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력 주간잡지인 `뉴스위크’가 최신호에서 북한에 농업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한국계 김필주 박사를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의 한 명으로 선정해 소개했습니다. 이 잡지는 김 박사가 “작물 생산 뿐 아니라 북한의 농부들에게 안정적인 보금자리와 자녀교육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함경도가 고향인 김 박사는 올해 74살로, 한국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한 뒤 20대에 종자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왔습니다. 이후 국제 기업들에서 일하면서 세계 각국에 종자기술을 보급했고, 1989년에 옥수수 종자 개량사업을 통해 북한과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김필주 박사를 인터뷰 했습니다.

문) 김필주 박사님. `뉴스위크’ 잡지에 의해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으로 선정되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답) 저도 놀랐습니다. 하찮은 일을 하고 있는데 너무 영광스럽게 생각이 되고요, 추천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아직도 북쪽의 2천3백만 동포들이 식량 안정이 안 돼서 애를 쓰고 있는데 제가 이렇게 이런 상을 받아도 되는지 좀 걱정이 되네요. 앞으로 좀 더 열심히 도와야 된다는 뜻으로 알고 받습니다. 사실 저는 다리 역할만 했지 저를 지원해주신 많은 미국 분들과 재미교포 분들과 한국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문) 박사님께서는 2004년부터 황해도에 협동농장들을 운영하고 계신데요. 무려 3천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대규모 농장인데, 어떻게 운영하고 계십니까?

답) 북쪽의 무역회사 하고 저희들이 같이 정부로부터 농장을 임대를 받았어요. 앞으로 계속해서 같은 농장을 도우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익성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수익성 있는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주민들을 격려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은 절대로 제가 밖으로 가져 나오지 않고 다시 농장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약속이 돼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저희가 전적으로 기자재나 모든 것을 충당하고 그 농장에서 나오는 것들을 농민들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허가를 맡았습니다.

문) 수익성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작물을 주로 재배하고 계십니까?

답) 지금 현재로는 우리가 주로 목화를 생산합니다. 목화를 천 정보(천만 제곱미터) 생산하는데요 정부에서 구매를 해갑니다. 경공업부에서 솜을 실로 짜고 옷감도 짜고 하는데 사용하게 됩니다. 수매할 때 공정가격으로 환산해서 내국환을 받습니다. 그걸 농민들에게 나눠주죠. 농민들은 수익이 되죠

문) 후원하시는 농장에 농민이 1만5천 명 있는 걸로 아는데요,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하나요?

답) 많이 된다고 합니다. 그 전에 비해 굉장히 윤택하다고 합니다. 나머지 2천 정보에서, 1천 정보는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 땅이고 과수원도 있고 채소밭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곡물들도 농민들이 사용을 하고 그래서 나은 것 같습니다.

문) 협동농장 후원을 위한 자금은 어떻게 조달하고 계십니까?

답) 주로 교단이라던가 교회라던가 사업체라던가 개인한테 북한의 실정을 말씀 드리고 세미나도 하고 지원을 받습니다. 대개는 미국 교단들이 많이 돕습니다. 작은 교단들이 많이 돕습니다.

문) 북한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이 모금 활동에 영향을 주나요?

답) 많이 있습니다. 정부에서 제재를 하면 개인이나 회사는 굉장히 주저합니다. 기존에 지원을 하던 분들도 많이 중단하십니다. 지난 2년 동안은 참 힘들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몇 개 작은 재단은 계속 저희를 돕기 때문에 그걸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 최근에는 언제 북한을 다녀오셨습니까?

답) 2월 19일에 나온 것 같습니다. 일주일 있었습니다. 1년에 여덟 번에서 열 번은 가는 것 같습니다.

문) 북한을 자주 방문하시니까 현지 실정도 잘 아실 텐데요. 요즘 북한의 식량 상황이 매우 어렵다고 하는데, 예년에 비해 어떻습니까?

답) 식량 상황은 예전에 비해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왜냐면 작년에 농사가 잘 안됐습니다. 초기에 굉장히 추웠어요. 오랫동안 그래서 봄에 발아율도 저조했을 뿐아니라 초기 생육도 늦은 데다가 또 후기에 비가 많이 왔었습니다. 그래서 추수가 늦어진다거나 추수 하다가 비를 맞는다거나 그래서 추수 후 곡물을 잃어버리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좀 어려운 작황이었습니다.

문) 비료도 많이 부족했다지요?

답) 비료를 그 전에는 남쪽에서 많이 지원을 했었는데 비료가 없어서 특히 북에는 복합비료가 딸립니다. 질소비료는 좀 생산을 하는데요. 또 유기질 비료가 많이 필요합니다. 작년부터는 그게 부진해서 열심히들 일합니다. 옛날보다 유기질 비료를 많이 만들어 내느라고 국가에서도 장려는 하고 농장에서도 열심히는 하는데 기초자원이 없다 보니 들어가는 것이 적어서 작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식량이 부족하니까 밭에 나가 일하는데 지장이 많기 때문에 많은 자선단체들에서 식량 지원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문) 농사철을 감안할 때 비료 지원이 언제 이뤄지는 것이 좋습니까?

답) 사실은 3~4월까지는 들어가야 합니다. 보통 3월에 춘경을 하고, 하지 않은 데서는 4월에서 5월 초순에 심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4월까지는 비료가 들어가야 합니다.

문) 김 박사님은 북한 최초의 국제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초대 농대 학장직도 맡고 계시는데요. 최근 과기대 수업이 시작됐죠?

답) 네. 금년에 이번 학기부터 한 과목 가르칩니다. 금년 3월부터는 전문과목 한 과목에 영어를 계속 가르칩니다. 아직도 농대는 기자재라던가 그런 것들이 많이 부족해서 힘들게 준비하느라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가르치는 것은 유전 쪽에 미국 교수가 교육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 계획으로는 첨단교육을 가미한 농업발전을 위해, 유전자 지도라던가 이런 것들을 만들어서 기초작업을 시작하려 합니다. 또 실험실에서 연구한 것들이 현장에서 이용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문) 평양과기대는 수재들만 모였다고 하던데요.

답) 아주 영리하고 발랄하고 서양 교수님들이 더 반했습니다. 자기들이 발전도상국가라던가 동구권 국가들에서 일할 때 보면 학생들이 우울한 걸 많이 봤는데 이 학생들은 너무 발랄하데요. 선생님들이 굉장히 좋아하네요. 굉장히 빨리 배우고. 성격이 좋다고 해요. 부지런하고.

문) 마지막으로, 북한의 식량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이뤄져야 할까요?

답) 도울 수 있는 나라들이 좀 더 크게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북쪽에 농업이 좀더 개선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근데 너무 기자재가 부족하고 지금까지 땅에 대한 유기질 비료나 이런 것들이 투입되지 못했고, 전기가 부족하니까 생산 가공하는 것이 부족하고. 여러 여건이 맞물려 돌아가니까 좀 더 많은 투자가 한꺼번에 많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문) 김 박사님,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답)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