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내륙에 진출한 한국 측 협력업체들에 대해 북한이 최근 잇따라 계약 파기 또는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국 정부의 5.24 대북 제재 조치 해제를 압박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됩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최근 북한 내륙에 진출한 한국의 협력업체들을 상대로 잇따라 계약 파기를 위협하거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복수의 대북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17일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즉 민경련 측에서 문서 또는 구두로 5.24 조치 등으로 중단된 사업이 곧 재개되지 않을 경우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거나 사업 중단에 따른 손해를 갚으라고 일방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990년대 중반 초창기 남북 협력사업으로 주목을 받았던 금강산 샘물업체 케이비 물산 관계자는 지난달 말 민경련측이 팩스로 중단된 사업이 빨리 재개되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통보해왔다고 말했습니다.

남북한 합영기업 1호인 평양대마방직 또한 지난 달 민경련 측으로부터 팩스로 사업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라는 최후통첩성 문건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와 함께 개성공단 부근에서 모래채취 사업을 벌였던 CS글로벌 이도균 회장도 지난달 초 개성에서 만난 북측 민경련 관계자들로부터 한국 정부의 5.24 조치로 부당하게 사업이 중단된 데 따른 손해액 16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손해배상이나 계약 파기를 경고받은 업체들은 이외에도 한 두 곳 더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해당 업체들은 북측의 이 같은 통보에 최근 개성에서 북측 관계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북측은 사업 중단의 책임이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취한 5.24 조치 때문이라며 업체들이 나서서 이 조치가 해제되도록 한국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케이비 물산 관계자는 지난 14일과 15일 개성에서 만난 북측 관계자들이 사업중단으로 서로가 손해를 보고 있다며 자기들은 사업을 다시 할 준비가 다 돼 있으니 한국 정부를 압박해 빨리 재개하자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은 그러나 한편으론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남북 협력사업에 적지 않은 미련도 보이고 있습니다.

16일 개성에서 북측 관계자들을 만난 평양대마방직 김정태 회장은 대남 경협사업을 관리하는 북측 당국은 사업 중단의 책임을 물어 계약 파기 등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번에 만난 북측 회사 관계자들은 공장 가동을 위한 부품 공급을 호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정책실 쪽에선 강경하게 나오는 것 같고 실무 쪽에선 현상유지가 돼야 하니까 오히려 우리한테 뭔가 조금이라도 될 수 있게 도와줘야 안되느냐…”

한국 정부 당국자는 “북측이 최근 보이고 있는 행태는 금강산처럼 당장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여러  경로로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출해 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북한으로의 현금 유입 차단을 목적으로 한 5.24 조치를 지금 풀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북한의 계약 파기 경고 등의 공세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데 대해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했습니다.

“북한 내부에서 너무 과도하게 중국 의존적인 경제협력을 하고 있다, 이런 목소리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래서 아마 남쪽과의 경협도 어느 수준까진 진행되는 게 정치적 명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데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다양한 압박을 넣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특히 최근 한국 정부가 일정 수준 대북정책에 유연성을 보이자 북한이 이를 집중적인 공세의 빌미로 삼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