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에서는 지난해부터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 돼 활동 중입니다. 그 동안 한국과 미국 등에서 피해 신고를 받았고, 이들 중 일부를 납북 피해자로 결정하면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요. 오늘은 워싱턴을 방문한 제성호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부터 그간의 활동과 성과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문) 제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6.25 납북 진상 규명 위원회 민간 위원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셨는데요. 다음 달 중순이면 위원회 출범 1주년이 되지 않습니까? 우선, 위원회가 어떤 곳인지 설명해주시죠.

답) 네, 우리 위원회는 작년 12월 13일에 출범을 했습니다. 작년 3월에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가 됐고요, 그래서 위원회가 출범을 해서 한 1년 다 되어가는데, 그동안에는 제도를 정비하고, 예산을 마련하고, 또 관련 심사 기준을 채택을 하고. 그래서 저희 전원 위원회가 그 사이에 한 세 차례 열렸습니다. 저희 위원회는 총 열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국무총리께서 위원장이시고,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장관, 또 행안부 (행정 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포함해서 여섯 명의 정부 위원이 있고요, 나머지 아홉 명이 민간위원입니다. 그래서 전체 회의가 금년에 두 차례 열렸습니다. 그리고 금년 8월 2일 날 우리가 55명의 전쟁 납북자를 결정을 했고요, 12월 12일 날 우리가 4차 회의 입니다, 거기서 한 264명 정도 다시 추가로 우리가 전쟁 납북자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위원회는, 우리 주요 업무는 6.25 전쟁 기간중에 발생한 전쟁 납북의 진상을 규명하고, 납북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사업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런 것을 위해서 여러가지 문헌 조사를 발굴하고, 당사자들의 가족이나 친척 되시는 분들이 신고를 하면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조사를 해가지고 최종적으로 전쟁 납북자 인가 여부를 판정하고, 나중에 국가 차원에서 기록을 유지하고, 이에 바탕을 둬서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생사 확인이라던가 추가적인 해결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문) 이번에 미국을 방문하신 목적은 뭔가요?

답) 네, 우리가 지난 5월에 뉴욕, 로스엔젤레스 지역 등에서 재재미교포 들에게 전쟁 납북자 관련 신고를 하는 방법, 절차, 대상, 장소 이런 것들을 홍보를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전역이 워낙 넓다 보니까 이번에는 저희가 워싱턴과 애틀란타, 이 두 곳의 한인회를 찾아가서 신고 방법도 홍보를 하고, 또 우리가 왜 뒤늦게나마 진상규명 활동을 하는가, 그 배경이라던가, 이런 것들을 취지를 설명을 드리는 목적으로 방문하게 됐습니다.

문) 한국에서도 홍보를 하셨고, 앞서 말씀하신대로 미국에서도 한 차례 홍보를 하셨는데요, 지금까지 신고건수가 얼마나 되나요?

답) 지금 국내, 외 합쳐서 금년 10월 말 까지 한 780명 정도, 당초 우리가 기대한 것 보다는 좀 미흡합니다. 굉장히 오래된 얘기고, 또 북한도 납치 사실을 부정하고 있고, 또 앞서 한국에서 그동안에 설치된 과거사 위원회는 보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 위원회의 경우 전쟁납북자로 결정되도 물질 보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센티브가 좀 부족한 면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신고가 저조한데, 우리가 거기에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여러가지 다각적인 방법을 통해가지고 신고를 좀 많이 확대되도록 노력을 할겁니다. 그리고, 또 미흡할 경우에 당사자들의 신고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 위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신고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또 직권 조사도 불가능 한 건 아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앞서 명예회복 말씀을 하셨는데요, 또 나아가서 만약에 생사 확인, 또 송환 이런 것도 염두에 두시는 것 아닙니까? 뭐, 가까운 미래는 아니지만.

