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북적이는 미 서부 로스엔젤레스의 한 국제 공항. 보안검색대를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긴장과 피로가 묻어 난다. 항공편을 이용한 테러 공격이었던 9/11테러 이후 미국 공항들에선 보안 검색이 무척 까다로워졌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전신 몸수색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까다로운 보안 검색에 특별히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다.

아미나 미르자 카지는 ‘미국 이슬람 관계 협의회’LA 지부에서 일하는 변호사다. 카지변호사는 이같은 보안 검색이 무슬림을 겨냥한 것이라며 불만을 나타낸다.

(여: 전 여행을 할때마다 보안 검색의 전과정을 철저히 다 거쳐야 하고 또 추가적인 몸수색도  받아요.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두건을 쓰고 있기 때문이죠.)

보안 관계자들은 공항의 한층 강화된 보안검색이 특별히 무슬림을 겨냥한 것 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공항과 같은 공공시설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9/11테러가 이슬람을 믿는 과격테러분자들에 의해 일어났다는 이유로 일부 미국인들은 무슬림이 곧 테러분자일지도 모른다는 색안경을 끼고 무슬림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무슬림들은 9/11테러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미 동남부 테네시주의 마을 머프리스보로(Murfreesboro).  녹음이 우거진 이 마을의 법원 앞에는 기독교의 성경책이 전시돼 있다.   길 건너 법정에선 현재 한 법적 공판이  한창 진행중이다. 무슬림들이 도시 외곽에 수영장과 묘지, 이슬람 사원  등이 갖춰진 무슬림센터를 지으려는 계획에 대해 일부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무슬림 센터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 센터 과격 이슬람 분자들의 성전, 지하드를 위한 무기고로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있다

이슬람 성직자 오싸마 바룰 이맘은 이 마을의 무슬림 지역사회가  1천 세대에 이를  정도로 성장해 왔다고 말한다.

(남: 이 곳에  지어질 무슬림 센터는 머프리스보로 무슬림 공동체의 꿈입니다. 기도실과 다목적 공간을 갖추고 또 어린 학생들을 위한 수영장도 지을 계획이죠. 모두들 기대에 가득차 있습니다.)

무슬림 청소년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청소년 상담가인 디마 스베나티는 많은 아이들이 그들 삶에서 처음으로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겪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여: 이 아이들이 제게 와서 물을거예요. ‘왜 친구들이 날 보고 테러분자라고 부르나요?  왜 엄마 친구는 그 분 자녀들과 제가 함께 놀지 못하게 하나요?  친구들은 왜 나를  집으로 초대하지 않는 거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라구요.)

하지만 이 마을 주민들 모두다 이렇게 무슬림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흑인 연합 감리교회 루신다 넬슨 목사는 머프리스보로에서 이런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이 지역 주민들이 변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여: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무슬림 이름이 들어간 흑인 대통령까지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살아왔던 익숙한 삶의 방식이나 종교 등이 파괴되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 겁니다.)

9/11테러를 주도 했던 이들이 극단주의 무슬림이 아니었다면, 테네시주 작은 마을에 무슬림센터를 건립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을까?  머프리스보로에 무슬림센터 건립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9/11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무슬림들은  현재 훨씬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9/11 테러 이전, 수 십년을 그렇게 살아왔던 것 처럼…

미 동남부 플로리다의 한 중동식품 가게.  한 여성이 물품을 구입하고 있다.  짧은 아랍어도 몇 마디 구사한다.  이 여성은 서구식 복장에 무슬림 여성이 전통적으로 머리에 쓰는 두건, 히잡도  두르진 않았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다. 엘리자베스 토레스라는 이름의 푸에르토리코 계인 이 여성은 이슬람에 대해 알고 나서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이름도 바꿨다. 그래서 지금은 엘 카사비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엘 카사비는 10년전 9/11 테러로 무려  9명의 일가 친척을 잃었다. 목숨을 잃은 친척들은 테러 당시 모두 세계 무역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여: 테러 당시, 친척을 많이 잃었지만, 그것 때문에 종교를 비난하지는 않았습니다.)

9/11 테러를 겪은 후, 영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9/11 테러 공격이 발생한 지 몇 년 만에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이슬람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 뒤 곧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엘리자베스 토레스에서 엘  카사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여: 이슬람교는 그 어떤 것도 파괴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테러 공격을 자행한 자들은 조종당했고 또 세뇌당했던 겁니다.)

지난 2년간 엘 카사비는 플로리다 주 템파에 있는 가장 큰 이슬람 사원에서 업무 관리자로 일했다. 물론 그녀의 가족은 개종을 반대했었다. 특히 미군인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된 큰 딸 실비아는 엄마와 아예 말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16살 막내 딸 나탈리아는 이슬람교로 개종한 엄마때문에 친구들로 부터 안좋은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여:주위에서 친구들이 물어요. 너네 엄마도 테러분자 아니냐고. ‘아니야. 테러분자와 이슬람 종교는 완전히 달라’ 라고 대답을 하죠.)

엘카사비는 자신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여전히 9/11 테러를 일으킨 테러분자들은 비난하지만, 그들이 믿었던 이슬람교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9/11 테러 이후 10년. 무슬림들은 자신들에 대한 편견과 싸워왔다.  9/11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니 9/11 테러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편견의 10년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힘겨운 싸움을 해왔고, 어느 새 그들을 바라보던 왜곡된 시선도 바뀌어 가고 있다.

9/11 테러는 분명 미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미국인들의 생각과 삶을 바꾸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제 10년의 슬픔과 10년의 전쟁과 10년의 편견이라는 상처는 서서히 치유되고 있는 듯 하다.  이 모든 상처를 뒤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향해 나아갈 때.  9/11 테러 10주년을 맞는 바로 지금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