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1주년이 됐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오늘부터 5회에 걸쳐 한국전쟁을 되돌아보는 특집방송을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두번째 순서로 이연철 기자가 ‘한국전쟁 61년 뒤 남북한’편을 보내드립니다.

지난 2009년 11월 말,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산하의 개발원조위원회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습니다.

OECD 개발원조위원회는 전 세계 대외원조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국제기구로, 이 기구에 가입했다는 것은 진정한 원조 선진국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을 제외하고 원조 선진국 기구에 가입한 것은 일본과 한국 두 나라뿐입니다. 특히, 61년 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모했으며, 이는 개발도상국가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국제사회의 원조로 연명해야 했던 한국이 원조 선진국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3년 간의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했고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한국은 국제원조로 연명하는 절대빈곤 국가였고, 교회와 학교 등에서 나눠주는 밀가루와 옥수수 등 구호 식량이 생명줄의 전부였습니다.

국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박준서 미국본부 아시아 후원개발 부회장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월드비전이 한국에서 전쟁 고아와 미망인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시작할 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박준서 부회장)  “한 엄마가 아이를 안고 서울역 광장 어귀의 빌딩, 다 무너진 빌딩 옆에서 아이 젖을 먹이고 있는데, 얘가 아무리 젖을 빨아도 젖이 안 나오니까 얘는 배고파서 계속 울고, 엄마는 젖이 안 나와 못 먹이는 마음이 안타까워 울고….”

1950년 이후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은 한국 어린이가 40만 명을 넘었고, 지원을 받은 금액도 1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민간구호단체들이 한국을 지원했습니다. 한 때 1백 개를 넘었던 국제 민간단체들은 한국정부 보다 훨씬 더 많은 구호자금을 사용하면서 한국 국민들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한인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신호범 워싱턴 주 상원부의장도 이 때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신호범 부의장) “네 살 때부터 아버지 없는 고아가 돼 가지고 혼자서 서울역에서 살고, 얻어먹고 자랐습니다. 6.25 사변 때 미국에서 오신 미군 한 분의 입양아로 가서 미국에 가서 ABC를 배우면서 검정고시 해서 박사까지 받고, 대학교 교수 30년 했습니다. 지금은 또 정계에서 상원부의장까지 돼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지원과 배려를 바탕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면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의 역사적인 전환을 시작했습니다.

1991년 월드비전 한국본부는 외국의 지원을 완전히 청산하면서 대신 다른 나라들을 돕는 후원국의 역할을 맡기로 결정했습니다.  월드비전 미국본부 박준서 아시아 후원개발 부회장의 설명입니다.

(박준서 부회장) “이제는 우리가 도울 때가 됐는데, 언제까지 백 년 만 년 받아먹고 살거냐, 올림픽도 한 나라가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이제 우리가 다른 나라를 돕는 나라로 탈바꿈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지금, 90개 가까운 한국의 민간단체들이 전 세계 80여 개 나라에서 긴급 구호와 의료보건, 교육 등의 지원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소재 민간연구단체인 미국기업연구소의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한국이 원조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눈부신 경제발전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에버스타트) “냉전 시대 한국경제의 성장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눈부신 것입니다. 이 같은 성장은 19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습니다. 이 때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수출 중심 경제구조를 갖추면서 비약적인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도 외국의 원조를 받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북한을 방문해 식량상황을 조사한 유엔기구 관계자들은 북한이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며, 올해 1백만t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워싱턴 소재 피터스 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란드 연구원은 북한이 자력갱생을 외치면서도 외부의 원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은 당국의 잘못된 경제정책 탓이라고 지적합니다.

(놀란드) “특히 지난 10년 간의 북한 경제정책을 되돌아 보면 북한이 2009년 단행한 화폐개혁이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주민들이 모은 재산을 빼앗은 그 같은 화폐개혁은 치명적인 경제적 재난입니다.”

이제는 대부분 여든 살을 넘긴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변모한 한국의 발전상을 보면서 자신들의 희생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음을 직접 확인하고 있습니다.

올해 여든 다섯 살의 참전용사 더글라스 맥클러스터 씨는 한국전쟁에 참가한 것은 아주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맥클러스터) “다시 한국을 위해 전쟁에 참여할 일이 있으면 주저 않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한국전쟁 참전은 바람직한 일이었으며 옳은 일이었습니다.”

한국은 과거에는 원조로 연명했지만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원조 선진국으로 거듭났습니다. 반면, 북한은 지금도 외부원조에 의존하고 있지만, 생활이 나아지기는커녕 빈곤이 더욱 심해지는 이른바 ‘원조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전쟁 61년이 지난 지금 남북한의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