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버마의 적극적인 개혁개방 정책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 국무장관으로는 반 세기만에 처음으로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버마를 방문하면서 ‘버마의 봄’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는데요. 김영권 기자가 버마의 굴곡진 역사를 뒤돌아봤습니다.

지구상에서 북한 다음으로 가장 폐쇄된 국가. 부시 행정부 시절 북한 등과 함께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됐던 나라. 아시아에서 북한과 함께 최악의 전체주의 국가로 불리던 버마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버마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그 만큼 이 나라의 역사에 우여곡절이 많았음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인도차이나 반도 서쪽에 위치한 버마는 1948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할 때만 해도 동남아시아 최고의 부자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 가운데 하나로 풍부한 지하자원, 수산 자원을 자랑하던 버마는 그러나 1962년 네 윈 장군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쇄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기존의 공화정은 사회주의 군사독재로 전환됐고 국민에 대한 통제는 강화됐습니다. 또 국가 예산의 40 퍼센트를 과도하게 국방비에 투입해 민생은 피폐해졌고, 경제는 세계 150위 권으로 추락했습니다.

이런 폭정에 반기를 든 인물은 버마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치 여사였습니다. 수치 여사는 1988년 민주화 인사들과 함께 민족민주동맹(NLD)를 결성하고 199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둡니다.

하지만 군사정권은 총선 결과를 전면 무효화 시키고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 감금한 뒤 모든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국제사회는 군사정권의 독재와 인권 탄압 중단을 요구했고 버마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로 떠오른 아웅산 수치 여사는 가택 연금중인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군사정권은 그러나 수도를 양곤에서 네피도로 옮기며 폭정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해외로 탈출하는 버마 난민들의 행렬은 늘어만 갔고 2007년 승려들의 민주화 시위가 유혈진압으로 끝나며 희망의 불빛은 꺼져가는 듯 했습니다.

이런 버마에 다시 희망의 불씨가 살아난 것은 지난해부터 입니다. 20년 만에 총선이 치러졌고 군사 정권 총리 출신인 테인 세인이 첫 민선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개혁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겁니다.

세인 대통령은 올 3월 취임 뒤 군사 정권의 실책을 일부 인정하며 빈곤퇴치, 해외 투자 유치법 개정, 국가 인권위원회 설립,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아웅산 수치 여사 면담, 일부 정치범 석방, 집회와 시위의 자유 보장 등 숨가쁜 개혁 조치들을 단행했습니다.

버마 전문가인 조지타운대학의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교수는 그 요인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중국 세력 확대를 견제하고 지나친 중국 의존도에서 벗어나 추락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이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는 겁니다. 게다가 아랍세계에 거세게 불고 있는 민주화 혁명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스타인버그 교수는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버마 정부의 개혁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적지않습니다.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의 톰 말리노프스키 워싱턴 지국장은 2천 명에 달하는 모든 정치범들이 석방되야 버마 정부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버마 최대 도시인 양곤에는 호텔을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외국 기업 관계자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버마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풀릴 것을 예상해 풍부한 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먼저 확보하려는 경쟁이 벌써부터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버마의 변화가 비슷한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에 시사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고 말합니다. 북한 역시 풍부한 지하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면 버마 이상의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조지타운 대학의 스타인버그 교수는 그러나 북한의 통제와 탄압은 버마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변화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집단 지도체제가 아닌 김정일 일가가 통치 하는 북한같은 체제에서 개혁은 곧 지도자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혁,개방이 쉽지 않을 것이란 겁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한에도 민심이반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북한판 아웅산 수치’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합니다.