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북한 인권단체들이 북한에 억류된 신숙자 모녀의 송환을 요청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독일 정부의 협조를 구하고, 독일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세 모녀의 송환을 직접 요구했는데요. 오늘은 홀로 북한에서 탈출한 오길남 박사와 함께 독일을 방문 중인 김태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대표를 전화로 연결해서 현지 활동 내용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문) 안녕하세요? 지금 독일에 계신 거죠?

답) 네

문) 이번에 독일을 방문하신 목적, 또 어떤 일정들을 갖고 계신지 설명해주시죠.

답) 네, 이번 독일방문은 오길남 박사님 가족의 조속한 송환을 독일정부에 요청을 드리고자, 또 북한 대사관에 가서 이제는 25년간 헤어져 있던 오길남 박사님의 가족을 돌려보내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문) 저희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 중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먼저 좀 여쭙겠습니다. 오길남 박사의 아내 신숙자씨, 또 두 딸이 북한에 억류된 과정을 짧게 설명해주죠?

답) 오길남 박사님을 대신해 이야기를 한다면 오길남 박사님이 1980년대 후반기에 북한에 포섭돼서 들어가게 되는데요. 들어갈 때의 약속과 맞지 않는 스파이로 전락시키는 과정에, 승복하지 않고 탈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 당시 가족을 데리고 탈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먼저 혼자 나왔어요. 그 이후에 가족을 내보내줄 줄 알았는데, 25년 동안 내보내주지 않았고요. 그리고 저를 비롯해서, 요덕 15호 정치범 수용소에서 신숙자씨와 그의 두 딸을 목격한 사람들이 지금 현재 4명 정도 있어요. 그 사람들의 증언에 힘을 입어서 우리가 지금 구출을 북한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 김대표님도 북한 출신이시고 요덕에 계셨었군요?

답) 네, 저도 1988년부터 1992년 까지 요덕 15호 수용소에 있었는데 당시 서독집이라고 불리우던, 물론 한국에 와서 이름을 알긴 했지만, 오길남 박사님의 아내와 두 딸을 제가 직접 보았던 사람 중 한 명 입니다.

문) 어떤 상황이었나요? 당시 목격하셨을 때 신숙자씨와 두 따님의 상황이?

답) 특징적인 것은 기억할 것이 없고요. 당시 제가 있을 때는 간호사로 일을 했어요. 그 안에 병원이 있는데 많이 만나서 특별하게 따로 얘기할 기회는 없었고요, 한 번 기회가 있었어요. 나무를 해다 주고 빵을 얻어 먹은 기억이 있는데 그 것이 여기 한국에 와보니 와플이었어요.

문) 지금 신숙자씨 모녀를 구출해내자는 운동이 한국에서도 강하게 일고 있고, 이곳 미국에서도 그런 움직임들이 있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번에 독일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하셨고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실 계획인지 설명해주시죠.

답) 일단은 여기 한국 동포 사이에 동참을 호소하는, 동포 사회와 만나는 간담회 자리가 있었고요. 그리고 또 독일에서 이번에 우리를 초청한 국제인권협회의 주관으로 언론들의 회견이 또 있었고, 그 다음에 북한 대사관에 이미 한 번 가서 퍼포먼스를 했었고요. 그리고 중요하게는 외교부에 가서 국외 인권담당, 국외 인도지원 담당을 하시는 레닝이라는 분을 만나서 신숙자씨 가족의 송환을 부탁 드렸더니 힘껏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문) 지금 말씀하신 게 독일 정부 외교부죠?

답) 네, 독일 정부 외교부입니다.

문) 독일에서 간담회도 하셨는데, 독일 분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또 독일에 있는 한인교민사회의 반응도 궁금하구요.

답) 물론 한국 교민사회의 반응은 좀 엇갈리죠. 왜냐하면 그 때 오길남 박사님을 설득해서 북한으로 보낸 사람들이 윤이상씨 라든가 송두율씨 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그 때 공작을 하였는데, 지금 현재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또 어떤 사람들은 북한을 자극하면 아내와 자식들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지 않느냐, 이런 우려를 나타내는 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가만히 있었더니 25년 동안 돌려보낼 생각을 안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는 시간이 되었고요. 또 독일에도 동독시절에 정치적인 피해를 입은 분들의 모임이 있더라고요. 그 분들도 역시 자신들이 지금까지 겪어온 모든 피해에 가해자들이 있는데 그 가해자들이 아직도 처벌을 받지 않고 있는데, 그러한 일들이 북한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것에 분노하면서, 함께 수용소 해체와 오길남 박사님의 가족의 조속한 송환을 위해서 독일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함께 협력해서 하겠다는 다짐을 가지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문) 독일 의회 의원도 참석했죠?

답) 의회의 인권위원회 위원장이신 것 같아요. 그 분이 참석해서 듣고, 관심을 보이고, 우리들의 활동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또 자신도 힘껏 돕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문) 이번에 독일을 방문하셔서 독일 정부, 의회에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셨군요. 오길남 박사가 독일에 있다가 북한으로 들어갔었잖아요? 그런 면에서 더 의미가 있겠군요.

답) 그래서 더욱 독일에 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죠. 애들이 두 명 다 독일에서 출생을 했으니까요. 신숙자씨도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을 하셨고요.

문) 그리고 북한 대사관 앞에서는 뭘 하셨나요?

답) 북한 대사관에 지난 목요일에 찾아갔었는데 당시에는 독일의 국제인권협회 주관으로 진행이 됐어요. 오길남 박사님의 발언도 있고, 김정일에게 이제는 빨리 돌려보내달라는 내용의 이야기가 있었고요. 오늘 한시 반에 있을 퍼포먼스도 김정일에게 빨리 이제 신숙자씨와 오혜원, 규원이를 돌려달라는 촉구를 하고, 그런 내용을 담은 편지를 읽고 그 편지를 북한 대사관 창구에 밀어 넣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 지난번에 갔을 때 북한 대사관에서 무슨 반응이 있었나요?

답) 아니죠. 꽁꽁 닫아 걸고 움직이질 않더라고요.

문)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답) 지금 현재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정계에서도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만으로는 좀 부족할 수도 있으니까, 북한 대사관이 있는 나라들마다 돌려줄 때까지 여러 가지 형식과 방법을 동원해서 북한에 계속 요구하는 활동들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상황이에요. 그러면 북한으로서도 부담을 많이 느낄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 빨리 돌려보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문) 네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독일을 방문 중인 김태진 북한정치범수용소 해체본부 대표를 연결해서, 신숙자 모녀 송환 노력에 대해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