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8일)은 북한의 ‘조선민주여성동맹’ 즉, 여맹 결성 6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북한 당국은 여성을 우대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여성 탈북자들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북한 여성의 어제와 오늘을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의 대표적 여성 조직인 ‘조선민주여성동맹’ 여맹이 18일로 결성 66주년을 맞았습니다.

과거 평양의 교원대학 교수로 있다가 지난 2002년에 탈북한 이숙 씨는 여맹이 여성에 대한 사상 교양을 담당하는 노동당의 전위단체라고 말했습니다.

“당원이 아닌 여자들은 다 여맹에 가입해, 일주일에 한번씩 생활총화를 합니다. 당 비서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여자들의 조직을 담당하는 기관이죠.”

북한은 1946년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발표한 데 이어 곳곳에 탁아소를 세우는 등 여성을 위한 각종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북한은 또 여성을 우대하는 것 같은 각종 제스처도 취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선전 당국이 보급한 ‘여성은 꽃이라네’라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탈북 여성들은 남녀평등과 여성우대는 말 뿐일 뿐 북한은 여전히 남성 위주의 봉건적 사회라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여성이 취사와 청소 등 가사노동을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경우도 많다고 이숙 씨는 말했습니다.

“여전히 북한에는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있어 남자가 여자를 막 구타하고, 여자를 우습게 여기고, 많은 여자들이 가사 부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함경북도 청진에서 지난 2005년 탈북한 김주일 씨는 북한의 공장과 기업소에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희롱이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귀엽다는 등 예쁘다는 등 하면서 터치하는 것 자체가 성희롱인데 북한에서는 이것이 워낙 만연화 돼 있다보니 이게 성희롱인지 잘 모르는 실정입니다.”

북한 당국은 국회에 해당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에 여성 비율이 20%에 달한다며 여성의 정치참여 비율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평양의 조선작가동맹에서 활동하다 지난 90년대 말 탈북한 최진이 씨는 북한 같은 정치체제에서 그런 숫자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대의원 역할도 못하는 대의원 비율이 많아서 뭐해요,대의원이 무슨 역할을 해요?”

탈북자들은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졌다고 말합니다. 당시 공장과 기업소가 돌지 않자 여성들이 장마당에 나가 돈을 벌어, 경제권을 쥠으로써 사회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주민들이 사용하는 용어에서도 나타납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이후 남편들이 돈을 벌지 못하고 집이나 지킨다는 뜻에서 ‘멍멍이 남편’ 또는 ‘우리 집 자물통’이라는 은어로 불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최진이 씨는 ‘고난의 행군’을 계기로 북한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여성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남성의 위치가 낮아졌다는 얘기입니다.

“여자들이 장마당에 많이 나가니까, 남자들 지위가 낮아지니까 여성들이 지위가 올라간 것처럼 보인 거지, 지위가 올라간 것은 아니에요.”

탈북자들은 북한 여성들이 더 이상 60-70년대의 순종적인 여성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북한 여성들이 경제난을 겪으면서 세상물정과 외부 세계에 눈을 떴다는 겁니다. 다시 최진이 씨의 말입니다.

“여성들이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장사를 하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활동력도 강해지고 하니까, 이런 요인이 여성의 탈북 비율을 높이고..”

실제로 90년대 이전만 해도 여성 탈북자의 비율은 전체의 10%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에는 탈북자의 70% 이상이 여성입니다.

그러나 북한을 탈출했다고 해서 문제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을 탈출한 많은 여성들은 중국에서 인신매매와 강제결혼을 겪고 있으며,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되는 경우도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