답) 네, 이제 그거는 우리가 대북정책, 통일 정책을 전담하는 통일부에서, 유관 부처와 협의해서 그런 방향에서 해결 노력을 전개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 위원회에 1차적인 목적은 전쟁 납북 시기에 발생한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하고 명예 회복하는 것을 주된 업무 활동으로 그렇게 삼고 있는 것이죠.

문) 조금 전에 이번에 미국에 오신 목적 중에 하나가, 왜 이렇게 뒤늦게 이런 사업을 하게 됐는지 설명하기 위한거라고 하셨는데, 이 자리에서도 배경을 좀 말씀해주시죠.

답) 6.25가 끝난 정전 협정 채결 후에, 정전 협정에서 사실은 이 문제가 거론은 됐는데, 불완전하게 다루어 졌습니다. 그래서 정전 협정에는 Displaced Civilians 라고 해가지고, 실향 사민이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남과 북에 원래 살던 사람이 고향을 등지고 상실 하게 된 것이죠. 그런 사람들이 희망할 경우에 위원회를 구성해갖고 돌려보내기 위해서 상호 노력한다 이런 규정으로 불완전하게 정의돼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북한이 성의있게 대응하지 않았고, 호응하지 않았고 그래서 한 명도 실향 사민으로 돌아온 납북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가족들이 이 문제를 좀 제기를 하고 또, 정부에서도 나섰지만 우리가 국력이 좀 미약했고, 또 여러가지 경황이 없었고, 전 후이기 때문에, 복구를 하거나 이런 일들이 있었고요. 또 그 후에 우리, 또 인도적 문제라고 해서 이산가족 문제도 있고, 여타 다른 사안들이 많아가지고, 정부도 그렇고 우리 사회에서 관심이 좀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에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고, 비전환 장기수가 송환이 되는 이런 일이 있으면서, 납북자 단체들이 다시 재 구성이 돼가지고 정부에 강력하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 요구를 하게 됐고, 지난 8, 9년 간 노력 끝에, 법이 제정돼서 우리 위원회가 발족이 되고, 활동을 개시하게 됐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문) 일 년 간의 성과를 돌아보신다면 어떻게 평가를 하실 수 있을까요?

답)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320명 가까운 분들의 전쟁 납북자를 결정을 했고요, 그동안에 우리가 문헌자료를 발굴을 해서 한 600 건의 자료를 우리가 발굴해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위원회 활동을 위해서는 신고가 절실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홍보 활동도 적극적으로 전개를 했고, 그리고 6.25 전쟁 납북 인사 가족 협의회 라고 해서 관련 NGO가 있죠.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데, 거기 소속된 분 세 분이 또 우리 위원회 위원입니다. 이미일 이사장도 많이 활동 하시고, 지난 달에도 왔는데, 그 위원회 활동을 위해서 우리 위원회에서 1억 정도 지원을 했고, 그 가족회에서 지난 7월 27일 날 정전협정 기념일 날에는 6.25 납북 사진전을 세종 문화회관 앞에서 저희가 개최를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 또 일반인들이 지나가면서 보고, 저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6.25 납북이 뭐지?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은 한국전쟁 기간 중에, 6.25 전쟁 기간 중에 8만 명에서 10만 명에 이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납치됐다는 사실을 지금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국민을 계몽하고, 교육하고, 또 늦었지만 이제라도 과거사를 바로 정리해서, 역사를 정리해서 후대에 기록으로 남겨두고, 또 전쟁 기간 중에 북한이 이런 범죄 행위를 했다라는 걸 깨달음으로서 북한에 대해서 우리가 올바른 대북관을 함양하고, 또 이런 문제를 우리가, 어떤 분단의 유지고, 전쟁이 낳은 상처인데, 이것 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통일을, 우리가 준비할 수 있겠는가, 이런 자성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대한민국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지금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진행자) 제의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답) 네, 고맙습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한국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위원회, 제성호 위원으로부터 지난 1년간의 활동과 성과에 대해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