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다만 협정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은 아니고, 미군을 비롯한 외국군은 공격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탈레반 대변인이 밝혔습니다. 

“탈레반을 대하는 아프간 국민의 우려”

이런 상황과는 별도로, 아프간 국민들도 협정 실행 과정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탈레반의 영향력을 인정해 협상 상대로 대했고, 실제 합의에 이르렀기 때문에, 앞으로 탈레반이 주도하는 사회적 탄압이 가열될 것이라는 주장이 커지는데요. 여성계에서 특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녹취: 할리마 살리미/ ‘헤랏(Herat)’ 여성연맹 대표] “the deal mostly reflects the US and Taliban’s interests….”

“이번 협정은 미국과 탈레반의 이해만 반영”했을 뿐이고, “아프간 정부와 대다수 국민, 특히 여성들은 소외됐다”고 현지 여성단체 지도자가 기자회견에서 말했는데요. 이처럼 각계의 반발에 직면한 아프간 평화협정이 예정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

“뉴스 속 인물”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얼마 전 타계한 미국의 유명 경영인,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입니다. 

GE를 세계적인 전자 업체로 일군 잭 웰치 전 회장이 지난 1일, 향년 84세로 숨을 거뒀습니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뉴욕 시내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고 부인 수지 여사가 발표했는데요. 신장 기능이 급격히 저하된 것이 사인이었습니다. 지병인 신부전증이 노령 때문에 악화됐다고 알려졌는데요. 미국 주요 매체들이 속보로 전하고, 지도급 인사들은 즉각 애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웰치 전 회장이 “친구이자 지지자였다”며, “그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음 날(2일) 트위터에 적었는데요. 이어서 “잭(웰치 전 회장) 같은 기업 지도자는 일찍이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세기의 경영자(manager of the century)’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세기의 경영자’란 말은, 웰치 전 회장의 경영 수완을 높이 평가해, 언론이 선사한 명칭인데요. 지난 1999년 경제전문 매체 ‘포천(Fortune)’이 처음 이렇게 부르기 시작한 뒤, 웰치 전 회장은 세계 주요 기업 경영인들의 모범으로 꼽혔습니다.

웰치 전 회장은 지난 1935년, 매사추세츠주 피바디에 살던 노동계급 아일랜드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부모 아래서 자랐는데요. 아버지는 철도 차장이었고, 어머니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주변 환경만 놓고 보면, “성공 가능성은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고 2001년 발간한 자서전에 썼는데요. 하지만, 꾸준히 노력해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땄습니다. 

그리고 지난 1960년 플라스틱 소재 연구원으로 GE에 취업했는데요. 탁월한 성과를 바탕으로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1972년 부사장이 된 데 이어, 7년 뒤 부회장에 취임했는데요. 45살 때인 1981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때부터 GE의 급성장에 미국과 세계 경제계가 주목했습니다. 

웰치 회장은 20여 년 동안 CEO로 재임하면서, 120억 달러이던 시가 총액을 4천100억 달러까지 끌어올렸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GE는, 웰치 회장 재임 시절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꼽혔습니다. 

웰치 회장의 성공 경영 비법은, 과감한 구조조정이 핵심인데요. GE의 모든 사업 부문이 각자 업계 최고가 돼야 한다면서, 성장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모두 털어내라고 강조했습니다.

잘 안되면 “고치거나 문 닫거나, 아니면 팔아버리라(Fix it, close it or sell it)”는 말을 자주 했는데요. 

이 때문에 대규모 정리 해고도 빈번히 단행했습니다. 그래서 중성자(neutron)를 터뜨리는 핵폭탄 같다는 의미로, ‘뉴트론 잭’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요. 

2001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로는, 집필과 강연 등에 몰두하면서 세계 곳곳을 돌았습니다.

한국에도 여러 번 갔는데요.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 현대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과도 친밀하게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 정부와 탈레반이 맺은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에 대해 살펴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잭 웰치 전 GE 회장을 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